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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의준 경제연구소장의 경제 산책] “해보기는 했어” 정주영의 일갈







박의준
경제연구소장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 여파로 한국 주가가 속절없이 무너졌던 9일 밤, 부산 사직 야구장에서는 감동 드라마가 연출됐다. 넥센의 신참 투수 심수창이 롯데전에서 무려 786일 만에 첫 승을 거뒀다. 프로야구 최다 연패 기록인 18패 끝에 귀중한 첫 승리를 낚아챈 것. 3대1로 승리를 거머쥔 직후 모든 선수가 심수창의 어깨를 다독이며 축하했다. 심수창은 “남들은 10승, 11승도 올리는데 나는 매 경기 최선을 다해도 1승 올리기가 그렇게 어려웠다”고 울먹였다.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는 관중도 여럿 있었다. 심지어 롯데 팬들도 “졌지만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외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다시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심수창은 “오늘 1승으로 제2의 야구인생이 시작된 것 같다”고 했다. 성적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박병호와 함께 최근 넥센으로 옮겨온 그는 ‘18전19기’의 대(?)기록을 세웠다. 여기엔 한마음으로 ‘심수창 구하기’에 나선 넥슨 야구단의 공이 컸다. 김시진 감독은 경기 전 “네 마음대로 해봐라”며 힘을 실어줬고, 동료들은 모두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승리를 안겨주겠다”고 응원했다. 심수창에게 패자부활의 기회를 준 감독이나 코치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게 한 주인공들이다. 안타를 맞아도 믿어주는 이들의 지원 속에서 심 선수가 스스로 이겨내는 방법을 깨우치지 않았을까. LG 시절 타율이 1할대로 형편없었던 박병호에게 4번 타자를 과감하게 맡긴 것도 용단이다.



 패자부활전이 꼭 필요한 건 스포츠뿐만이 아니다. 냉엄한 승부는 기업이나 가계, 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 사이에 늘 가려진다. 잘나가던 기업도 방심하면 한순간에 위기를 맞거나 아예 거덜난다. 리먼 브러더스나 도요타의 실패가 좋은 예다. 국내에서도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무려 16개 그룹이 부도를 맞거나, 화의 또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50년 이상 장수하는 국내 기업은 780개(2009년 기준, 대한상의 조사)에 불과하다. 어차피 기업은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게 마련이다. 실패가 잦아도 이를 자산으로 만들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 위기를 딛고 대박을 터뜨린 기업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특히 도요타 등 글로벌 기업의 실패 사례에서 많은 걸 배워야 초일류 기업이 될 수 있다. 한국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경험한 덕에 다른 선진국들보다 빨리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좀처럼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면서 너무 칭찬과 격려에 치중한 탓인지 실패를 아예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도 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세계적인 천재도 10개 아이디어 중 한 개만 성공시키는데, 우리는 천재 한 명이 아이디어 하나 냈다 실패하면 매장당한다”고 말했다. 싹수 있는 사회일수록 리스크 테이킹(위험 감수)을 하지만 우리는 똑똑한 사람들이 이를 피한다고 지적한다. 실패를 두려워하니 한국이 경쟁국보다 먼저 치고 나가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기 어렵다. 그래서 그는 “청년들에게 실패할 자유를 허(許)하라”고 외친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도 새로운 사업 추진을 앞두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임직원들에게 “해보기는 했어”라며 호통을 쳤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이 없었다면 오늘의 삼성·현대 그룹이 있었겠는가. 큰 인물이 되기 위해선 실패나 좌절을 겪어봐야 한다.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사장으로 키울 만한 인재들에겐 한 차례 물(좌천)을 먹인 뒤 중용했다고 한다. 그래야 남들의 어려운 사정을 알고 세상 인심이 다 같지 않다는 걸 절감한다는 판단에서였다.



 요즘 또다시 세계경제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코리아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경제 펀더멘털(기초여건)이 비교적 괜찮은 데다 실패 현장에서 경험했던 선수가 많다. 이들로 대책반을 꾸려 시의적절하게 대응한다면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다. 다만 위기 극복 과정에서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이는 서민·중소기업인·자영업자들에게 패자부활전의 길을 활짝 열어 놓는 배려가 절실하다. 실패는 최고의 자산이다.



박의준 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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