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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 김인권, 망가질수록 살아나는 남자

꼭 원빈·현빈·송승헌이라야 ‘호감형’인가. 이 얼굴은 분명, 보기만 해도 괜히 웃음이 나는 진정한 호감형 아닌가. 배우 김인권(33) 말이다.



‘해운대’에서 숨막히게 내려 꽂히는 컨테이너를 열심히 피해 달아나던 ‘츄리닝 청년’, ‘방가?방가!’에서 입을 오무리고 “안녕하세요, 방가입니다”라며 비굴함을 감추지 않던 ‘부탄 이주노동자’를 통해 그는 터지는 웃음 속에 왠지 모를 안쓰러움을 갖게 했다.



최근 200만 관객을 돌파한 ‘퀵’도 그렇다. 폭주족 시절 짝사랑하던 여자를 뒤쫓는 경찰 역. 명동 한복판에서 짬뽕 국물과 음식 수거통을 뒤집어쓰는 어수룩함이 공무집행의 엄숙함을 여지없이 깨버린다.



수틀리면 남의 머리를 볼펜으로 사정없이 내려찍던 ‘말죽거리 잔혹사’의 찍새 같은 역도 강렬했지만, ‘해운대’와 ‘방가? 방가!’ 이후의 김인권은 확실히 자기 옷을 찾아 입은 듯하다.



하늘은 스스로 망가지는 자를 돕는 걸까. 김인권도 슬슬 그 이치를 깨달아가는 듯하다. “관객들이 날 보고 웃을 때 비로소 존재감이 느껴지고 외롭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는 걸 보면.



미국의 영화평론가 폴린 카엘은 “모든 예술가의 최대 특권은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김인권은 그 특권을 오래도록 누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김인권의 표현대로라면 그는 지금 “딱 사고 치기 좋은 시점”이다. 1998년 ‘송어’로 데뷔한 이래 최고의 상종가다. ‘해운대’(2009)의 ‘컨테이너 피하는 남자’ 동춘 역으로 각광 받은 후 지난해 첫 주연작 ‘방가? 방가!’가 저예산 영화라는 약점에 아랑곳없이 100만에 육박하는 관객을 끌어 모았다.



이민기·강예원과 출연한 ‘퀵’은 최근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순항 중이다. 그가 맡은 폭주족 ‘화양리 레이더스’ 출신 경찰 역은 원래 비중이 훨씬 작았다. 김인권이 캐스팅되자 제작자 윤제균 감독이 코미디 설정을 확 늘린 것이다. 이뿐 아니다. 현재 ‘7광구’ ‘화려한 휴가’ 김지훈 감독의 재난영화 ‘타워’를 찍고 있고, 가을이면 ‘방가? 방가!’의 육상효 감독과 ‘구국의 강철대오’ 촬영에 들어간다. 연말엔 또 다른 출연작인 강제규 감독의 전쟁영화 ‘마이 웨이’가 극장에 걸린다.



‘해운대’를 기점으로 김인권은 ‘이미지 세탁’에 성공했다. 심각하거나 악했던, 그렇기에 “인물은 남는데 배우는 안 남던” 진한 조연의 시절을 과거로 흘려 보냈다. 대신 코믹하면서도 짠한 ‘동네 청년’이 됐다. 취업이 안 돼 부탄 출신 이주노동자로 위장했던 ‘방가? 방가!’의 태식은 김인권에게 꼭 맞는 옷이었다. ‘퀵’의 경찰 명식도 김인권이 아니었으면 그냥 ‘주접’ 캐릭터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심각함보단 웃음에 더 어울리는 이유 중 하나는 ‘절대동안’ 때문이다. 도수 없는 뿔테 안경을 잠시 벗으니 다섯 살은 어려 보인다. 보는 이의 경계심을 그냥 풀어버리는 앳됨이다. 스스로는 “조명을 가르지 못하는 (조명을 받았을 때 얼굴에 음영이 생기지 않는) 들창코다. 이 코로 배우하고 있는 사람은 나 말고는 없다”고 깎아 내리지만.



사람들은 그를 보고 웃는다. “편안해서 그런가? 분명한 건 동경의 대상은 아니란 거다. (웃음) 찌질하게 생긴 애가 자기가 맡은 역할의 권위를 실추시키니까 웃는 것 같다. 경찰이면 공무집행에서 오는 위압감이 있어야 하는데, 난 그걸 다 망가뜨리니까. 권위를 무너뜨리는 코미디 배우로 사용될 때 내 존재가치가 가장 높아지는 것 같다. 윤제균 감독님과 육상효 감독님이 동정심과 모성애를 유발하는 내 외모를 잘 이용한 거다. 할리우드를 봐라. 잭 블랙, 애덤 샌들러, 짐 캐리 다 동안 아닌가.”(웃음)



그의 사전엔 ‘본능적인 연기’라는 표현은 없는 듯했다. 타고난 코미디 배우라기보다 머리 좋은 코미디 배우라고 해야 할까.



“모든 역할을 분석한다. 본능적으로 분석한다. 감정이 아니라 논리로 이해한다. 어떻게 해야 이 영화에 맞을까, 저 배우는 저렇게 액션을 하니 난 이렇게 리액션을 하는 게 낫겠다, 이런 식이다. 목표치를 정해놓고 거기에 최대한 비슷하게 가기 위해 리얼리티를 입히는 거다. 연기는 그렇게 관객을 속이는 작업이다.”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하면서 영화와 인연을 맺게 됐지만, 연기는 그의 성장 과정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였다. 김인권의 유년 시절은 일반적인 의미의 ‘평범’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무엇보다 부모와 떨어져 산 기간이 길었다. 태어나 네 살 때까지 증조외할머니와 외할머니한테 맡겨졌고, 초등 5학년 땐 고향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외할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초등 3학년까지는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롤렉스 시계를 차셨고, 집엔 도요타 승용차가 있었으니까. 아버지 사업이 망하고 나선 대구 고모 집에 1년 정도 혼자 맡겨졌다. 수돗물도 안 나오는 시골이었는데, 매일 우물물을 길으며 ‘엄마는 언제 나 데리러 오나’ 기다렸다.”



