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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왜 더러운 것을 만지느냐”







박경철
시골의사




건강한 상식을 가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하철에서의 ‘막말남’ ‘○○녀’에 분노할 줄 안다. 내 문제는 아니지만 문자 그대로 공분(公憤)하는 것이다. 하지만 홍익대 청소근로자가 오랫동안 근무하던 직장을 허망하게 잃게 되었을 때, 그들의 절규와 비탄은 모두의 관심사가 아니다. 심지어 해당 대학의 학생들마저 태연하게 제 갈 길을 가고, 일부 학생의 경우 농성하는 근로자에게 수업권을 내세우기도 한다. 하나는 공분(公憤), 다른 하나는 공감(共感)의 문제다. 따라서 둘은 서로 다른 사안이지만, ‘공(公)’의 관점에서는 같은 사안이다. 다만 전자의 경우는 철저하게 개인화된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노와 사’ ‘좌와 우’라는 프레임이 있는 사회화 차이만 존재한다.



 어쨌건 공공의식(public mind)의 관점에서 보면 둘의 맥락은 같다. 지금 우리는 개인화된 시대를 살면서 공적인 무관심과 방관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모두가 개인화되면 ‘사회’는 더 이상 존립할 수 없다.



 돌아보면 우리 시대에는 집안의 화장실 청소는 대개 아들의 몫이었다. 엄마가 하루 종일 가족을 건사하는 동안,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일했다. 그 때문에 자녀도 가족을 위해 최소한 화장실 청소라도 해야 한다는 가족 공동체의 공공의식을 그렇게 키워왔던 것이다. 학교교육도 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양동이를 들고 학교 화장실을 청소했고, 고사리손으로 유리창에 매달려 유리를 닦았으며, 양초 조각을 들고 교실 마룻바닥을 윤이 나도록 걸레질을 했던 이유는, 함께 쓰는 공간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에 기초한 것이었다. 나아가 일주일에 한 번씩 빗자루를 들고 공터에 나가 청소를 하고, 고수부지를 다니며 잡초를 뽑던 경험들도 바로 사회 공동체 교육의 중요한 요소였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엄마가 아이와 함께 걷다가 아이가 거리에 떨어진 휴지를 주우면, 왜 더러운 것을 만지느냐고 타박한다. 이것은 ‘더러운 것을 만지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것’을 아이의 의식에 스며들게 하는 무서운 함의가 있다.



 성채처럼 솟아오른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엄마가 준비한 승용차로 등교를 하고, 비슷한 부류의 아이들과 수업을 듣고, 같은 환경의 아이들과 과외를 한 다음 다시 엄마의 승용차를 타고 지하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로 집에 오르는 아이는, 자기가 지나온 도로가 어떻게 깨끗이 유지되었는지, 이 건물을 짓기 위해 어떤 사람이 땀을 흘렸는지, 자기와 여건이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 알게 될 경험도 기회도 없다. 온전히 자기가 경험한 것만이 자신의 세계인 것이다. 이런 아이들이 성장해서 스펙을 쌓고,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사업가·정치인·전문직·언론인이 되어, 소위 기득권을 가지게 되면 그들이 행사할 권력은 그들만의 나라를 위해서 행사될 것이다. 상상만 해도 두려운 모습이다.



 기성세대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공공과 연대의식을 나누었던 지금의 기성세대들은 아직도 지하철에서 노인을 위해 자리를 양보하고, 이웃의 아픔에 같이 눈물 흘릴 줄 안다. 하지만 기성세대 중에서도 일부의 성공담은 대중의 그것과 다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기성세대 중의 일부가 공동체를 외면하고 편법과 불법, 불공정을 통해 달려온 것이 마치 불가피한 것인 양 당당하게 행세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른의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 그리고 아이들이 보고 배울 그들의 뒷모습은 불을 보듯 훤하다. 이 나라의 어떤 권력자도 청문회에서 그들의 ‘공공의식’이 남대문 시장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상인의 그것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평범하지만 공동체 의식을 간직하고 살아온 대중과 그것을 외면하고 달려온 성공한 리더들의 모습은 아슬아슬한 불일치를 이룬다.



 이 불균형이 개인화된 학교교육과 맞물려 다음 세대로 전해진다면, 우리들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교육은, 또 모든 리더십의 자격은 ‘공공의식’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권력은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공을 위해 행사되어야 하고, 교육은 특정 계층의 자녀가 아닌 전 국민의 아이들을 위해 고른 기회를 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가 나이 들어 ‘막말남’과 ‘○○녀’로부터 같은 봉변을 당하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다.



박경철 시골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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