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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칼럼] 2012 북한의 변화에 거는 기대




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


모든 생명과 사물은 예외 없이 시간과 변화 속에 존재하므로 그 변화와 도전에 어떻게 순응, 대응, 적응하느냐에 따라 문명과 국가의 흥망성쇠가 결정되는 것이라고 갈파한 아널드 토인비의 대작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가 출간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였다. 아마도 당시의 토인비조차도 2차대전의 유산인 한반도의 분단이 66년이나 지속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계속되는 분단과 대결 상황 속에서 2012년에는 한민족에 큰 어려움이 닥칠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국민은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와 같은 불안감은 어디서 말미암은 것일까.

 1945년 해방의 감격도 한순간, 남과 북은 냉전의 대결구도 속에서 분단돼 각기 생존과 발전을 위한 적응과 선택의 경쟁에 전력투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60여 년에 걸친 그 경쟁의 성적표를 지금에 와서 새삼 점검할 필요가 있을까마는 이데올로기는 급격히 효력을 잃어가는 반면 시장의 세계화는 급속도로 진전하며 국제적 세력판도가 재편될 수밖에 없었던 탈냉전의 고비에서 변화보다는 현상유지를 택했던 북한의 결정이 한반도의 경쟁구도를 불균형의 늪으로 빠지게 했음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 그 불균형의 결과로 ‘북한의 다음 수순이 대화보다는 도발의 가능성이 높다’는 외국 전문가의 판단(마이클 그린, ‘평양의 다음 각본’ 중앙일보 2011.7.9)이 설득력을 갖게 된 것이다.

 그동안 북한이 무작정 변화의 필요성을 외면했던 것만은 아니다. 17년 전 오늘, 1994년 7월25일 평양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었다. 우리가 여야 합의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채택한 후 1991년부터 남북 간에는 여덟 차례의 고위급 회담이 있었고 그 결과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이 채택돼 평화통일로의 행진이 시작되는 듯 보였다. 남과 북이 함께 유엔회원국이 됨으로써 평화공존의 기틀도 마련됐다. 그러나 핵무기 개발사업을 비밀리에 계속하던 북한의 집착은 1993년 NPT 탈퇴로 이어졌고 한반도 하늘에는 전쟁의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그렇듯 위태로운 상황에서 1994년 6월 김일성은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만나고 남북정상회담에도 긍정적 반응을 보이며 북한이 세계사적 변화에 순응해 남북관계 및 미·북관계를 새로운 지평으로 옮겨놓는 노력에 동참하겠다는 입장 변화를 시사했다.

 김일성과 같은 노련한 지도자가 소련의 해체와 동유럽 국가들의 민주화, 덩샤오핑이 주도한 중국의 개방과 시장경제로의 개혁 등 1990년대 초 국제정세의 요동치는 변화의 추세를 무작정 외면하며 변화의 막차를 놓쳐버릴 리 없다. 북한도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변화에 시동을 거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해야 되겠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예정된 평양 정상회담을 불과 17일 남겨두고 돌연 김일성이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북한과 한반도의 운명이 어떻게 달라졌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내년 그의 출생 100주년인 2012년을 맞아 큰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북한이 김일성이 못 이루고 간 변화와 적응의 비전과 용기를 되찾아 보다 나은 미래를 열어가기를 기대해 본다. ‘궁하면 변해야 하고, 변하면 길이 열린다’는 옛말을 새겨보아야겠다.

 이 세상 어디에 강성대국이 되기를 싫어하는 나라가 있겠는가. 문제는 21세기의 ‘강성대국’은 ‘연성대국’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군사력이 아니라 경제와 문화의 원동력인 기술과 창의성이, 즉 소프트 파워가 국가의 상대적 강약을 결정하는 시대로 변화했다. 김일성이 세상을 떠난 17년 전에 비해 북한 주민들의 살림살이나 체제안보가 한층 더 어려워졌다면 그것은 군사력의 약화가 아니라 소프트 파워의 취약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려면 김일성이 시동을 걸었던 역사적 궤도수정 작업을 바로 2012년에 재착수하는 것이 한반도의 평화와 발전을 위한 필수의 지름길이라 하겠다.

 민주화 이후 가파른 변화를 거듭해 온 한국에서는 북한 주민의 인권과 복지에 대한 관심과 함께 통일이란 민족적 목표를 위해서도 군사적 행동은 허용될 수 없다는 평화에 대한 집념이 고조되고 있다. 우리 민족 특유의 창의성을 발휘해 20년 전 탈냉전의 고비에서 놓쳐버린 통일된 민족공동체 건설의 기회를 다시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2012년 북한의 용기 있는 변화로의 결단은 이를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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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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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