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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변액보험이 새고 있다

보험사들이 5~6년 전 잘못 판매한 변액보험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보험 약관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한 ‘타임머신 투자자’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어서다. 이들 투자자는 약관대출이 전날 기준가로 이뤄지는 점을 이용해 주가 하락에 따른 손실을 보험사에 떠넘기고 이익만 제 몫으로 챙긴다. “이로 인해 보는 손실이 연간 수백억원대에 이르고, 일반 변액보험 가입자들의 간접 피해도 적지 않다”는 게 보험업계의 하소연이다.



전날 주가 반영하는 약관대출 허점 이용 … ‘타임머신 투자자’ 피해 연간 수백억원대











 일본 대지진(3월 11일)과 이후 이어진 원전 사태로 주가가 출렁거렸던 3월 중하순 무렵. ING생명 변액보험의 브릭스 펀드 계정은 전체 자산의 20%인 약 22억원의 돈이 넣어졌다 빠졌다 하는 일이 몇 차례 반복됐다. 총 자산 규모가 20억원이 채 안 되는 차이나 펀드의 경우 전체 자산의 30%가 며칠 사이로 들락날락했다. 이런 일은 4월 말에도 또 한번 벌어졌다. 다른 펀드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런 일들이 왜 벌어졌을까.



 바로 2005∼2007년 사이 판매된 변액보험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한 이른바 ‘무위험 차익거래’(arbitrage)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변액보험은 계약자가 낸 보험료 가운데 일부를 펀드를 통해 주식에 투자한다. 하지만 당시 펀드를 잘 몰랐던 보험사들은 보험료를 담보로 한 약관 대출의 기준 가격을 ‘전날 종가’로 정해뒀다. 다음 날 주식시장이 폐장한 뒤 대출을 받거나 상환해도 당일이 아니라 전일 종가가 기준이 되는 허점이 생긴 것이다. 이를 깨달은 일부 보험 가입자는 약관대출을 받아놓고 다음 날 주가를 본 뒤 약관대출을 상환하거나 대출을 계속 유지하는 ‘타임머신 투자’를 시작했다.



 예를 들어 A씨가 25일 3000만원의 약관대출을 받았다고 치자. 26일 주가가 떨어지고 27일 주가가 상승하면 A씨는 대출금을 즉시 상환한다. 27일 상환된 돈은 주가가 오르기 전인 26일 기준가로 펀드에 투자된다. 기준가가 낮으면 같은 돈으로 배정되는 주식 계좌 수가 많아지면서 이익을 보게 된다. 즉 27일 주가가 오른 사실을 확인한 뒤 전날의 싼 가격으로 주식을 사는 것이다. 미래의 일을 미리 알고 과거로 돌아가 투자하는 셈이다.



 주가가 계속 떨어져도 A씨는 손해 볼 게 없다. 계속 기다렸다가 주가가 크게 반등한 날 대출을 상환하면 그만이다. 대출받을 때 적용받는 기준가(25일 종가)보다 대출을 상환할 때 적용받는 기준가가 낮은 만큼 주식을 싸게 사는 것이다. 거꾸로 대출을 받는 날 곧바로 주가가 올랐다면 곧바로 상환하면 된다. 대출받을 때의 기준가와 대출을 상환할 때의 기준가가 똑같은 25일이다. A씨에겐 이익도 손해도 없다. 결국 A씨는 주가가 오르건 내리건 어떤 경우에도 손해 보지 않게 된다.



 업계는 2007년 이런 문제를 깨닫고 2008년 이후 판매되는 상품들의 약관을 수정했다. 현재는 대부분의 회사가 약관대출을 받을 때의 기준가는 ‘전일 종가’로, 상환 때의 기준가는 통상 ‘대출 상환 뒤 이틀 뒤’를 적용해 이런 투자를 막고 있다.



하지만 당시 가입한 사람들이 이런 투자를 계속하는 건 막을 도리가 없다. 변액보험을 앞장서 팔았던 ING생명의 경우 약 40만 건, 미래에셋생명은 20만 건 정도가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상품이다. 다른 빅3(삼성·교보·대한생명)도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정확한 실태 공개조차 꺼리고 있다. 미래에셋생명의 관계자는 “현재 약 400명 정도가 이런 투자를 전문적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이런 투자 때문에 우리만 연간 수십억원, 업계 전체론 수백억원대의 손실을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한생명 관계자는 “ 장기 상품인 변액보험이라 (이런 문제가) 30년이 될지, 40년이 될지 알 수 없다는 게 답답하다”고 털어놨다. 그렇다고 이런 투자를 아예 막을 방법도 없다. 금융감독원 박상규 수석조사역은 “이미 판매한 상품에 대해 개정된 약관을 소급 적용할 수는 없다”면서 “이런 투자가 보험의 취지와는 맞지 않 지만 그렇다고 당국이 개입할 성질도 아니다”고 말했다.



 보험사들은 이에 따라 대출 액수와 횟수를 제한하는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이도 쉽지 않다. ING생명은 최근 ‘해지환급금의 50% 범위 내에서 월 2회’까지 허용하던 변액보험 약관대출을 다음 달부터 ‘월 1회로 줄이고, 회당 대출 한도도 3000만원’으로 제한키로 했다. 그러자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 30여 명의 민원인이 들이닥쳤다. ING생명의 대출 제한이 ‘재산권 침해’라는 것이다.



 결국 피해를 보는 건 대부분의 변액보험 가입자들이다. 하루에 펀드 투자액의 20~30%가 빠지거나 들어오면 제대로 된 투자가 불가능하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언제든 돈을 내줄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므로 현금을 많이 확보하고 있어야 해 투자 규모가 작아지고 수익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지나친 변동성 때문에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도 불가능해진다. 약관대출에 응하느라 주식을 자주 사고파는 데 따른 수수료도 일반 투자자의 부담이 된다. 2005년 변액보험에 가입했다는 의사 김모(40·여)씨는 “변액보험의 최근 낮은 수익률이 이런 문제 때문인지 의심된다”며 “일반 가입자들의 손해가 있다면 잘못된 상품을 판 보험사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간접적으론 보험 고객 전부가 손해를 본다. 타임머신 투자자가 약관대출로 이익을 보면 보험사의 일반계정에서 그만큼 손실이 난다. 일반계정은 생명보험 등 일반적인 보험 가입자의 돈을 관리하는 곳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일반계정의 수지가 나빠지면 보험사는 보험료 인상 등을 통해 그만큼 손실을 보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보험연구원 안철경 박사는 “이번 사례는 장기 상품인 보험사의 상품 설계가 잘못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보여주고 있다”면서 “보험 취지에 맞게 합리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창희 기자



◆변액보험=보험계약자가 납입한 보험료의 일부를 주식·채권 등에 투자해 계약자에게 성과를 나눠주는 보험 상품. 2002년 처음 도입됐다. 가입자는 2005년부터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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