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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호의 시시각각] 정치인은 버스에서 내려라




남윤호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경제선임기자


정의로운 비판정당, 유일한 야당. 1980년 11월 27일 민주한국당이 창당 발기 취지문에 쓴 표현이다. 다음 날 발기인 대회를 한 민주정의당은 ‘새로운 정치 주도세력’을 자임했다. 각자 여야의 선을 명확히 그은 것이다. 그런데 실제 여야를 가르는 11대 총선은 81년 3월 치러졌다. 선거 전부터 ‘나는 여당, 너는 야당’으로 나누고 시작한 것이다. 우리 정당의 자생력이 어느 수준이었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이다.

 이처럼 우리의 정당은 권력의 손으로 교통정리를 거쳐 위로부터 만들어졌다. 서구와는 달리 사회세력을 바탕으로 자연발생적으로 조직된 게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정당은 사회 각 부문을 충실히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 정당이 대표하는 이익과 사회 집단의 실제 이익 사이엔 낙차가 크다. 정치인들은 표에 따라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거나, 권력정치 속에서 자기들끼리 치고받느라 바쁘다. 이 때문에 사회 명망가가 정치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똑같이 너저분한 정치인이 되고 만다.

 또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못한 집단이나 이해관계자들은 비제도권으로 뛰어다닌다. 제도권 정치의 기능부전 탓에 억눌린 정치 에너지는 비제도권을 향하는 법이다. 이 에너지가 땅속에서 부글부글 끓다가 약해진 지반을 뚫고 분출되는 게 운동의 정치요, 거리의 정치다.

 가장 최근의 사례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를 둘러싼 원정시위다. 3차에 걸친 원정시위는 이제 정치운동의 성격을 보이고 있다. 시위 참가자들은 자신의 주장을 절대적 공익, 절대선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 듯하다. 이에 반대하면 관제(官製)다, 꼴통이다 하며 욕한다. 그러나 반대운동에 나선 지역주민과 상인들 역시 대표돼야 할 이익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건 공익과 사익의 충돌이 아니다. 똑같은 사익과 사익의 충돌이다. 어느 한쪽이 도덕적 우위에 있는 것도 아니다. 둘 다 정치의 장에서 정당하게 대표되고 절충돼야 할 이익이다.

 문제는 일부 야당 정치인들이 원정시위에 편승했다는 점이다. 이는 제도권 정치인으로서의 기능을 스스로 부정한 꼴이다. 정당이 하는 일이 뭔가. 사회 갈등이 일어나면 정치의 장에서 조정하고 절충해야 한다.

 그런데 시위 정치인들은 그동안 문제 해결을 위해 장내에서 얼마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노력을 했나.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자, 정리해고 철회하라는 구호는 정치인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외칠 수 있다. 자신이 서 있는 정당정치의 틀 속에서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고 실행하는 게 책임 있는 정치인이다. 정치인이 거리로 자꾸 나서면 제도권 정치는 무력해질 뿐이다.

 흔히 운동은 열기를 높이기 위해 감성과 도덕심에 호소하곤 한다. 참가자들은 스스로 진보적, 양심적, 지성적, 도덕적이라는 의식을 갖기도 한다. 주관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이게 지나치면 실용적 타협과 절충이 어려워진다. 그 대신 반대나 항의하는 데 전문적인 기술자들이 전면에 나선다. 핏대 올리고, 뭔가 때려부수는 데는 효과적이다.

 그러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민감한 사회경제적 갈등을 운동이나 거리의 정치로 풀 수는 없다. 그런 건 독재권력 타도할 때 쓰는 거다. 균형 잡힌 이해 절충, 그에 따른 정교한 제도 변경은 제도권 정치로 풀어야 한다. 특히 원정시위 형식의 운동은 대의민주주의의 틀을 벗어난 직접민주주의의 특성을 지닌다. 현대사회에서 이런 방법으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면 과대망상 아니면 물정 모르는 낭만주의다.

 물론 원정시위는 ‘문제가 여기 있으니 빨리 해결하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주는 효과가 있다. 이는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이해 갈등은 기본적으로 민주적 정당정치의 틀 속에서 풀어야 한다. 이를 무시하고 운동에 편승하는 정치인은 80년대 정치의 살아 있는 화석이다. 스스로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남윤호 중앙SUNDAY 사회에디터·경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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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