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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도배하던 아내, 흙더미에 뒷동까지 쓸려가”





우면산 산사태로 부인 잃은 도배업자 이우춘씨



지난달 27일 우면산 산사태로 부인을 잃고 부상당한 이우춘씨가 10일 서울 방배동 래미안아트힐 아파트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씨 옆으로 보이는 아파트 1층 집이 사고 현장이다. [김태성 기자]











숨진 이숙제씨



7월 27일이었다. 서울 대방동의 다세대주택 한쪽에서 지물포를 운영하는 이우춘(65)씨는 함께 도배일을 다니는 부인(이숙제씨)과 이른 아침을 챙겨 먹고 집을 나섰다. 오전 7시였다. 며칠 전 방배동에서 인테리어 가게를 하는 사람에게서 “일감이 생겼다”고 연락이 왔던 터였다. 방배동 래미안아트힐 아파트까지는 30분이 걸렸다. 도배를 할 1층 집에 들어가보니 인테리어 업자가 인부 두 명과 함께 있었다. 나머지 인부 세 명은 아파트 전체에 전기가 나가자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비가 드럼통으로 퍼붓듯 내리는 것이 을씨년스러웠다. 7시50분쯤부터 이씨와 부인은 트럭에서 가져온 도배지들을 거실 한구석에 쌓기 시작했다. 30여 분 뒤 갑자기 세상이 무너지는 듯 우르릉 쾅쾅 하더니 뭐가 밀려오는지 밀려가는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누구를 쳐다보고 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었다. 순식간이었다. 이씨는 정신을 잃었다. 



몇 분 뒤 정신이 들었나 싶었는데 눈이 떠지지 않았다. 눈·코·입·귀에 토사가 들어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조금씩 발버둥을 치며 무너져 내리는 흙을 파냈다. 겨우 고개를 움직일 수 있을 정도가 되니 벽이 보였다. 그 벽을 목표로 구멍을 넓혀 갔다. 그리고 죽을 힘을 다해 바깥으로 기어 나왔다. 팔과 다리에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분명히 ‘쾅’ 하기 전 거실에 서 있었는데 지금은 집 뒤 베란다 바깥, 뒤 동이 보이는 낭떠러지처럼 생긴 곳이었다.



 얼굴이 퉁퉁 부어 오르고 온몸에서 피가 흐르는 이씨를 보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119 구급차가 도착했지만 부인과 인부 한 명의 생사를 알 수 없다는 말에 털썩 주저앉았다. 정신을 가다듬고 주민들에게 딸한테 전화를 해달라고 했다. 그러곤 병원으로 실려갔다. 오후에 아들과 사위가 회사를 조퇴하고 병원으로 찾아왔다. 그들은 이씨의 상태를 확인한 뒤 현장으로 달려갔다. 소방대원들은 아파트 1층 현장이 너무 위험하다며 구조를 중단한 상태였다. 대원들이 만류하는데도 아들과 사위는 맨손으로 1층을 뒤졌다.



오후 4시쯤 사위가 병원으로 와 이씨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장모님을 찾았습니다.” 병원으로 시신이 실려들어 왔다. 너무 처참해 쳐다볼 수가 없었다. 온몸이 토사범벅인 데다 성한 곳이 없었다. 부인은 토사가 눈으로 밀려들어가 눈을 감지 못한 상태였다. 머리와 얼굴을 씻어내고 눈을 감겼다. 부인은 20m 이상 떨어진 뒤 동 화물 적치장에서 발견됐다. ‘거기까지 쓸려 갔다니…’ 하는 생각에 억장이 무너졌다. 딸 이미정(37)씨는 “엄마가 2주 전 문틈에 손을 찧여 왼쪽 검지 손톱이 시커멓게 됐는데… 그 손톱이 보였어요.”



 이씨는 1973년 이불공장에서 일하다 같은 공장에서 미싱일을 하던 부인을 만나 결혼했다. 가정주부로 살던 부인은 결혼 10년차 되던 해부터 이씨의 일을 돕기 시작했다. 일에 자신이 붙자 혼자 대리점을 차린 적도 있었다. “고왔어요. 착했죠. 뭐든지 잘했고, 남 돕는 걸 좋아했어요.” 딸 미정씨는 반찬통을 안고 엉엉 울었다. “사고 당일 엄마가 ‘문앞에 반찬 갖다 놨다’고 전화한 게 마지막이었어요. 엄마가 너무 불쌍하고 미안해요.”



 지난달 29일 부인은 충북 보은 선산에 묻혔다. 부인과 친하게 지내던 동네 아주머니들이 다들 따라왔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도배 일을 하던 집에 살던 사람은 사고 이틀 전 뒤 동으로 이사가 화를 면했다고 한다.



 이씨는 기자에게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신문과 방송에서 그렇게 수해 보도를 쏟아냈는데 아무도 우리를 찾아와 주지 않았어요. 누가 죽었는지 관심이 없었어요. 복구작업 얘기만 나오는데 기가 막혔어요.” 지난 5일 퇴원한 이씨는 현재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있다. 눈도 아직 많이 부어 있고 다리는 저는 상태다. 앞으로 두어 달은 더 치료를 받아야 한다.



 “주민들은 보상이라도 받지요. 우리는 그런 거 어떻게 받는지도 모릅니다. 구청에선 ‘개입 안 한다’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장례고 뭐고 다 우리 돈으로 했어요.” 이씨는 지물포 문을 닫았다.



이씨가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다섯 살과 세살 난 손자들이 “할아버지~” 하며 달려왔다. 이씨는 “이 어린 것들이 눈에 밟혀 어떻게 먼저 갔는지 몰라”라며 눈물을 흘렸다. “한이 맺혔을 것 같아요. 그렇게 비명에 갔는데…. 기자 양반, 우리 집사람 한 좀 풀어줘요.”



글=이지상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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