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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스페셜 - 목요문화산책] 21세기 ‘증오 페스트’…카뮈는 예견했을까





명화로 읽는 고전 - 77명 대학살 노르웨이 테러로 본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그림 ① 죽음의 승리 - 부분(1562), 피터르 브뤼헐(1525~1569) 작, 나무판자에 유채, 117x162cm, 프라도 박물관, 마드리드.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



“악(惡)은 언제나 무지에서 나온다… 가장 구제불능인 악덕은 모든 것을 안다고 상상하고 그럼으로써 스스로에게 사람을 죽일 권리를 인정하는 따위의 무지함이다.” 알베르 카뮈(Albert Camus·1913~60)가 장편소설 『페스트(La Peste·1947)』에서 한 이야기다. 지난달에는 역사·종교·경영학에 통달했다고 자처하는 반(反)다문화주의자 가 77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카뮈 식으로 말하자면 무지의 범죄를 저질렀다. 그것도 톨레랑스의 나라 노르웨이에서. 마치 소설 『페스트』에서 중세에나 횡행했고 근대에는 사라진 줄 알았던 역병이 20세기 도시를 덮친 상황과도 같은 참담한 일이었다.





『페스트』의 역병은 제2차 세계대전의 폭력과 파시즘을 상징한다고 흔히 해석되지만 훨씬 폭넓게 해석될 수도 있다. 이미 정복된 줄로만 알았던 역병이 현대의학을 무력하게 하며 수많은 사망자를 내는 상황은 쓰나미 등 거대한 자연재해가 현대 테크놀로지를 무색하게 하는 것과 비슷하다. 또 정치적·문화적 관용(寬容)과 비폭력주의가 정착된 줄 알았던 노르웨이에서 배타주의와 폭력적 근본주의가 폭발해 테러로 이어진 충격적인 상황에도 대입될 수 있다. 즉 페스트는 인류가 이룩한 이성적 문명을 무력하게 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리는 모든 재앙을 상징한다.









그림 ② 시시포스(시지프, 1548~1549), 티치아노베첼리오(1488~1576) 작, 프라도 박물관.



 이 소설에서 페스트의 재앙에 대한 사람들의 대응은 가지각색이다. 의사인 베르나르 리외는 묵묵히 직업상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전직 정치운동가 장 타루는 민간 구호단을 조직해 리외를 돕는다. 취재하러 왔다 이 도시에 갇힌 신문기자 레이몽 랑베르는 연인을 보고 싶다는 일념에 탈출에 골몰한다.



 의사들과 민간 구호단의 사투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사망자 수가 급격하게 늘면서 인간에 대한 마지막 예의라고 할 만한 장례절차가 점점 간단해지더니 급기야는 크게 판 구덩이에 ‘벌거벗고 약간씩 뒤틀린 시신들’을 쏟아붓는 지경에까지 간다. 리외는 타루에게 페스트와의 전쟁은 “끊임없는 패배”라고 고백한다. 그의 말은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의 거장인 피터르 브뤼헐의 ‘죽음의 승리’(그림 ①)를 연상시킨다. 이 그림에서 인간은 죽음의 화신인 해골 군단과 처절한 전투를 벌이지만 그림의 제목처럼 승리하는 쪽은 죽음이다.



 인류 역사상 폭력을 종식시키려는 노력 역시 좌절의 연속이었다. 증오가 증오를 낳고 전쟁과 테러가 또 다른 전쟁과 테러를 낳아 왔다. 노르웨이 테러를 저지른 브레이비크는 이슬람 세력에서 유럽을 구하기 위한 성전(聖戰)이었다고 주장하고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리스트들은 서구 의 침략에 맞서기 위한 성전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위대한 성전’의 희생자들은 페스트 희생자만큼이나 무작위적이고 무고해서 부조리(不條理)함만 두드러질 뿐이다. 노르웨이 테러의 희생자는 대부분 청소년이었으며 가장 어린 희생자는 14살이었다. 탈레반은 8살 소녀를 비롯한 어린이를 자살폭탄 테러에 이용하고 있으며 희생자 중에도 다수의 어린이가 있다.









그림 ③ 박힌 페티시(2006), 토마스 히르슈호른(1957~) 작, 마네킹 두상과 나사못, 사진 등, 2010 광주비엔날레에 전시된 모습.






