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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아의 여론女論] 66년째 하수구 예산 타령







이영아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원




“지난여름의 수해는 삼십 일이나 계속된 장마였으므로 시내의 대소 도로와 하수의 손해가 의외에 심하여 이것을 복구하는 데는…총액 십오만원에 달하였는데 부(府)의 재정 형편상 방금 한 번에 전부 수선할 수는 없으므로…긴급히 복구를 요하는 곳만 수리를 급히 하여 공사비를 절약하고 예정하였던 관훈동, 인사동 등 북촌의 하수 공사 일부를 중지…”(‘빈궁한 경성부(京城府) 북촌 공사 중지-인사동 관훈동 하수공사 마침내 중도에 폐지한다’, 『매일신보』, 1926.9.24)



 일제 강점기 경성부의 하수도 건설 사업은 1918년부터 시작되어 식민지 시기 내내 지속되었지만, 그 사업의 실질적 내용은 극히 소규모의 임시방편적인 방식들이었다. 일본제국이 ‘재원 부족’을 이유로 식민지 도시 경성에 체계적인 하수도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위생을 도시계획의 최우선 과제로 삼은 도쿄가 상하수도 설비에 많은 공을 들인 것과는 대조된다. 이뿐만 아니라 조선총독부와 경성부는 일본인 부유층이 많이 거주하는 남촌 일대에 비해 조선인 거주지역인 북촌의 도시정비 사업을 등한시하는 차별적인 행정정책을 펼쳤다.



결국 하수 공사에 할당된 경성부의 부족한 재원으로 인해 청계천과 북촌의 하수 정비는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김백영, 『지배와 공간-식민지 도시 경성과 제국 일본』, 문학과지성사, 2009). 그래서 경성에 폭우가 쏟아지면 수해는 반복되었고, 특히 조선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북촌 지역의 피해가 심했고(‘불의(不意) 중의 홍수’, 『동아일보』, 1924.7.20), 하수 시설의 미비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유난히 폭우가 잦았던 올여름에는 특히 서울 지역에서 수해 참사가 많이 일어났다. 1920~30년대에 그랬듯 이번에도 수방대책 미비나 하수시설 부족 등에 의한 인재(人災)의 성격이 훨씬 더 큰 것 같다. 그 이후 서울시는 “수해방지대책의 핵심인 하수관거 확충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며 하수도 요금을 대폭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이 일본제국의 차별적 행정에서 벗어나 독립국가의 수도(首都)가 된 지 올해로 벌써 66년째다. 식민지 시절의 설움을 생각해서라도 해방 후 제일 먼저 손댔어야 할 것 중 하나가 하수시설 정비가 아니었을까. 그동안 그 많던 세금은 어디에 다 쓰였기에, 지금 와서 재원 마련이 또 필요하다는 것일까.



이영아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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