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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70) 신영균의 두 얼굴





입당 도장 찍으라기에 “화장실 좀 … ” 줄행랑



1970년 신성일과 자리를 함께한 선배 영화배우 신영균(왼쪽). 일찌감치 정치에 뜻을 둔 그는 15대·16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의원 배지를 달았다. [중앙포토]





인생은 제각각이다. 나와 비슷한 길을 걸었으면서도 전혀 다르게 산 사람이 선배 영화배우 신영균(83)이다. 신영균은 같은 시대에 활동하면서도 나와 함께 찍은 작품은 별로 없다. 나처럼 그도 주인공만 맡았기 때문이다.



 60년대 중·후반은 내가 한창 돈을 벌던 시기였다. 영화와 예술계에서 나 다음으로 돈을 많이 벌던 사람이 그였다. 이태원 181번지 시절인 67년 어느날, 아내 엄앵란은 충무로 복덕방으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명보극장 옆 빵집 명보당을 사도록 주선하겠다는 것이다. 명보당은 충무로 태극당 다음으로 장사가 잘 됐다. 200만원이면 1층의 명보당 인수가 가능하고, 300만원이면 3층 건물 전체를 인수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우리는 인수를 포기하고 말았다. 명보당을 임대 운영하던 주인이 이성구 감독의 누나였다. 이 감독은 67년 나와 이어령 소설 원작의 ‘장군의 수염’을 찍었다. 매우 지성적인 분이어서 나는 그를 좋아했다. 그의 누나는 “1년만 더 운영하면 이 가게를 살 수 있으니 인수를 포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엄앵란에게 “우리가 빼앗다시피 할 필요가 뭐 있느냐”고 말했다. 우리가 이 가게를 반드시 인수해야 할만큼 절박한 것도 아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그 가게의 소유권은 신영균에게 넘어갔다.



 신영균이 인수한 명보당은 크리스마스 철에는 케이크를 사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유명 영화배우 신영균의 가게라는 소문이 나면서 장사가 더욱 잘 됐다. 그는 엄청난 돈을 벌었다.



 70년 어느날 신영균이 나와 윤일봉·남궁원을 명보당 3층으로 불렀다. 평소 정치에 뜻을 두고 있던 그는 공화당의 손짓에 응했다. 명보당의 재력을 바탕으로 공화당 영등포 을구 지구당 위원장 직을 맡았다. 나는 같은 시기, 공화당 조직부장에게 소공동 조선호텔 맞은편에 자리한 공화당 중앙당사로 붙들려 갔다. 그 자리에서 입당 도장을 찍으라길래 화장실에 간다 둘러대고 도망쳤다.



 이것이 딜레마였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게 됐는데, 신영균의 상대는 민주당 김수한 의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돈만 들어가지 이길 가능성이 별로 없었다. 몇 백 만원이 그냥 깨진 모양이었다. 그는 내가 공화당 실력자들과 두루 친하다는 사실을 알고 부탁했다.



 “성일아, 네가 길전식 사무총장에게 신영균이 지구당 위원장 자리 사임한다고 말해줘라.”



 길 사무총장은 공화당 내의 막강한 실력자였다. 중도하차는 정치인으로서 불명예스러운 일이었지만 신영균으로선 도리가 없었다.



 나는 다음날 아침 사직동 부근의 길 사무총장 댁을 찾아갔다. 마침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고 있는 그에게 “총장님, 신영균 형님을 영화배우로 돌려주십시오. 형님이 김수한 의원과의 대결이 힘들어 위원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답니다”고 청했고 어렵게 승락을 받아냈다. 그 다음 수순은 위원장 사퇴를 신문에 내는 것이었다. 그는 광고 문구에 ‘지구당 위원장 신영균, 개인 사정으로 사퇴합니다’라고 썼다. 정치에 미련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나는 당장에 그 직함을 ‘영화배우 신영균’으로 고치라고 했다. 신영균은 결국 15대(96)·16대(2000)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을 했다.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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