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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⑥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난해함, 그 힘든 정신노동 끝의 달콤함
시- 이수명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외 13편



이수명 시인에게 시란 “미지를 탐험하고 즐기는 작업”이다. 그는 “독자와 작품 사이에 내밀한 소통이 많이 이뤄질수록 치유의 폭과 깊이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이수명(45) 시인의 시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가령 ‘어느 날’은 “날이 차갑다/날이 또렷하다”고 했다가 바로 “날에서 상한 냄새가 난다”로 점프한다. ‘체조하는 사람’은 어떤가. “체조는 심심하다/체조가 나에게 휘어져 들어올 때 나는 체조를 이긴다”니. 여러 번 입 안에서, 머리 속에서 곱씹어야 조금씩 실체가 드러난다. 쉽지 않은 시다. 그런데 난해하다고 그냥 치워버리진 마시라. 노동의 대가는 분명 있다.



 “어렵지만 이지적인 시”라는 심사평도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예심 심사위원 함돈균 시인은 “이지적이면서도 육체성이 느껴진다”고 했다.



뜬구름 잡는 난해함이 아니라는 얘기다. 언어와 문장 뒤에 숨어 있던 ‘술래’를 찾았을 때 느껴지는 술래잡기의 기쁨이 준비돼 있는 시라고 할까.



 이 시인에게 예술은 고도의 정신노동이다. “예술은 눈에 잘 보이지 않아요. 학문은 주장하고 선언해서 지식으로 인정받지만, 예술은 말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비밀을 감추고 있죠. 모르는 길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가는 게 예술인 것 같아요. 이상이나 보들레르, 말라르메 등은 당대에 굉장히 어렵게 받아들여졌던 시인이에요. 하지만 후대에 와선 즐기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시대와 감각의 변화가 포용할 수 있는 폭을 넓힌 거죠. 영원히 해독할 수 없는 시라는 건 없어요.”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도 그런 ‘비밀’을 건드린 시다. 그는 “굉장히 빨리 써 내려갔던 시다. 그래도 내 시 중에 쉬운 편이라고 해서 골랐다”며 웃었다.



 그는 삶에서 가끔 마주치는 섬광 같은 강렬한 이미지를 잡아내길 즐긴다. 포착한 이미지와 순간의 상념을 옮긴 시어는 독창적이다. “건물을 올려다본다/(…) 공란이 많아서 울고 싶었다”(‘이 건물에 대하여’), “내가 베어 물었을 때 너는 썩으려 한다/단 한 차례의 생애에서 우리가 의인화되는 순간이다”(‘의인화’), “내가 너를 흘러나오는 피처럼 곤란하게 해줄 것이다”(‘대위법’) 등의 표현에서 ‘육체성’이 느껴진다.



 어린 시절부터 “숨쉬기와 비슷한 수준으로 글쓰기를 했다”던 이 시인은 1994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아 등단했다. 서울대 국문과 졸업 후 몇 년 동안 문학과 멀어졌다가 이상의 ‘절벽’과 재회한 걸 계기로 17년간 꾸준히 낯선 언어와 은밀히 소통해왔다.



글=기선민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이수명=1966년 서울 출생. 94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근간)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붉은 담장의 커브』등. 박인환 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수상.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



창을 바라본다.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



이것이 누군가의 생각이라면 나는 그 생각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누군가의 생각 속에 붙들려 있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의 생각이라면 나는 누군가의 생각을 질료화한다. 나는 그의 생각을 열고 나갈 수가 없다.



나는 한 순간,



누군가의 꿈을 뚫고 들어선 것이다.



나는 그를 멈춘다.



커튼이 날아가버린다. 나는 내가 가까워서 놀란다. 나는 그의 생각을 돌려보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생각을 잠그고 있다. 나의 움직임 하나하나로



창문이 비추고 있는 것



지금 누군가의 생각이 찢어지고 있다.





