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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판도라 상자 열어버린 미국 정쟁




정경민
뉴욕 특파원


제2차 세계대전 종전 1년 전인 1944년 44개 연합국 대표는 미국 뉴햄프셔주 휴양도시 브레튼우즈에 모였다. 이곳에서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는 오늘날 국제금융질서의 틀이 잡혔다. 전후 ‘수퍼파워’가 된 미국의 지위를 공식 추인해준 것이다. 비록 71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달러와 금을 무제한 바꿔주는 ‘금태환’을 포기했어도 달러의 지위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 덕에 미국은 세계 어느 나라도 넘보지 못한 특혜를 누려 왔다. 세계의 통화인 달러를 찍어낼 수 있는 권리를 독점한 것이다. 미국은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정부 씀씀이가 밑 빠진 독이 돼도 달러만 찍어 내면 그만이었다. 미국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가 ‘부도 확률 제로’인 안전자산이 된 건 물론이다.

 한데 미국 의회가 스스로 ‘부채 한도’라는 굴레를 정부에 씌웠다. 미 의회가 정부의 빚 한도를 법으로 정하기 시작한 건 1917년이다. 그 전엔 정부가 국채를 발행할 때마다 건건이 의회 승인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그해 4월 6일 미국이 독일에 선전포고하고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번거로워졌다. 고심 끝에 의회는 한도만 정해 주고 정부가 필요할 때마다 국채를 발행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41년부턴 국채뿐 아니라 모든 연방정부 빚에 의회가 정한 한도가 적용됐다. 그 후로 미 의회는 78차례 한도를 올렸다. 그럼에도 단 한번도 토를 단 적이 없었다. 여야 정쟁(政爭)이야 과거에도 있었다. 그렇지만 부채 한도를 놓고 다퉈봐야 국익에 도움 될 게 없다는 공감대가 깔려 있었다. 미국도 부도를 낼 수 있다는 의심이 ‘판도라의 상자’에서 튀어나오는 순간 전후 미국이 누려온 특혜도 물거품이 될 수 있어서였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과 여야는 94년 동안 지켜온 이 무언(無言)의 합의를 깼다. 공화당 강경파 티파티(Tea Party)가 정부 빚 책임을 오바마에게 덮어씌우는 건 가소롭기까지 하다. 한도까지 찬 14조3000억 달러의 미국 정부 빚 가운데 43%인 6조1000억 달러는 공화당 조지 W 부시 집권 8년 동안 불어난 것이다.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유분수다.

 미국 집안싸움이야 우리가 상관할 바 아니다. 그렇지만 그 내홍(內訌)이 달러와 미 국채에 대한 믿음을 흔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후 ‘브레튼우즈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월가는 “그래 봐야 달러와 미 국채를 대체할 대안이 없다”고 큰소리친다. 당장은 그럴지 모른다. 그러나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는 이미 방향을 튼 게 아닐까.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평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시대가 열린 것도 불과 반세기 전일 뿐이다.

 이번 디폴트 위기는 모면할 공산이 커졌다. 미 정치권은 ‘반전(反轉) 드라마’를 즐길 수도 있다. 그러나 판도라의 상자는 이미 열렸다. 달러의 시대에 종언(終焉)을 고하는 ‘막장 드라마’는 이제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경민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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