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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현의 시시각각] 도로명 주소, 시행하는 게 옳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지방 소도시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대학으로 진학하니 한동안 눈이 핑핑 돌 지경이었다. 서울이란 도시가 얼마나 넓고 복잡한지, ‘시골 쥐 서울 쥐’ 우화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좀 지내 보니 서울 사람도 별것 없었다. 그들도 자기가 살거나 자주 다니는 동네 지리에만 밝을 뿐이었다. 그즈음 한 서울 사람이 “서울의 지명을 사람 몸에 비유하면 이렇다”며 들려준 우스갯소리가 기억난다. “머리는 용두동, 귀는 우이동, 이마는 마장동, 눈은 안암동, 코는 쌍문동, 입은 구로동, 어깨는 견지동, 등은 방배동, 히프는 궁동, 남자는 말죽거리, 여자는 보문동….”



 오늘 전국적으로 고시돼 법정주소로 확정되는 ‘도로명 주소’를 두고 뒤늦게 논란이 일고 있다. “수많은 지명 속에 깃들어 있는 역사·문화적 배경이 무시된다” “스마트폰과 내비게이션이 대중화돼 길 찾기가 일도 아닌 시대에 굳이 주소를 바꿀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이 많고, 기독교·불교계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새 주소에 거부감을 보이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도로명 주소 시스템은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으므로 보완 작업을 거쳐 반드시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다.



 현행 지번(地番) 주소는 ‘면(面)’ 위주다. 1910년 우리나라를 강점한 일제가 국토를 체계적으로 말아먹기 위해 토지조사사업을 시작하면서 도입된 체계로, 일정한 면적의 땅에 번호를 붙여 관리한다. 사람·건물이 늘어나면 면을 다시 쪼개 새 지번을 붙인다. 당연히 일관성을 갖추기 힘들다. 그래서 서울 반포동 100번지 옆에 600번지가 있고, 봉천1동~봉천 13동 배치도 가지런하지 못했다. 반면에 도로명 주소는 도로 폭에 따라 길을 구분하고 길 주변 건물에 20m 간격으로 번호를 부여한다. 한마디로 말해 ‘면’에서 ‘선(線)’으로, 나아가 ‘선’에서 ‘점(點)’으로 바뀌는 것이다. 면이 선, 그리고 점으로까지 변환된다는 것은 디지털 시대에는 거의 결정적인 장점이다. 내비게이션이 있는데 굳이 새 주소를 만들 필요가 있느냐고? 시판 중인 내비게이션들은 현재의 지번 주소 덕을 본 게 없다. 발품 팔아 일일이 도로·건물을 찾아다니며 입력해 만들었다. 논리적인 도로명 주소 체계라면 내비게이션 제작도 훨씬 쉬워진다. 데이터베이스 용량 부담이 획기적으로 주는 것은 비단 내비게이션 업계뿐이 아닐 것이다.



 새 주소가 시행된다고 현재의 동(洞) 명칭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전국의 주민센터는 그대로 유지된다. 역사·문화적 사연이 깃든 지명·명승지는 새 주소에 반영하거나 ‘관심지역(point of interest)’으로 정해 따로 관리하면 된다. 기존 땅의 지번도 유지된다. 토지대장이나 토지·임야 등기부등본 같은 서류가 그대로 남는다. 새 주소로 인해 기존의 모든 게 무너지고 훼손되는 양 떠드는 것은 아무래도 과장이다. 종교계의 반발? 나는 다종교 사회인 우리나라에서 ‘봉원사 2길’이라는 주소에 ‘OO교회’가 있는 게 왜 이상한지 오히려 되묻고 싶다. 그 역(逆)도 마찬가지다. 새 주소에는 ‘전등사길’ ‘에덴농원길’ ‘원곡성당길’ ‘교촌향교길’ 등 종교가 연상되는 명칭이 많다. 종교라서가 아니라 지역 특성·역사성·주민 의견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도로명 주소를 쓰지 않는 나라는 우리와 일본 정도라고 한다. 100년 만의 개혁이니 한동안 낯설고 불편하겠지만 그래도 보완해가며 시행하는 게 옳다. “기본 주소체계를 우리끼리 그냥 계속 쓸 수도 있겠지만”이라고 서울대 유근배(지리학과) 교수는 말을 꺼냈다. 그는 “그러나 교역으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주소체계는 더 이상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고 했다. “선진국 공통의 주소체계, 공통의 물류체계를 우리나라도 갖출 때가 됐다. 그래야 미래가 밝다”는 것이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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