숨기고픈 기억, 가짜로 써내려간 자서전



소설 - 윤성희 ‘부메랑’










윤성희씨는 “반듯한 글만이 정답이 아닌 것처럼, 우리 삶이 정물화처럼 명료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자서전을 써 보면 알게 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누구의 인생에든 ‘이야기’가 있음을 보여주는 작가가 윤성희(38)다. 황순원문학상 후보에 오른 ‘부메랑’(‘대산문화’ 2010년 가을호)은 자서전을 쓰는 늙은 ‘그녀’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녀가 쓰는 것은 가짜로 점철된 인생이다. “봄이면 사과나무 아래 돗자리를 펴고 누워 하늘을 보았다”는 문장을 쓰곤, 이상하게도 지우기가 싫어 부모님이 사과농장을 했으며, 가을엔 인부를 열 명이나 고용했다는 거짓말을 쓴다.



 또, 그렇게 크게 농장을 했다면 가정부 하나쯤은 집에 있어야 어울린다 싶어 없던 인물도 만들어낸다. 평생 꽃 한 번 사 본 적 없었지만 “식탁 위엔 언제나 화분이 놓여 있다”고 자서전에 쓰기 위해 꽃집에 들어선다. 자서전이 삶까지 바꾸는 지경이다.



 하지만 자서전 쓰기가 순탄치는 않다. 자서전에서 ‘그녀’는 십여 년 전 돈을 빌리러 왔던 동창에게 십만 원을 던지며 “기미나 수술해라. 얼굴이 그게 뭐냐”고 차갑게 말했던 걸 후회한다고 적었다. 그러나 누군가 그녀의 자서전을 읽는다면 왜 하필 기미인지 의아해할 것임을 안다. 자서전에 쓰지 않은, 묻어둔 기억이 떠오른다. 엄마를 잃은 동창은 ‘그녀’의 집에 채권자로서 찾아왔었다. 엄마는 죽기 전, ‘그녀’의 엄마에게 받지 못한 돈이 있음을 딸에게 알려줬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엄마는 시치미를 뗀다. 그때 동창이 던진 말이 “기미 잔뜩 낀 마귀할멈처럼 늙어버려라!”였다.



 소설에선 이렇게 주인공의 기억과 거짓 자서전의 내용이 얽히고설킨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꾸며낸 것인지 모호해진다. “피하고 싶은 기억은 흔히 엄청난 것들이라 생각하죠. 실은 아주 사소하고 부끄러운 기억일 수 있어요. 잊고 살다 보면 나중엔 그 기억이 내 것인지 내 친구 것인지조차 모호해지죠.”



  지난해 후보작이었던 ‘공기 없는 밤’은 남자 노인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였다. 영화의 내용과 노인의 기억이 뒤섞이는 방식으로 직조된 작품이었다. 이에 비해 ‘부메랑’은 여자 노인 편이랄 수 있겠다.



  “기억을 회상톤으로 쓰지 않았어요. 과거의 문장을 현재의 삶에 던져 넣는 시도가 재미있거든요. 독자도 던져놓은 문장을 짜깁기해야 추측할 수 있고, 소설 안에 여러 겹이 생기기도 하고요.”



  작가의 작업은 한 사람의 인생을 짧은 문장으로 압축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령 소설에서 ‘그녀’가 시어머니에 대해선 “결혼을 반대했다”는 단 한 문장만으로 정리한 것처럼 말이다. 소설에는 ‘그녀’의 이야기, 그녀 주변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정교하게 직조돼 있다. 단단한 문장과 문장이 만나 치밀한 탑을 쌓아나간다. ‘그녀’의 거짓 자서전도 퀼트처럼 단단히 봉합되는 듯하다. 그러다 한 순간 ‘그녀’가 조각난 진실 앞에서 허물어지는 장면이 백미다.



  심진경 예심위원은 “이청준의 단편 ‘자서전들 쓰십시다’ 이후 한국문학에서 자서전은 스스로를 영웅시하는 일종의 자아상실의 방식으로 그려졌다. 윤성희는 자서전 쓰기에 대한 풍자적 시선을 유지하면서, 자기와 자서전 속의 또 다른 자기를 분리시키는 객관적 거리화를 이뤄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글=이경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윤성희=1973년 경기 수원 출생. 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현대문학상·이수문학상 등 수상. 장편 『구경꾼들』, 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 『거기, 당신?』 『감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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