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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 ‘뭉크의 절규’





76명 한꺼번에 잃은 노르웨이, 말도 웃음도 사라져



24일 오슬로 시내에서 테러로 숨진 희생자들을 추모하던 한 여성이 절규하는 모습. [오슬로(노르웨이) 로이터=뉴시스]











에드바르 뭉크의 대표작 ‘절규’. [오슬로(노르웨이) 로이터=뉴시스]



패닉(공황·恐慌) 상태로 악몽의 주말을 보낸 470만 노르웨이 국민들은 말을 잊었다. 25일 아침 새 주를 맞아 출근하는 수도 오슬로의 시민들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웃음기 잃은 표정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노르웨이의 대표 화가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1863∼1944)의 그림 ‘절규’(1893)의 주인공 같았다. 너무 놀라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오슬로 중심가에서 전차를 기다리고 있던 20대 여성 크리스틴 요한스는 “같은 동네에서 살던 고교생 한 명이 우퇴야 섬에서 숨졌다. 그 아이를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그새 눈 주위가 빨개졌다. 시민들은 한결같이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노벨 평화상을 주는 가장 평화롭고 안전한 나라에 살고 있다는 믿음과 자부가 한순간에 무너진 것에 그들은 어쩔 줄 몰라했다.



 한편 노르웨이 경찰은 지난 22일 폭탄 테러와 총격사건으로 숨진 사람이 93명이 아니라 76명이라고 25일 정정했다. 경찰은 오슬로 정부청사 차량 폭발로 8명, 우퇴야 섬 총격 난사로 68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22일 정부 청사와 집권 노동당 청년 캠프장에 ‘쌍둥이 테러’를 가해 76명의 목숨을 앗아간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32)의 "나는 무죄”라는 주장에 시민들은 또 한번 쇼크를 받았다. 시민들은 “살인 사건도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이 나라에 그런 악마가 존재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50대의 빵집 주인은 치를 떨었다. 세계 2위의 부자 나라, 최고 수준의 복지국가인 ‘지상낙원’에서 이러한 극단적 증오가 자라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들은 현실로 받아들이기 힘겨워했다.



 그런 가운데 일부 시민들은 공포와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한 ‘침묵의 시위’를 시작했다. 브레이빅이 드러낸 이민자를 향한 광신적 적대감과 다른 문화권에 대한 증오심을 상대로 한 조용한 저항이었다. 전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의 ‘아이 러브 오슬로’라는 페이지에서는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라는 것을 보여주자”는 운동이 시작됐다. 이를 통해 25일 저녁 오슬로 중심가로 촛불을 들고 모이는 계획에 하루 새 2만7000명이 동참 의사를 밝혔다.



이 페이지에는 “정치 조직의 단체 참여나 정치적 구호의 등장은 사절한다”는 경고가 포함됐다. 묵묵히 촛불을 들 사람만 오라는 것이었다. 참극 발생 나흘 뒤인 25일까지 이 나라의 정치 집단이나 사회 단체가 테러 사건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데 활용하는 일은 보지 못했다. 극우파 정치 조직도, 이민자 보호 단체도 애도의 성명만 냈다.



 오슬로 중앙에 있는 돔키르케 교회(루터교) 앞 마당에는 큰 ‘꽃밭’이 생겨났다. 시민들이 손에 손에 들고 온 꽃다발이 마당의 절반 이상을 채웠다. 꽃밭 가장자리에는 조용히 타 들어가는 초들이 놓였다. 수만 송이의 꽃과 2000개 이상 촛불의 향은 어우러져 주변으로 날았다. 25일 새벽 1시, 자정을 훌쩍 넘긴 때였지만 교회로 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중년 여성, 말없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20대, 어린아이의 손에 쥐인 초에 불을 붙여주는 아버지, 함께 무릎을 꿇고 초를 내려놓는 젊은 커플들….



 약속이나 한 듯 이들은 숨소리조차 죽였다. 숙연한 분위기는 종교 행사장을 방불케 했다. 뭘 ‘규탄한다’거나 ‘촉구한다’는 외침은 물론 피켓 한 개, 플래카드 한 장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속에는 강렬한 절규가 있었다. 한 중년 여성은 “다시는 악마가 우리를 시험하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빌었다”고 말했다.



◆구조 나선 주민들= 대학살이 벌어진 22일 우퇴야 섬에 가장 먼저 도착해 구조 활동을 시작한 사람은 독일인 마르첼 글레페(32)였다. 그는 인근 캠프장에서 가족들과 휴가를 즐기던 중 총소리를 듣자마자 보트를 몰고 구조에 나섰다고 영국 일간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24일 보도했다. 그는 섬에 도착해 총격을 피해 물에 뛰어든 청소년들을 구조했다. 그는 경찰이 그만하라고 말할 때까지 4~5번을 왕복하며 30명을 구했다. 그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노르웨이인 오토 로에빅도 40~50명의 생존자들을 보트에 태워 구출해 냈다고 로이터통신이 24일 전했다.



오슬로(노르웨이)=이상언 특파원



◆뭉크의 ‘절규’=노르웨이 국민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대표작. 핏빛 하늘을 배경으로 세상사에 괴로워하는 인간을 묘사했다. 작품 배경은 오슬로 피오르(빙하로 만들어진 좁고 깊은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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