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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우리 안의 ‘브레이빅’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과




지난 5월 노르웨이 한림원이 주최한 국제회의에 연사로 초청받은 적이 있다. 회의에 참석한 각국 학자들은 한목소리로 노르웨이를 열린 민주주의, 경제적 풍요와 평등, 사회적 관용을 동시에 이룬 대표적인 평화애호 선진국으로 칭송했다. 그러나 필자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오슬로대학의 한 정치학과 원로 교수의 전혀 다른 진단이었다. 70세 정년을 한 달 앞두고 있던 그는 “겉으로 드러난 노르웨이의 성취 내면에는 모순과 대립, 갈등이 잠재해 있다”며 “지금은 마치 폭풍 전야의 고요함과 다를 바 없다”고 토로했다.



 예언이 맞아떨어진 것일까. 7월 25일 노르웨이에서 벌어진 한 극우주의자의 테러는 북구의 낙원 노르웨이를 일순에 실낙원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여기서 이번 사건을 우리와 관계 없는 ‘딴 나라’의 일회성 불행으로 지나쳐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주는 함의가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안으로부터의 예기치 않은 테러’에 대한 경고를 들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우려해 온 테러 위협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는 북한으로부터의 테러다. 과거의 사례도 그러하거니와, 북한의 테러 전력(戰力)이 16만5000명에 이른다는 최근 보도로 봐서도 그 개연성을 부인하기 어렵다. 다음으로 정부는 친북 혹은 체제 전복세력의 국내 테러 가능성도 높게 보고 있는 듯하다. 끝으로 13만 명에 이르는 무슬림 이주 노동자들이 또 다른 국내 테러의 진원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도 있다. 그러나 이번 노르웨이 참극은 지금까지 ‘애국’과 ‘충정’이라는 미명 아래 방치·조장돼 온 한국의 극우 과격세력도 어느 순간 테러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해 준다. 유념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또 다른 교훈은 총포류나 화약을 강력히 감시하고 규제해야 할 필요성이다. 대부분의 우파 테러리스트가 그러하듯 테러범 브레이빅 역시 총기 수집광이었다. 다량의 비료를 확보해 사제 폭발물을 제조했고, 우퇴야 섬에서는 반자동 피스톨과 산탄총으로 청년들을 사냥하듯 잔인하게 사살했다. 지금도 한국은 총포류와 화약에 대해 단속이 철저하기로 손꼽히고 있지만, 이를 더욱 보완, 강화해 나가야만 대형 참사를 미연에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구조적으로 보면 이번 사건은 제도권 정치의 실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유럽의 다른 보수정당들처럼 브레이빅이 속했던 진보당도 이민정책과 유럽통합, 세계화와 외국자본 유입에 대한 격렬한 반감을 선동적으로 표방해 왔다. 반면에 그가 표적으로 삼은 노동당은 노르웨이의 보편적 가치를 ‘사회민주주의’로 간주하며 이에 동조하지 않은 세력을 은근히 배척해 왔다. 브레이빅의 비극은 이처럼 양극화된 정치구도의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이념적 편 가르기와 선동, 상호부정과 혐오, 협의와 합의체제의 부재는 한국이 더 심하지 않을까. 극단주의는 바로 이러한 정치토양에서 자라난다.



 가장 근본적으로 이번 사건은 ‘신념의 허구성’에 대한 사회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브레이빅은 스스로를 “유럽 기독교의 가치를 구원하기 위해 죽을 운명을 간직한 전사”로 규정했다. 유럽 중심주의, 노르웨이 민족주의, 백인 우월주의로 무장한 그의 ‘기독교 지하드’는 이슬람 원리주의와 무슬림 이주민은 물론, 문화적 다원주의의 이름으로 이들을 옹호한 동료 노르웨이인들까지 주적으로 삼았다.



 자신의 ‘선언문’에서 브레이빅은 “10만 명의 이익보다 한 사람의 신념이 더 강하다”는 존 스튜어트 밀의 경구를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신념은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배타적 정체성의 도구이자 인륜을 버린 증오의 광기였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광기가 바이러스처럼 미국과 유럽 전역에 퍼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이 바이러스가 우리 주변에도 스며들고 있지는 않은지 냉정히 돌아보고, 이들에게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지혜와 관용, 중용의 덕을 전파할 수 있는 사회적 담론구조를 정착시켜야 할 것이다.



 이 비극의 와중에서도 노르웨이가 돋보이는 이유는 노르웨이 국민과 정부의 대응자세 때문이다. 사건 직후 오슬로 시청 광장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옌스 스톨텐베르그 총리는 “테러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더 많은 민주주의와 개방성, 인간애”라고 강조했고, 노르웨이 국민들은 이에 전적으로 동조했다. 우리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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