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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도전! 창업 스토리 ⑬·끝 신창연 여행박사 사장





가족 같은 회사 만들었더니 … 파산해도 종업원이 살리더라



신창연 여행박사 사장이 최근 입주한 서울 갈월동 사옥에서 여행 사업의 매력을 설명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집보다 재미있는 회사’.



 신창연(48) 여행박사 사장의 경영 화두다. 그의 설명을 들으니 이 회사엔 없는 게 많다. 우선 비정규직이 없다. 200여 임직원 중 비정규직은 한 손에 꼽을 정도다. 시간제 근무를 자청한 사람을 제외하곤 청소부도, 심부름하는 여직원도 정규직이다. 학력이나 나이에 따른 임금 차별도 없다. 이 밖에 정례회의, 다단계 결재, 정년, 외상 거래가 없다. 없는 게 많은 대신 있는 것도 많다. 이색적인 보너스와 복리후생제도다. 독신자 사택을 무료로 제공하고, 임직원이 대학이나 대학원에 입학하면 연간 500만원까지 학비를 지원해 준다. 어학학습·금연·도서 구입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도 운용 중이다.



 신 사장은 태생적으로 격식을 싫어한다. 서울 갈월동 사옥에서 지난 14일 인터뷰할 때도 그는 티셔츠에 면바지 차림이었다. 경북 문경의 빈농에서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그는 일찌감치 다양한 직업세계를 체험했다. 집이 너무 가난해 고등학교 진학을 접은 그는 중학교를 마친 뒤 집에서 대준 고교 입학금을 들고 상경했다. 서울 봉천동 고향친구 집에 기거하며 신문배달·구두닦이·웨이터 같은 험한 일을 했다. 10대 후반 돈을 모아 포장마차를 하던 시절, 그는 군대에 가려고 3년여간 매달린 끝에 검정고시에 합격해 23세에 입대했다. 제대 무렵엔 관광사업의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경원대 관광경영학과에 입학해 여행업과 인연을 맺는다.



 “서른 살에 대학을 졸업한 뒤 한 여행사에 어렵게 입사했습니다. 하지만 양복 입고 고분고분 말 잘 듣는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다 보니 문제사원으로 찍히게 됐어요.”



 그는 2년도 안 돼 새로 생긴 해운 자회사로 발령났다. 부산~후쿠오카 고속선 사업을 하는 회사였다. 새 회사에서 그는 배편을 이용한 여행상품을 기획하고 마케팅·홍보·가이드를 도맡아하면서 여행사의 모든 업무를 꿰뚫게 됐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인터넷 붐에 편승해 2000년 8월 창업 동지 3명과 단돈 250만원으로 여행박사를 설립하며 사업가로 변신했다. 다른 회사의 사무실 한구석을 빌려 중고 컴퓨터와 책상·의자를 들여놓고 인터넷으로 여행상품을 팔았다. 여행박사는 발로 뛰어 개발한 ‘1박3일 올빼미 일본여행’처럼 싸고 획기적인 상품을 잇따라 내놓아 히트를 쳤다.



 승승장구하던 여행박사는 지난해 파산의 아픔을 딛고 다시 태어났다. 상장할 욕심에 2007년 8월 T사의 인수합병(M&A) 제의에 응한 게 화근이었다. M&A로 태어난 에프아이투어는 이듬해 8월 우회상장에 성공했으나 T사 측 경영진의 불법 대출로 8개월 만에 상장 폐지됐고, 급기야 지난해 9월 파산 선고를 받았다. 200여억원의 자산은 모두 채권단에 넘어갔다. 회사가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하자 종업원들이 팔을 걷고 나섰다. 십시일반 돈을 모아 지난해 10월 여행박사를 재출범시킨 것이다. 현재 여행박사의 자본금은 23억5000만원으로 신 사장(22%)과 100여 명의 임직원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글=차진용 jTBC특임위원

사진=김도훈 기자



신창연 사장 약력



1963년 경북 문경 출생



90년 12월 아주관광여행사 입사



91년 2월 경원대 관광경영학과 졸업



92년 한국고속해운(아주관광 계열) 입사



2000년 여행박사 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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