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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억 보험’… 블랙박스는 알고 있을까

블랙박스 회수가 늦어지면서 아시아나항공 화물기 추락을 둘러싼 의혹이 커지고 있다. 덩달아 기장이 사고 한 달 전쯤 30억원대의 보험에 가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를 둘러싼 음모론까지 나오고 있다.

 음모론은 ‘기장 A씨가 사고 직전 예닐곱 건의 보험에 새로 가입한 게 미심쩍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아무리 억대 연봉을 받는다지만 매달 200만원 안팎의 보험료를 내는 건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것이다. A씨가 가입한 보험이 상대적으로 보험료가 싸고 사망 시 받는 보험금은 많은 소멸성 실손 상해보험이라는 점도 의구심을 부채질했다. 일부 언론에선 ‘고의 추락’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돈을 노린 일종의 보험 사기가 아니냐는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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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공업계에선 실제로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1994년 4월 7일 국제항공운송회사인 페덱스(Fedex)의 DC-10 기종 화물기가 승무원 중 한 명이었던 어번 캘러웨이에 의해 공중납치 됐다. 자신의 과거 비행경력을 속여 해고 위기에 놓인 어번은 망치와 작살총을 숨겨 편승승무원(Deadhead Crew)으로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륙한 뒤 조종사들을 흉기로 살해하고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에 있는 페덱스 본사에 기체를 충돌시켜 자살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는 사고로 사망할 경우 약 250만 달러(약 26억원)의 보험금이 가족들 앞으로 지급된다는 점을 노렸다. 하지만 조종사 3명의 강력한 저항으로 그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어번은 살인 미수와 비행기 납치, 업무 방해 등의 혐의로 두 번의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화물기와 보험’이 이번 화물기 추락과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비약이 너무 심하다”는 게 항공업계와 국토해양부, 보험업계의 공통적인 반응이다. 한두 가지 팩트(사실)를 근거로 가정을 거듭해 원하는 결론을 끌어내는 전형적인 음모론적 시각이라는 것이다. 김수곤 국토부 항공안전정책관은 “세계가 보고 있는데 국익을 위해서라도 사고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 섣부른 추측은 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항공업계는 보험 가입을 빼고 나면 나머지 사고 정황 어디에도 고의성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1일 “핵심은 보험 가입 여부가 아니라 고의적 사고일 가능성이 있느냐 여부”라며 “사고기 조종사들이 최후까지 안전한 회항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객관적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토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조종사는 레이더에서 사라지기 3분 전인 지난달 28일 오전 4시9분쯤 제주관제소와 마지막으로 교신했다. 오전 3시55분 중국 상하이 공항 관제소에 ‘화물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알린 뒤의 항적도 제주공항을 향해 있었다. 일부러 추락사고를 일으켰다고 볼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일부에서 제기되는 블랙박스에 대한 의문도 근거가 전무하다는 게 항공당국의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화물기가 사라진 지점을 기준으로 가로·세로 각각 34㎞와 28㎞인 방대한 해역을 수색 중이다 보니 아직 찾지 못하는 것일 뿐”이라며 “블랙박스는 누군가 건드리면 바로 항공사에 알리는 경보시스템이 작동 돼 조작 가능성도 없다”고 말했다.

 보험금에 대한 논란은 항공사들과 조종사들을 격앙시키고 있다. 사고기 기장의 후배 조종사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인터넷에 올린 글에서 “가입금액이 일반인에 비해서는 많지만 조종사들 사이에선 이상하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일반인보다 사망위험에 더 민감하고 연봉도 많은 조종사들이 10억~20억원의 보험을 들어놓는 건 흔한 일이라는 것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일반인도 건강에 자신이 있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을 땐 보험에 잘 들지 않는다”며 “사고기 기장이 최근 신체적·심리적으로 경험한 일이 계기가 돼 많은 보험에 가입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회사가 (가입 사실을) 알 수도 없고 법에 의해 공개가 금지된 보험 가입 여부에 대해 추측성 보도가 나오고 있는 것은 잘못”이라며 “지금은 실종자 수색에 전력 투구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 블랙박스를 수거한 뒤 사고 원인을 따지는 게 순서”라고 주장했다. 이 회사 조종사 노조도 이날 성명에서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공식적인 사고 원인을 찾아낼 때까지 추정을 삼가는 게 좋다”며 “비공식적인 의견엔 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국내 조종사 1000명이 가입한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는 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 단체는 “일부 언론이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한 보도로 민간항공 조종사를 폄훼하고 있다며 법적 소송을 포함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고 주장했다. 금융감독원은 이날 보험사들에 공문을 보내 ‘개인정보인 보험 가입정보를 유출하지 말라”며 “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태진·장정훈·강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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