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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8·15에 생각해보는 ‘자유’







박효종
서울대 교수·윤리교육과




해마다 8·15가 다가오면 감회가 새롭다. 일제로부터의 광복과 대한민국 건국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가 달려온 길이 예사롭지 않은 축복의 길이었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광복은 건국을 통해 그 의미가 온전해졌다. 건국정신을 반추해 보는 것이 이 시점에서 더없이 필요한 이유다.



 건국을 통해 대한민국이 자유민주공화국이 되었다면, 그 진정한 의미가 무엇일까. 흔히 자유민주주의라고 할 때, 자유주의가 함의하는 소극적 속성 때문에 사회민주주의와 대비시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런 인식이 전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나, 문제의 핵심은 다른 데 있다. 우리가 자유와 민주, 공화정을 공동체의 원리로 삼았다는 사실에는 기존의 자유론 논쟁을 넘어가는 의미심장한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공화국 수립은 법과 질서 유지를 위한 단순한 권력체의 수립이 아니라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이 이성적으로 소통하고 자신들의 운명을 합의나 설득에 의해 결정하는 정치체를 만들었음을 뜻한다. 이 정신을 아우르는 화두가 ‘자유’다. 자유의 개념에는 이런 엄숙함이 배어 있는 만큼, 자유주의자들의 소극적 자유나 복지론자들의 적극적 자유 가운데 어느 하나에 귀속될 만큼 평범한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자유의 여신상’이나 ‘자유로’에서 연상되는 ‘자유인’처럼, 정체성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유를 인간다운 삶의 최고 가치로 삼는 존재가 자유인일 터다.



 과거 서구의 민주국가들이 동구나 소련의 공산당 통치에 대항해 자신을 ‘자유세계’라고 지칭했던 경우가 바로 이런 자유다. 또 우리가 김일성·김정일 전제통치와 구분하여 대한민국을 ‘자유국가’라고 부를 때 담겨 있는 의미도 그렇다. 이처럼 자유인의 품위 있는 삶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헌법은 자유민주공화정 헌법이다. 물론 민주공화정이라고 해서 자유의 훼손이나 억압과 같은 저질스러운 것들이 없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점에 있어서는 단호했다. 북한의 경우처럼 주민 전체를 노예로 삼는 통치질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요즈음 헌법 조항을 놓고 때아닌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119조와 관련해 불거진 논쟁이다. 119조는 1항과 2항으로 구성돼 있는데, 자유시장론자들은 경제자유를 규정한 1항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복지론자들은 정부의 개입에 폭넓게 문을 열어놓은 2항을 강조한다. 물론 자유시장론자들과 복지론자들의 논쟁이 흥미롭기는 하지만 자신들의 입장을 헌법 조항을 빌려 강변하는 데 불과할 뿐, 자유·민주·공화를 규정한 헌법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요즈음 ‘7광구’라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상영 중인데, 석유시추선에서 괴물이 출현한다는 내용이다. 광구라면 석유를 파내는 곳인데 웬 괴물 소동인가 하며 생뚱맞다는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다. 하기야 영화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헌법 119조는 영화가 아니지 않은가. 자유인의 삶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헌법이라면, 그 정신을 바로 이해하는 데 힘을 쏟아야지 작은 정부 옹호론이니 큰 정부 옹호론이니 하며 웬 견강부회의 소동을 벌인단 말인가.



 우리는 개처럼 묶여 지낸 소년이나 멍텅구리 배에서 강제노역을 하며 지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미어진다. 개인에게 닥친 운명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기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이 아니라 구성원 전체가 노예처럼 살아가는 공동체가 있다면, 개인의 경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한 일이 아니겠는가. 실로 우리에겐 60여 년 전 그런 절체절명의 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노예의 삶이 아닌 자유인의 삶을 희구했던 대한민국 건국자들의 결단으로 북한지역을 제외하고 단독정부를 세우는 일도 불사했던 것이다.



 헌법에 명시된 자유란 ‘정부 간섭으로부터의 자유’나 ‘정부 개입을 통한 자유’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패트릭 헨리의 절규에서 나타난 것처럼, 폭군의 횡포에 굴종하지 않겠다는 공화적 자유의 표현이다. 이런 공화적 자유는 정부 간섭의 유무보다 권력을 변덕스럽게 행사하는 통치자 밑에서 구차스러운 삶을 살지 않겠다는 자유인의 결의에 다름 아니다. 헌법 전문에 나오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구절이 그걸 말해준다. 그렇다면 오늘날 표를 얻기 위한 아전인수식 발상으로 복지 포퓰리즘을 정당화하고자 119조를 해석함으로써 건국과 헌법 정신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고 있지 않은지 정치인들은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윤리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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