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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호의 시장 헤집기] 캔디 통화

거슬러줄 잔돈 없으니 사탕이나 집어가쇼. 가게에서 물건 값 치르다 이런 말을 들으면 어찌할까. 한두 번이면 애교로 넘길지 모른다. 하지만 대개는 다른 가게로 가거나, 아니면 말싸움을 할 거다. 100원짜리 사탕이 100원짜리 동전을 대신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데 훌륭한 예외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이탈리아에서였다. 패전으로 물자가 귀해지자 살인적인 인플레가 일어났다. 신문 한 부, 담배 한 갑, 휴지 한 통 값이 몇 천 리라나 됐다고 한다. 당시 금액이 가장 적은 지폐는 500리라였다. 동전은 5리라, 10리라짜리가 있었다. 문제는 물건 값의 끝자리가 500리라 단위로 딱 떨어지는 법이 없다는 점이었다. 거스름용 동전이 대량으로 필요했지만 경제 형편상 만들지 못했다.

곤란해진 상인들은 소소한 물건을 거스름돈 대신 내주기 시작했다. 처음엔 일회용 반창고나 연필이 사용됐다. 그러다 사탕·초콜릿 같은 캔디류가 주종을 이루게 됐다. 이탈리아인들의 취향이 반영돼 상거래의 불문율을 만든 거다.

그럼 이걸로 문제가 말끔히 해결됐을까? 아니다. 캔디의 달콤함도 한두 번이다. 캔디가 집에 자꾸 쌓이면 처치 곤란하다. 오래되면 먹을 수도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상인들이 만들어 낸 게 캔디 교환권이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양 만큼 캔디를 교환할 수 있는 권리증이다. ‘캔디 상품권’ 또는 ‘캔디 어음’이었던 셈이다. 현물 캔디보다 확실히 편리했다.

이게 시중에 대량으로 돌아다니자 예상치 않은 현상이 일어났다. 교환권이 새로운 결제수단으로 사용된 것이다. 예컨대 100리라어치 교환권 100장을 모아 1만 리라짜리 물건값으로 지불할 수 있었다. 주는 쪽, 받는 쪽 모두 교환권의 가치를 신용했기에 가능했다. 이를 ‘캔디 통화(candy currency)’라 한다. 이 관습은 1970년대 초까지 이어졌다. 71년 미국의 라이프 매거진은 이를 이탈리아 풍물기로 다루기도 했다.

배경은 다르지만 인도네시아에서도 캔디가 거스름돈으로 사용된다. 은행들이 잔돈을 바꿔주는 데 1~1.5%의 수수료를 떼자 상인들이 캔디를 대용품으로 삼은 것이다. 인도네시아 소비자보호재단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전체 소매업체의 10%가 캔디를 잔돈으로 쓴다고 한다.

캔디가 돈 역할을 하는 데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대용품으로서의 편리성, 다른 하나는 캔디의 가치에 대한 신뢰다. 실제 어떤 돈이든 유통의 편리성과 가치의 신뢰성을 갖춰야 통화로서 구실을 하는 법이다. 기축통화도 다를 바 없다. 쉽게 말해 모든 나라가 편리하게 결제·지불 수단으로 쓰는, 믿을 수 있는 돈이 바로 기축통화다.

그러나 지금의 기축통화, 미국 달러는 어떤가. 미국의 재정난으로 신뢰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치킨게임을 벌이는 민주·공화 양당은 달러의 신뢰를 쌓는 일엔 관심이 없어 보인다. 미국 정치인들, 이탈리아산 캔디라도 빨면서 기축통화의 가치와 신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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