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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60년 된 이발소 추억




신승철
큰사랑노인병원장


어릴 적 추억을 더듬다 보면, 옛 시골 이발소의 풍경이 삼삼하게 떠오를 때가 있다. 1960년대 초 무렵 우리의 시골은 거의가 초가집 일색. 우리 동네 이발소 역시 초가집에 허름하게 유리창이 끼워진, 드르륵 소리 나는 미닫이 문짝의 집이었던 기억이다. 이발소 안살림이야 지금 눈으로 보자면, 보잘것없고 초라해 보일 뿐이다. 하나 당시 다른 초가의 어두컴컴하고 남루했던 살림에 비하자면, 그곳은 맑게 닦인 유리창을 통해 안까지 햇빛이 환하게 들어와 정겹고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 안에 들어서면 향긋한 비누냄새에 따듯한 사람의 체온 같은 것도 느껴졌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왔던가. 어른용 나무의자라, 그 팔걸이에 빨래판 같은 반질반질한 송판을 올려놓은 뒤, 거기 앉혀졌다. 과묵한 인상의 이발소 아저씨가 흰 광목천으로 몸을 푹신 덮으면서부터, 이제 모든 절차에는 순종을 해야 한다는 함의가 흠씬 전해진다. 난로 위 주전자 물이 끓는다. 내뿜는 뿌연 수증기로 유리창엔 김이 서린다. 유리에 맺혔던 식은 땀방울 같은 물방울들은 무거워지면, 주르륵 흘러내리다 삭아, 힘없는 나무 창틀을 맥없이 계속 적시며 흘러 넘치는 것이었다. 그때의 삶, 모두 그처럼 순박한 무명(無明)의 삶이었다. 낯선 손님들은 시무룩하게 무얼 기다리는 모습. 아이들은 신성한 의례의 공간에 온 듯, 신중하면서도 서먹해하는 표정이었다. 아이들의 머리는 예외 없이 빡빡머리. 관리의 편안함, 오래 있다 다시 깎을 수 있다는 내구성도 있어서였다. 정말이지 그 시절 문명의 이기로 보였던, 그 바리캉으로 머리통을 이리저리 굴리며 문질러 댈 때, 간혹 졸면서도 나는 정화의 빛나는 의식에 참여했던 것이고. 성숙한, 자존감도 성취했던 기분이었다.

 이발소 안 ‘성화’도 잊히지 않는다. 앞 거울 위에 나란히 걸려 있는 그림들. 하나는 낡은 난간 위에 하얀 레이스 차림의 날개 접은 천사가 사랑인가, 구원인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아름다운 금발의 머리 위엔 도넛 모양의 흰 빛 둥근 테가 떠 있어 영락없이 하느님의 심부름꾼임을 알아챌 수 있다. 그 옆. 구름 틈새로 하얀 빛이 곧장 땅으로 내리 비치고, 그 빛 향해 무릎 꿇고 기도하는 어린 소녀를 그린 그림이다. 하느님 마음을 엿보게 하는 이 경건한 그림들 앞에, 아이라면 누구든 숙연해져야 했다. 엄마에게 징징댔던 일, 괜스레 아지랑이처럼 떠오르는 죄책감들. 주눅 든 채 속으로 고백도 했으리라.

 이 원초적 기억들은 나이 들어서도 내 의식에 생생히 살아있는 것이다. 그 영향 탓인가. 중학 시절 다빈치의 명작, 모나리자를 문득 보았을 때, 그 어둑한 분위기에 치렁치렁 긴 머리칼 내린 채 눈썹도 없는 문둥이 같은 여인이 야릇한 미소 짓는 걸 보고 모두 감탄했다는 소리였다. 비록 미술에 아득했던 나였지만, 그때 참 희한한 소리로 들렸던 기억이다. 미소라 하면 옛 이발소 그림 속 천사의 미소 말고는, 우리 반가사유상의 미소야말로 제일로 그윽한 미소 아니던가. (으음 그런데, 수월관음도의 그 무량한 미소는 또 어찌할꼬!) 지금도 그 자리의 교동 이발소. 그 성상이 무려 60년!

신승철 큰사랑노인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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