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유토피아는 있는가

고대 문헌에는 영고나 무천 등 우리 고유의 잔치에 대한 언급이 여러 번 나온다. 가무를 매우 좋아한다는 기록도 있다. 예절을 실천하는 동쪽 나라에 살고 싶다던 공자가 사실은 우리 땅에서 실컷 노래하고 싶었던 건 아닌지 상상력을 발휘해 본다. 조선시대의 악보나 악기들을 보면, 당시 어떤 나라보다 훨씬 더 발달되었다.

이나미의 마음 엿보기

노래방도 많고, 모이면 꼭 노래시키는 분위기도 재미있다. 우리의 심성에 흐르는 놀이문화 유전자의 힘이 그만큼 센 것 같다. 아이돌 스타에 기대 한류 열풍을 이끌어 나갈 것이 아니라, 우리 전통이 갖고 있는 여러 장점도 깊이 연구하고 적용하면 그야말로 세계 문화의 중심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 한국은 마치 메디치 가문 시대의 이탈리아나 20세기 초반의 뉴욕처럼 커다란 문화의 용광로가 들끓는 것같이 보인다. 21세기 한국의 문화·종교·예술 등 여러 영역이 동양과 서양, 봉건과 탈현대를 동시다발적으로 만나면서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 나가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인기 있는 각종 예능 오디션 프로그램들도 그런 상승의 분위기와 관련시켜 생각해 본다. 물론 그 와중에 연예인이 되고 싶은 참가자들을 속이고 돈을 갈취하는 사람도 있다는 등의 부정적 측면도 있지만, 더 이상 아무 꿈도 가질 수 없는 일반인에게 실낱 같은 희망을 주는 기능은 분명 하는 것 같다. 비록 성공한 유명인이 되지는 못해도, 반복되는 노동의 일상을 잊고 무대에 올라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보는 경험 자체가 활력소가 될 수 있다. 짧은 순간이지만, 자신을 오롯이 던지고 표현해 봄으로써 지치고 권태로운 일상이 훨씬 견디기 수월할 수도 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술이나 마시고 그냥 잠이나 자는 대신 무언가 예술적 감흥을 즐길 수 있으니, 인생이 훨씬 아름다워질 수도 있다.

보육원에서 탈출해 거리에서 껌팔이하고 막노동하던 한 젊은이가 오디션 프로그램에 등장해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려줄 때 필자도 많이 울었다. 훌륭한 젊은이를 거리에 그리 오랫동안 방치한 나 자신에 대해 부끄러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맑은 노랫소리를 들려준 최성봉이란 사람에게 감사와 존경을 보내고도 싶었다. 다른 출연자도 열심히 노력해서 자기를 표현하려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상담하는 이들 중에도 가끔 참가 경험을 필자에게 전하는 이들이 있다.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좋았고, 또 비슷한 취미를 갖고 있는 사람과 만나서 즐거웠다고 말한다. 경쟁에 단련된 요새 젊은이답다. 열심히 일하는 시간과 예술적 흥취를 즐길 수 있는 디오니소스적 시간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도 삶의 지혜가 아닌가 싶다.

그 어떤 사회도 불평등과 낙오가 없는 완벽한 유토피아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상대적으로 기회가 박탈되었다는 서운함 속에 사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길은 최소한 열려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참가자와 시청자가 함께 만들어나간다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형식에 사람들이 열광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만큼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소속감과,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기분을 사람들이 평소에 느끼지 못한다는 얘기도 된다. 노래나 춤뿐 아니라, 자신의 다양한 재능을 사람들이 뽐내고 나누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쁨을 주는 신나는 사회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