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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⑦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문학은 왜 외면하나, 가진 자의 속내를

소설 - 정미경 ‘파견근무’










“무너져내리는…” 소설가 정미경은 소설 ‘파견근무’의 분위기를 이 한마디로 요약했다. 겉보기엔 세련됨을 유지하지만 부지불식간에 자신을 놓쳐버린 주인공 ‘강’의 몰락, 정씨는 그 파국을 밀도 있게 파고 들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문학하는 이들에 대한 편견이 있다. 어디 문학뿐일까. 예술하는 이들이 ‘불행한 예술가’이길 바라는, 일상적 성취가 예술적 성취에 정확히 반비례할 거라 여기는 오래된 편견 말이다. 그것은 예술의, 문학의 태생이 그러하기 때문일 게다.



 인기 화가의 아내, 장성한 두 아들의 엄마이기도 한 소설가 정미경(51)은 그런 면에선 불리하다. 본인도 소설을 이렇게 정의하지만. “작가가 어떤 계층에서 자라났고, 살아가든 간에 소설이란 것은 인생에서 고통의 시간, 불안의 시간을 자양분으로 삼는 불행한 존재”라고. 그러나 편견은 편견일 뿐. 작품을 작가의 생활과 분리하지 못하고, 작품이 전적으로 작가 자신의 직접 체험에서 나온 육성일 거라고 착각하는 데서 나오는 잔인한 오류다.



 정씨는 두 번 등단했다. 1987년, 스물일곱에 중앙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당선됐다. 그 뒤 오랜 공백기를 거쳐 2001년 계간 ‘세계의 문학’에 소설로 또 한 번 등단했다. 이듬해 오늘의 작가상을, 2006년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14년간 어떻게 참았을까 싶을 정도로 두 번째 등단 직후 숨가쁘게 달려왔다. 쓰지 못하던 시절의 관찰이 그를 ‘디테일이 강한 작가’로 단련시켰다.



 정씨는 “처음 문학에 뜻을 가진 그때부터 삶에 예민한 촉수를 갖고, 매사에 그걸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말한다. 황순원 문학상 후보로는 2006년, 2008년에 이어 세 번째. 2008년엔 예심위원 5명 중 4명이 그를 추천했다. 수상작을 내지 못한 그 해, 정씨는 예심 최다 득표자 중 한 명이었다. 올해도 예심위원 5명이 만장일치로 그의 ‘파견근무’를 후보에 올렸다. 조경란의 ‘학습의 생’과 함께다.



‘파견근무’는 고향으로 순환근무를 자처한 판사의 이야기다. 빡빡했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났다가 2년이면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거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근무를 시작한 그는 지역 유지들과 엮이고, 봐주고 봐주는 먹이사슬에 얽히고, 도박에 빠진다.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목적성을 상실하면서 삶의 과녁을 벗어나게 되고, 본인도 모르는 새 자아 상실이 벌어지는 얘기”라고 작가는 요약한다.



 심진경 예심위원은 “정씨는 중산층 이상 사람들이 갖는 삶에 대한 불안감을 굉장히 잘 보여주는 작가다. 당연히 붙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가치와 의미에서 손을 놓아버리는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했다”고 평했다.



 여기서 방점을 찍어야 할 부분은 ‘불안감’만이 아니다. 바로 ‘중산층 이상’이다. 소설가 정씨가 서 있는 편견의 자리, 바로 그 지점 때문에 그는 한국 문단에서 소중한 존재다. 우리 문학은 주로 무산자(無産者)의 장르였다. 오갈 데 없는 청춘, 중산층 및 그 이상의 계층에게 선망과 경멸이란 양가감정을 가진 이들을 대변했다.



중산층 이상의 입장에서 이들의 속내를 다루면서도, 이들에 거리를 두고 성찰하는 문학은 흔치 않았다. 정씨는 말한다. “위에서 달라지지 않는 한 이 사회는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절망감이 제겐 있어요. 제가 그들의 삶을 다루는 것은 그 계층의 변화를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글=권근영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정미경=1960년 경남 마산 출생. 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 소설집 『나의 피투성이 연인』(2004년), 장편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2005), 소설집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2006) 등.