서울 유학은 ‘그래도 8학군에서 공부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주장에 따른 것이었다. 교육열이 높던 어머니가 2년 할부로 들여놔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세트가 6평 남짓한 셋방을 더 비좁게 만들었던 게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운동회 등 학교행사가 있어도 가족이 오지 않았던 타향살이는 외로웠다. 그걸 달래줬던 게 교회 연극활동이었다.



“목사님이 나처럼 엇나가기 쉬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을 모아 청소년부 활동을 하게 했다. 대본도 쓰고 연기·연출 다 해서 연극을 무대에 올리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사람들이 날 보며 웃고 즐거워하는 게 좋다는 걸 그때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별명이 ‘대두(大頭)’였던 고교시절 학생회장 선거 얘기를 들어보면 그때 이미 코미디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듯싶다.



“반에서 20등쯤 했으니 회장 후보가 될 성적이 안 됐는데 사정사정해서 올라갔다. 그런데 나처럼 재미나게 선거운동을 하는 애가 없었다. 나미의 ‘빙글빙글’에 맞춰 춤추면서 애들을 웃겼다. 대중을 선전·선동하는 데 소질이 있었던 것 같다. 지지율 80%로 당선됐다.”



‘롤렉스·도요타에서 우물물까지 떨어져본’ 경험은 그에겐 ‘반짝 인기’에 취하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등이다.



“추락해봤기 때문에 고통을 안다. 그 고통을 감내하느니 천천히 벽돌 쌓으면서 가겠다고 다짐한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말은 진리다. 배우는 인기 맛을 보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직업이다. 로또 맞은 사람 최후가 좋지 않은 건 다 이유가 있다. 영화가 혹평을 받아도 이건 다 과정이겠거니 하는 것도, 연일 칭찬받더라도 ‘너무 우쭐하면 사람 망치겠구나’ 경계하는 것도 그래서다. 대신 난 미래에 산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믿으면서.”



주요 출연작



영화


2011 ‘퀵’‘마이 웨이’(개봉 예정)

2010 ‘방가?방가!’

2009 ‘해운대’‘시크릿’

2008 ‘숙명’

2007 ‘용의주도 미스신’

2004 ‘말죽거리 잔혹사’

2001 ‘조폭마누라’

2000 ‘아나키스트’

1998 ‘송어’

 

드라마

2010 ‘나는 별일 없이 산다’

2009 ‘미남이시네요’‘이웃집 남자’

2007 ‘외과의사 봉달희’



글=기선민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시시콜콜] 김인권을 알아본 감독들



‘송어’ 연출부로 갔다 엉겁결에 캐스팅, 박종원 감독은 나의 ‘첫 정’




배우 김인권이 여기까지 오는 데는 세 명의 눈 밝은 감독이 있었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인 박종원 감독을 “첫 정”이라고 표현했다. 박 감독의 ‘송어’(1998) 연출부로 참여했다가 엉겁결에 연기를 하게 된 인연 때문이다. 억울한 누명을 쓰자 광기 어린 분노를 터뜨리는 산골 소년 태주 역이었다. A4용지 50장 분량의 캐릭터 분석을 준비할 정도로 가슴속 뜨거움이 넘쳐나던 시절 “잊을 수 없는 작품, 잊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송어’에서 각인된 인상은 그를 ‘아나키스트’ ‘말죽거리 잔혹사’ 등을 통해 인상 깊은 조연으로 클 수 있게 해 줬다. 출세작인 ‘해운대’(2009)의 윤제균 감독과 첫 주연작 ‘방가?방가!’(2010)의 육상효 감독도 빠질 수 없다. “윤제균 감독님은 김인권이란 배우의 가치를 알아 준 사람이죠. ‘해운대’로 대중과 만나는 법을 비로소 배웠으니까요. 남자는 자기를 알아 준 사람한테 목숨도 바친다는데, 그 기분을 알 것 같다니까요.”(웃음) 육상효 감독과는 ‘구국의 강철대오’로 다시 뭉친다. 1980년대 시위현장에 어쩌다 휩쓸리게 된 ‘철가방’ 역이다. “절 제일 마음껏 놀 수 있게 해 주는 곳이 육 감독님 촬영장이죠. 워낙 많이 믿어 주시니까요. 현장에 있다 보면 어느새 제가 감독님의 아바타가 된 듯한 느낌이랄까.” 두 감독에게 ‘배우 김인권의 어디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다. “일단 연기를 잘하고,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소유자라서”(윤), “똑똑하고, 배우와 배우 아닌 사람을 구분 짓지 않는 자세가 좋아서”(육)라는 답이 돌아왔다. ‘배우 김인권’도 좋지만 ‘인간 김인권’에 더 마음이 쏠리는 눈치다.



김인권과 ‘인간적으로’ 함께하는 사람은 또 있다. 20년지기 매니저 임찬묵이다. “영화라는 같은 꿈을 가진” 두 사람은 중학 동창이자 교회 친구다. “찬묵이와 전 ‘김인권’이라는 회사의 직원이죠. 청룽(成龍·성룡)의 오랜 매니저 윌리 찬처럼 서로 균형을 잡아 주며 발전해 가는 파트너십을 지향합니다.”



기선민 기자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김인권 [現] 영화배우 197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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