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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76) 정진우 감독과 초우





스포츠카·레인코트 …‘초우’는 카메라로 쓴 시



신성일·문희 주연의 영화 ‘초우’(1966). 카센터 직원 철(신성일)이 데이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훔치다 군중에 잡혀 얻어맞은 장면을 클로즈업했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올처럼 비가 많은 해도 없었던 것 같다. ‘초우(草雨)’만큼 비에 어울리는 영화가 있을까.



 ‘초우’는 1966년 5월 정진우 감독이 ‘하숙생’ 바로 직전 촬영한 작품이다. 카센터 직원인 철(신성일)이 손님의 빨간 외제 스포츠카를 몰고 나갔다가 노란 외제 레인코트를 입은 영(문희)을 만난다. 영은 원래 프랑스 대사의 가정부. 철은 돈 많은 부자의 아들로, 영은 프랑스 대사의 딸로 자신을 치장한다.



서로 신분을 감춘 채 데이트를 하는 두 사람은 상대를 통해 신분상승을 꿈꾸며 비 오는 날 오후면 무조건 만나기로 약속한다. 영은 비가 오자 ‘어머, 우리들의 비’라 외치며 집을 뛰쳐나간다. 결국 자신의 신분이 탄로난 철은 영에게 용서를 구한다. 영도 가정부였다고 고백하자, 철은 영의 레인코트를 찢어 그걸로 때린 후 육체를 범한다. 위선의 껍데기를 벗겨버리는 영화다.



 ‘초우’ 같은 영화를 예쁜 작품이라고 부른다. 시적인 분위기로 가득하다. 정 감독은 ‘영화는 카메라가 펜이나 마찬가지다. 카메라로 써 내려가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철학으로 촬영했다. 국내 영상영화(시네 포엠)의 시초라 할 수 있다. 시청 광장·장충동 공원 등 서울의 명소를 아름답게 담았다. 그래서 롱샷(long shot· 먼 거리에 찍은 장면)이 많다.



 문희의 출세작이 ‘초우’다. 문희는 65년 ‘흑맥’으로 데뷔했지만 몸이 작아 다른 감독들에게 발탁되지 못했다. 정 감독은 가정부 영의 모델로 문희를 놓고 시나리오를 썼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처럼 풀밭을 뛰어다니는 문희는 이 영화에서 절제된 야성미를 드러내며 진가를 발휘했다.



 이성을 잃은 철이 한 손으로 문희의 머리채를 쥐고 헛간으로 끌고 가는 장면이 있다. 영이 워낙 실감나게 끌려가서 그 장면을 잊지 못하는 분이 많다. 사실 머리채를 확 끌어당기는 대목은 약속에 따른 연기였다. 나는 미스 문에게 이렇게 알려주었다.



 “미스 문, 내가 머리채를 쥐자 말자 내 손목을 꽉 쥐라고.”



 내 손에 머리채를 잡힌 문희의 몸이 붕 뜬 것은 내 손목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 그랬으면 문희의 머리털이 다 빠졌을 것이다. 바쁜 스케줄에도 아이디어가 번쩍번쩍 떠올랐던 때였다. 영이 헛간에서 철에게 몸을 앗기는 장면이 마지막 대목이다. 정 감독은 여주인공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팬티만 빼고 다 벗을 정도로 찍었지만 그 장면은 검열에서 삭제됐다.









정진우 감독



 나와 동갑인 정 감독은 ‘배신’ 촬영 당시 나와 엄앵란의 키스를 최초로 지켜본 목격자다. 66년에만 ‘초연’ ‘하숙생’ ‘악인시대’ 등 다섯 작품을 한꺼번에 찍으며, 무려 22일 동안 못 자고 촬영했다고 한다. 최고 인기감독이었다. 하지만 과격한 성격과 거침없는 말투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는 내가 ‘영화인’이란 타이틀을 붙이는 유일한 사람이다. 영화에 대한 애정에서 그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 좋은 작품을 많이 연출했을 뿐 아니라 영화사 우진필름을 차려 제작에도 열중했다. 서초동 시네하우스 극장도 운영했다. 문예진흥기금 문제로 곤혹을 치르기도 했지만 그건 극장 운영상 생긴 문제였다. 신상옥 감독 다음으로 많은 영화 기자재를 갖고 있었다. 고향 김포의 인삼 밭을 팔아 영화에 투자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뜨겁고, 뜨거운 남자였다.



신성일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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