그늘에 살며 빛 찾는 사람, 그게 시인

시 - 이영광 ‘나무는 간다’ 외 14편










나무는 가지 않는다. 가지 않는 나무를 ‘질주한다’고 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동세, 사물의 배후에 보이지 않는 것의 일단을 언어를 통해 불러오는 것. 시인 이영광이 추구하는 시 세계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몸으로 시 쓰는 사람”(시인 최정례), “응달의 정신”(시인 박형준), “울림이 큰 시”(평론가 강계숙)….



2011년 미당(未堂) 문학상 예심에서 찬사가 쏟아졌다. ‘왜들 이러셔’ 궁금할 법도 하다. 미당 서정주 연구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는 공부 많이 한 이 시인이 왜 ‘몸으로 시 쓴다’는 평가를 받는지. 아픈 세상에 거친 펀치를 날리고, 때론 사랑과 죽음에 대해 서정적 절창을 쏟아내기도 하는 이 ‘전업 시인’에게 동료 문인들은 왜 열광하는지. 그래서 이영광(44)을 만났다.



나무는 간다



나무는 미친다 바늘귀만큼 눈곱만큼씩 미친다 진드기만큼 산 낙지만큼 미친다 나무는 나무에 묶여 혓바닥 빼물고 간다 누더기 끌고 간다 눈보라에 얻어터진 오징어튀김 같은 종아리로 천지에 가득 죽음에 뚫리며, 가야 한다 세상이 뒤집히는데



고문 받는 몸뚱이로 나무는 간다 뒤틀리고 솟구치며 나무들은 간다 결박에서 결박으로, 독방에서 독방으로, 민달팽이만큼 간다 솔방울만큼 간다 가야 한다 얼음을 헤치고 바람의 포승을 끊고, 터지는 제자리걸음으로, 가야 한다 세상이 녹아 없어지는데



나무는 미친다 미치면서 간다 육박하고 뒤엉키고 침투하고 뒤섞이는 공중의 決勝線에서, 나무는 문득, 질주를 멈추고 아득히 정신을 잃는다 미친 나무는 푸르다 다 미친 숲은 푸르다 나무는 나무에게로 가버렸다 나무들은 나무들에게로 가버렸다 모두 서로에게로, 깊이깊이 사라져버렸다



 -왜 시를 쓰나.



“시는 말이 넘치는 상태가 아니라 말이 끊어진 곳에서 시작된다. 할 말이 없는 상태, 말 가지곤 안 되는 상태, 그런 막다른 골목에서 찾는 또 다른 말, 도저히 말이 안 나올 것 같은 데서 나오는 어떤 말, 그게 시의 매력이다. ”



-용산 참사 때 현장에 나갔던 시인 중 하나였다. 당신의 시 어디에도 그 네 글자는 직접 언급되지 않지만.



“시의 딜레마는, 그런 공동체의 문제에 대해 쓸 때도 시인 자신의 몸을 통과하는 말로 써야 한다는 거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에 대해 자행하고 있는 폭력·고통·절망·죽음 같은 것은 씻어내고 풀어내야 하는데 사회질서, 법체계는 그런 걸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때 시인은 뭉쳐있는 감정을 파헤치고, 일일이 손으로 만지면서 그것을 언어로 드러낸다.”



이씨는 시 ‘유령’ 연작에서 3차까지 술 마시고 택시도 못 잡고 취한 새벽에 시든 폐지더미 리어카에 싣고 지나가는 ‘유령’을 못 본 척 하지 못한다. 경기도 구리까지 대리운전 기사와 귀가하면서 대리기사라는 도시의 유령 또한 외면하지 못한다. 그리고 조간 신문의 숱한 사망 소식 또한 덤덤하게 넘길 줄 모른다. 그는 선한 걸까?



“시가 사람을 바꾸는 면이 있다. 가면을 벗어 던지고 어쩔 수 없이 뭔가를 맨 얼굴로 대해야 하는 상황을 시가 제공한다. 인간 삶에서 보기 꺼려지는 거북한, 불편한 진실과 대면해야 하는 순간 말이다.”



그래서 그의 ‘응달의 정신’은 울림이 크다. “시인은 그늘에 사는 사람이다. 응달에서 빛의 세계를 보는 것이 어쩌면 시인의 포지션인 것 같다. 응달, 그늘에서 바라보면 빛의 세계가 더 잘 보이니까.”



글=권근영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영광=1967년 경북 의성 출생. 98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직선 위에서 떨다』(2003년),『그늘과 사귀다』(2007),『아픈 천국』(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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