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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브리지’서 철학·역사학 공부 내지르지 않고 한숨처럼 노래

두꺼운 삶과 얇은 삶이 있다. 오래전에 출간된 김현의 평론집 제목이기도 하다. 나는 두 가지 삶을 다 살아 봤다. 삼십대 후반까지는 마른 멸치에 가까운 얇디얇은 삶이었다. ‘인간이 어떻게 하면 배가 나오는 거지?’ 하고 진심으로 의문을 가졌었다. 언젠가 머리를 확 깎아 버리니 무장공비 같다고들 했다. 어떤 신인문학상에 당선된 시인의 소감문에 ‘체중이 50㎏ 넘으면 더 이상 시인이 아니다’는 구절을 봤는데 그 경계를 약간 넘는 수준이었다. 깡마르고 눈이 퀭하면 슬퍼 보인다. 중요한 것은 슬픔 자체가 아니라 슬퍼 보인다는 인상이다. 슬퍼 보이는 무장공비에게 소녀들이 반응한다. 개그를 하면 허무감의 발로로 간주해 주고,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면 알아서 고독한 의미를 실어 준다. 얇은 삶이 뭉게뭉게 피워 올리는 슬픔의 아우라에 열화와 같은 소녀들의 시선이 꽂혔고 그때 나는 좀 바빴다.

詩人의 음악 읽기 슈베르트 겨울나그네-이언 보스트리지

얇은 삶의 주제가는, 그러니까 슬픔의 노래는 슈베르트 가곡에 다 담겨 있다. 우리가 ‘겨울 나그네’라고 부르는 연가곡집 ‘겨울여행’ 24곡은 눈물을 닦으면서 듣는 노래다. 조국이 망한들, 인류가 멸망한들 그렇게 슬플까. 사랑에 실패하고 추적추적 방랑길을 나서는 뒷모습에 깔리는 ‘편히 쉬어’ ‘얼어붙은 눈물’ ‘곱은 손’ ‘회상’ ‘마지막 희망’ ‘폭풍의 아침’ ‘이정표’ ‘여인숙’ ‘거리의 악사’ 등의 노래는 가슴에 자상을 일으키는 칼이다. 멸치면서 공비였던 청년에게 슈베르트는 동업자이고 친구였고 대변자였다.

그런데 약간 난감한 문제가 있었다. 다음은 슈베르트의 가곡입니다 하고 FM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은 거의 언제나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작은 사진)였다. 몇십 년간 그랬다. 예술가곡을 부르는데 그를 능가할 만한 교과서는 아직 없다. 그런데 그의 바리톤 음역은 꽤나 두텁고 강인하게 들린다. 생김새도 오동통한 전형적 아저씨 상이다. 사랑의 실패로 울고 굶고 잠 못 자서 바짝 마르고 눈가가 깊게 파인 청춘의 이미지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워낙 대단한 인물이니 그 목소리를 비켜 갈 방법은 없는데 피셔디스카우를 통해서는 영 슬픈 슈베르트가 구현되질 않았다. 다른 목소리는 없을까.

토마스 크바스토프 음색은 신비로워
피셔디스카우처럼 바리톤이지만 페이소스 가득한 음색으로 프랑스의 제라르 수제가 꼽힌다. 최고란다. 하지만 그는 뭐랄까, 타고난 공무원 같다. 더 사족을 붙이지 않겠다. 애잔한 음색으로 더 소문난 인물로 테너 페터 슈라이어가 있다. 그런데 이건 또 뭐랄까, 너무 풍요로운 미성이다. 슈라이어가 부른 슈만의 ‘시인의 사랑’은 결정판이라 하겠지만 슈베르트에서는 외롭고 힘없는 청년의 한숨이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너무 많은 사람이 프리츠 분더리히를 특별히 사랑하는데 솔직히 그 양반, 좀 느끼하고 안 불쌍해 보이지 않은가?

그러다 마침내 짜잔 하고 나타난 사나이가 있다. ‘아아, 기대하고 고대하던 그 목소리!’ 변사풍으로 외치고 싶은 대망의 목소리가 1990년대 중반에 나타났으니 바로 영국의 이언 보스트리지(큰 사진)다. 참으로 깡마르고 참으로 배고파 보이는 그 인상과 아슬아슬한 목소리. 그는 내지르지 않았고 마치 한숨처럼 노래를 불렀다. 알고 보니 그는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대에서 철학·역사학을 전공하고 ‘마녀사냥과 그 변형’이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학자였다. 뒤늦게 성악을 익혀 스물아홉 살에야 데뷔를 했는데 무대로 이끌어 준 인물이 하필 육중한 피셔디스카우였다. 어쨌든 진짜 슈베르트가 나타났도다 하는 찬탄이 전 세계에서 일어난 모양이다. 단박에 보스트리지는 최정상 리트 가수로 등극했다. 방송 DJ들도 더 이상 망설임 없이 피셔디스카우 음반을 밀쳐 내고 그의 음성을 실었다. 오로지 ‘불쌍’이어야 슈베르트라고 믿는 나는 좀 헛갈렸다. 보스트리지가 서른두 살에 불쌍하게 죽은 청년 슈베르트의 비감한 서정에 가장 가깝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런데 1m52㎝와 1m90㎝의 키 차이, 한번도 연애를 못해 본 인생과 대단한 작가를 아내로 둔 인생, 이 두 사람 사이의 간극은 어쩐담.

지금 나는 뒤룩뒤룩 두꺼운 삶을 산다. 무게가 변하면 세계관도 감성도 다 변한다. 얇은 삶의 기억이 가물가물하기까지 하다. 아, 어떤 착각이 있었다. 슈베르트 가수에 대한 까다로운 자격 심사는 내가 두꺼워지고 나서, 그러니까 나중에 했던 생각이 틀림없다. 얇은 시절에는 나 자신이 슈베르트여서 누가 어떻게 부르든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쓸데없이 가수의 생김새·몸무게·키·학벌까지 따지는 것은 모종의 증상이었다. 질시 혹은 선망이라는 이름의 병. 보스트리지에 뒤이어 토마스 크바스토프가 나타났다. 그는 육신이 심하게 온전하지 못한데 그 음성은 깊고도 아득하여 신비롭기까지 하다.

얇은 삶의 시절에 인생은 불쌍하나 충만했고 두꺼워진 후반생을 사는 지금 나는 공허한 불만족에 쩔쩔맨다. 지난날의 수첩처럼 새겨듣는 나의 슈베르트여, 영영 불쌍하고 슬프기만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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