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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좌절 세대’ 약탈 … 실업·빈곤에 희망 잃었다





이상언 특파원 런던 르포



이상언 특파원



영국 청년 폭동의 시발점인 런던 토트넘의 중심거리 하이로드로 접어들자 불에 탄 4층짜리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불 기운에 지붕이 내려앉았고 기둥들도 기울어져 있었다. 26가구가 살고 있던 건물이 지난 6일 밤의 난동 때 전소된 것이었다. 한 주민은 건물 앞에 세워져 있던 차량이 불타면서 불씨가 옮겨 붙었다고 설명했고, 다른 이는 청년들이 일부러 불을 질렀음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카펫라이트’라는 이름의 이 건물 인근 지역에는 간판이나 유리창이 부서진, 습격의 상처들이 남아있는 상점들이 띄엄띄엄 보였다. 휴대전화 대리점, 전자제품 판매점, 옷 가게 등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물건들이 많은 상점이 주요 표적이 됐음을 증명했다. 토트넘뿐만 아니라 연쇄 난동이 일어난 런던의 다른 지역에서도 피해 상점들의 종류는 비슷했다.



 청년들은 무리 지어 노략질을 했다. 이렇다 할 명분도, 주장도 없는 폭력과 약탈이었다. 스마트폰, 태블릿 PC, 패션 운동화 등 평소 원했던 것들을 사냥하듯 낚아채 갔다. 청년들은 원시적 야만성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영국 사회는 경악했다.



백인 청년들이 대거 가담했다는 것이 충격을 더했다. 영국 언론들은 ‘좌절 세대의 집단 약탈’로 사태를 규정하기 시작했다. 실업과 빈곤에 빠진 ‘희망 상실’ 청년들의 비뚤어진 소비 욕구가 기형적으로 분출됐다는 것이다. 주머니는 비어 있고, 미래도 암울하고, 세상에 대한 불만은 가득하고, 가지고 싶은 것은 많고, 때마침 공권력까지 허술했다.



 영국의 청년실업률은 이미 20%를 넘어섰다. 폭동이 일어난 곳은 대부분 저소득층 밀집 지역이라 젊은이들의 실업률이 그 배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경제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저서 『노동의 종말』(1996)에서 특정 지역의 실업률이 30%를 넘어서면 폭동 발생 위험이 급증한다고 경고했다. 영국에 이미 청년 난동의 싹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청년 ‘백수’의 증가, 소득 격차의 심화, 계층 이동 가능성의 축소, 사회적·가족적 보호의 약화. 이러한 조건들은 영국만의 일은 아니다.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프랑스에서는 2005년 영국과 유사한 형태의 폭동이 일어났다. 좌절 청년들은 한국에도 적지 않다. 실업수당 등의 사회적 보호 장치만 놓고 보면 영국이나 프랑스보다 한국의 청년 실업자들은 더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 다행히 아직 한국의 젊은이들은 상실감과 박탈감을 인터넷에서의 악담과 저주 정도로 해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영화 ‘주유소 습격 사건’처럼 막가파식 폭력 사태가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상언 특파원



◆좌절 세대=영국 언론이 실업과 빈곤으로 사회에 불만을 가진 자국 청년들을 지칭한 용어. 20%를 넘어선 청년 실업률로 직업을 구하지 못한 영국 청년 상당수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함께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도 가지고 싶은 건 많아 불만과 좌절에 싸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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