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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폭우









고려 말 학자 이색(李穡)은 ‘폭우행(暴雨行)’이란 시에서 “머리 돌리니 천지는 외로운 성 같은데/백만 강군이 갑자기 기습했구나(回頭天地如孤城/百萬雄兵忽來襲)”라고 노래했다. 폭우를 고립된 성을 기습하는 백만 강군에 비유한 발상이 기발하다. 성호 이익(李瀷)은 ‘사나운 바람(獰風)’이란 글에서 ‘바다 가운데 있는 신룡(神龍)들이 싸우다 공중으로 날아갈 때 괴이한 바람(怪風)과 폭우가 생긴다’고 보았다. 느닷없이 발생하는 바람과 폭우를 신룡들의 싸움 결과로 보았던 것이다.



 원(元)나라 말기에서 명(明)나라 초기 학자인 루원례(婁元禮)는 『전가오행(田家五行)』에서 각종 일기예보 방법을 적어 놓았다. 조선 후기 학자 이규경(李圭景)은 ‘전가오행(田家五行)에 관한 변증설’에서 ‘일본의 양안상순(良顔尙順)이 지은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에도 같은 내용이 있다면서 『전가오행』을 보고 지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양안상순은 일본 에도(江戶) 시대 오사카의 의사였던 데라시마 료안(寺島良安)을 뜻한다.



 이규경은 『전가오행』 등을 참고해 “작은 산에서 갑자기 구름이 일면 큰 비가 오래 내리고, 산중턱에서 한 달 동안 계속해 물이 솟아오르면 산사태가 난다…초여름에 물밑에 이끼가 생기는 것은 폭우가 있을 징조”라는 등의 기상예보 방법을 명기해 놓았다. 『삼국사기』 신라 흘해왕 41년(350)조에는 “3월에 황새가 월성(月城) 모퉁이에 둥지를 지었다. 4월에 큰 비가 열흘 동안 내렸다”고 적고 있다. 이 비로 관청과 민가가 떠내려가고 산이 열세 곳이나 무너졌는데, 안정복은 『동사강목(東史綱目)』에 이 기사를 실으면서 “황새가 둥지를 틀자 사람들이 ‘장차 물난리가 있을 징조’라고 말했는데, 과연 그렇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황새가 둥지를 트는 것도 물난리의 조짐이었다.



 옛 사람들은 재해를 정치 잘못에 대한 하늘의 경고로 보았다. 그래서 『서경(書經)』 ‘홍범(洪範)’에 “임금에게 덕이 있으면 때맞춰 비가 오고…임금에게 덕이 없으면 홍수가 난다(肅時雨若…狂恒雨若)”고 말했다. 폭우가 쏟아지면서 수재가 발생하자 놀란 주(周) 성왕(成王)이 쫓아냈던 주공(周公)을 다시 맞아들였다는 이야기도 그래서 나온다. 자연 앞에 옛 사람들은 겸허했다는 뜻이다. 금번의 폭우 피해에 대해 인재(人災)라는 말이 또 나온다.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여기는 대신 자연을 정복 대상으로 보는 한 인재는 그치지 않으리라.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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