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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희망버스 탄 예술







신준봉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




이른바 사회 변혁의 열망으로 뜨거웠던 1980년대 중후반에 대학을 다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최루탄 냄새를 맡아야 했던 시절이다. 당시 대학가의 학생회관 같은 건물에는 대형 걸개그림이 걸리곤 했다. 걸개그림을 보면서 어쩐지 마음이 불편했었다. 규모도 규모지만(엄청 컸다!), 강렬한 색감과 선명한 메시지는 감동을 넘어 위압적이었다. 가슴은 두방망이질치며 반응했지만 머리는 따라가지 않았다. 강력했지만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았다. 예술 본연의 모습이라는 게 있다면 걸개그림은 어딘가 그로부터 거리가 있어 보였다. 돌이켜 보면 80년대 나의 미의식은 시대적 요청과 예술의 본분, 두 대립하는 항목들 사이에서 분열됐었나 보다.



 걸개그림을 다시 떠올린 건 최근의 희망버스 사태를 보면서다. 알려진 대로 희망버스를 기획한 이는 시인 송경동씨다. 67년 전남 벌교에서 태어난 그는 2001년 진보 성향의 문예지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했고 지금까지 두 권의 시집을 냈다. 2009년 창비에서 나온 두 번째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을 보면 그의 이력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그는 고졸 출신이고 소년원을 다녀온 적이 있다. 노동자 출신으로 서울 용산4가, 가리봉동 기륭전자, 평택 대추리 등 우리 사회의 민감한 이슈가 있는 곳을 찾아 다니며 개입했고 현장에서 시를 썼다. 말하자면 그는 80년대 박노해·백무산 등의 뒤를 잇는 노동자 시인 계보의 적자(嫡子)다.



 그의 시가 강렬하지만 아름답지 않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언어감각이 극히 예민한 다른 젊은 시인들보다 덜 세련됐는지는 몰라도 송씨의 말 다루는 솜씨는 충분히 능란해 보인다. 진정성 있는 그의 시는 우직한 느낌을 준다. 이런 그가 감동적인 노동시를 쓰고 남는 시간에 희망버스를 조직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에 속하는 문제다. 그는 얼마든지 그럴 자유가 있다. 희망버스를 타지 않을 자유, 타지 않았다고 해서 탄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지 않을 권리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희망버스에 관여하는 문인들을 보며 예술의 본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런 관성은 어쩌면 성향 탓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문제에 관한 한 인상 깊게 읽은 글이 있다. 문학평론가 김우창씨가 81년에 펴낸 글모음집 『지상의 척도』에 실린 ‘문학의 현실참여’라는 글이다. 김씨는 이 글에서 문인이 직접적인 정치적 행동에 가담해야 하느냐는 문제는 쉽게 답할 성질이 아니라고 전제한다. 개인의 성장환경에 따라 역사의 복합적 전개과정에서 결정되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문학의 언어는 근본적으로 이해와 치유의 언어라고 말한다. 부조리한 사회현실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기보다 그런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심성 계발에 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의 본분과 관련해 나는 김씨의 견해를 참고한다. 희망버스의 현장인 부산으로 몰려가는 여야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신준봉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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