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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부실한 미각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한국에는 미식가들이 참 많다. 서넛 모여 앉으면 어디 식당의 무슨 음식이 맛있는지 서로 경쟁하듯이 줄줄 꿴다. 이 서넛 중에 특히 정치나 언론계에 있는 사람이 끼여 있으면 그 자리에서 거론되는 식당과 음식 목록만으로 ‘전국 맛집 100선’ 정도는 금방 나올 수 있다. 어찌들 그 많은 ‘맛집’들을 순례하는지. 정치와 언론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밥집에서 업무(?) 보는 일이 잦아 그럴 것이라 대략 짐작은 하고 있다.



 이런 자리에서 나는 입을 닫고 고개만 끄덕인다. 서로들 그 정도 수준의 식당을 다니면서 같은 종류의 음식을 맛보고 있지 않느냐 하는 ‘동지 의식’을 유발하려는 의도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자리에서 거론되는 식당의 음식을 두고 “맛없어” 하고 평가하는 것은 모난 행동이 될 수가 있다. 그런데 이런 내 마음을 모르고 ‘엄혹한 평가’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그 집 맛있는 것 맞지요?”라는 질문인데, 맛 칼럼니스트로서 버거운 일이다.



 음식을 주제로 하는 만화나 영화에는 절대미각의 소유자가 반드시 나온다. 대장금의 장금이처럼 “홍시 맛이 나니 홍시 맛이 난다 하였사옵니다” 하는 역할이다. 이런 만화와 영화를 많이 보아서 그런지 사람들은 음식에 들어간 숨겨진 재료의 맛을 낱낱이 알아내는 미각의 소유자가 실제로 있는 줄 안다. 오랜 경험으로 대충 재료를 알아맞힐 수는 있어도 그 재료의 낱낱을 알아내는 일은 인간의 미각 능력 너머의 일이다. 화학조미료도 잘만 섞으면 화학조미료에 오염되지 않은 미각이 매우 예민한 사람이라 해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자연의 재료 중에 화학조미료와 거의 같은 맛이 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맛있다, 맛없다는 평가는 극히 개인적인 기호의 차이라고 말하면서도 사람들은 절대미각의 소유자가 있을 것이라고 상정을 하고, 또 그 절대미각의 소유자에게 맛의 평가를 기대하는 것은 자신의 미각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겉으로는 미식가입네 하지만 다들 속으로는 내가 느끼고 있는 이 맛이 진짜의 맛인지 자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미각은 참 부실한 감각이다. 속이려고 들면 아주 쉽게 속일 수 있다. 이를 가장 잘 간파하고 이용해먹는 사람이 식품회사 연구원이다. 수많은 화학적 첨가물을 가지고 온갖 ‘장난’을 친다. 식당의 노련한 주방 인력도 이에 버금간다. 대충의 재료로 입맛에 착착 붙게 음식을 만드는 요령은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 ‘비술의 미식 무림’에서 오직 믿을 것은 절대미각의 소유자일 수 있겠는데, 현실은 만화나 영화와 다르다. 그러니 미식가는 새롭게 정의될 필요가 있다. “자신의 미각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사람” 정도로.



 사람들은 대상을 평가할 때 대체로 그 대상의 여러 항목에만 집중을 하지 평가하는 자신이 어느 수준에 있는지 파악하려고 하지 않는다. 미식 무림에 절대미각이 없듯이 정치·경제·문화 등 여러 무림에도 절대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수준을 끝없이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이 사회는 ‘아름다운 무엇’들로 더 많이 채워질 수 있을 것이다.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약력=중앙대 신방과·농민신문사 기자·(사)향토지적재산본부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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