 지난해 광주비엔날레에서는 자살폭탄 테러 희생자를 주제로 한 설치미술 작품인 스위스 작가 토마스 히르슈호른의 ‘박힌 페티시’(사진 ③)가 화제를 모았다. 일련의 마네킹 머리에 못과 나사가 잔뜩 박혀 있는데, 실제로 자살폭탄에 못과 나사가 가득 들어 있다고 한다. 그 밑에는 남녀노소 희생자의 실제 시신을 담은 사진들이 붙어 있다. 이 사진들이 참담한 것은 그 끔찍한 선혈과 드러난 장기보다도 정육점 고기처럼 무참히 해체된 육체의 주인들이 테러 직전까지만 해도 걷고 말하고 꿈꾸던 인간이었다는 점이다. 노르웨이에서 브레이비크의 덤덤탄(dumdum彈)을 맞는 청소년들의 신체 내부도 이렇게 훼손되었으리라. 어떤 명분이 이렇게 인간을 파괴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는 패배’에도 불구하고 폭력의 종식을 위한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페스트』에서 리외도 역병과의 싸움을 계속하며 말한다. “병이 가져오는 비참함과 고통을 볼 때 페스트에 대해 체념한다는 것은 미친 사람이거나 눈먼 사람이거나 비겁한 사람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러한 투쟁에 힘을 주는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카뮈는 『페스트』에서 신문기자 랑베르를 통해 사랑에 대한 신뢰를 피력했다. 탈출을 모색하는 랑베르는 리외와 타루가 아무 비난도 하지 않는데도 그들을 계속 의식한다. 어느 날 그들에게 “나는 영웅주의를 믿지 않아요. 내 관심은 오로지 사랑을 위해 살고 죽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마침내 탈출할 수 있게 된 날 랑베르는 도시에 남아 구호단 일을 하기로 결정한다. 영웅주의로 돌아선 것이 아니라 리외와 타루, 시민들에 대한 애정에서였다.



 이처럼 냉소주의나 체념에 빠지지 않고 모든 부조리에 맞서 승산이 없더라도 저항을 계속하는 인간의 모습은 카뮈의 에세이 『시지프의 신화(Le Mythe de Sisyphe·1942)』에서 요약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시시포스)는 산꼭대기로 밀어올리면 굴러떨어지는 바위 덩어리를 영원히 반복해 밀어올려야 하는 벌을 받았다. 전성기 르네상스 화가인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작품(그림 ②)에서는 시지프가 아예 돌을 등에 지고 나른다. 절망적인 상황임에도 그는 주저앉지 않고 돌을 계속 나른다.



 노르웨이 국민 역시 폭력과 증오의 종식을 위한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노르웨이 총리는 더 큰 관용과 인간애로 테러에 맞서겠다고 했다. 반다문화 같은 불관용주의가 폭력을 동반하는 것은 결코 허용하지 않되, 불관용주의적 의견조차도 열린 토론에서 경청하는 확장된 관용이 필요하리라. 좀 더 현실적인 다문화정책을 논의할 시점인지도 모른다. 다문화주의조차도 독단적 교리, 즉 도그마(dogma)가 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화와 비폭력이라는 원칙만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그것이 너무나 어려운 일이더라도. 다시 굴러떨어지고 마는 바위일지라도 시지프처럼 굴하지 말고 계속 밀어 올려야 하는 것이다.



문소영 기자



독선 혐오한 카뮈, 동지 사르트르를 버리다

좌파였지만 균형 잡힌 지성












카뮈는 언제나 행동하는 지성이었다.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점령당한 동안 레지스탕스 기관지의 편집장으로 활약했고, 전후에도 여러 시사문제에 대한 견해를 언론에 피력했다. 그러나 현실 참여에 열정적인 지식인이 종종 빠지는 극단주의와는 철저히 거리를 두었다. 정치적으로 좌파였으나 좌파 도그마에 빠지는 것을 경계했으며, 좌우파의 단순한 이분법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카뮈는 결코 스탈린주의를 용납할 수 없었고 스탈린을 옹호한 실존주의 동지 장 폴 사르트르와 격렬한 논쟁을 벌인 끝에 결별했다. 20세기 가장 균형 잡힌 지성인 중 하나였던 카뮈는 불과 44세에 노벨 문학상을 탔고 47세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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