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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철 “조국이 날 죽이려했다” 분노, 북 소행 모두 자백

-어떻게 감옥생활을 했다고 하던가.
“늘 고향에 돌아가 사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게 자기가 자백해 가족이 고통 받을 거란 걱정이었다고 한다. 그는 여자 손목 한 번 못 잡아본 숫총각이라고 고백하면서 누이동생을 미리 결혼시키지 못한 것, 장남으로서 부모한테 효도하지 못한 걸 괴로워했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특수부대는 출세코스다. 차관급과 맞먹는 월급을 받는다고 했다. 하지만 체포 과정에서 수류탄이 터져 하루아침에 불구가 됐고, 하루 두 끼 쌀밥과 카레 혹은 삶은 채소에 의지해 살아야 했다. 그런 악조건에서 25년을 버틴 건 대단한 정신력일 것이다. 그는 마지막까지 버텨서 남이건 북이건 제3국이건 어디든 한국말을 쓰는 동포가 있는 곳에 갈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미워하면서도 동포를 그리워한 것이다.”

라종일 전 국정원 차장이 밝히는 ‘아웅산 테러 비화’


-강민철을 석방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그는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수사에 협조해 집행이 유예된 상태였다. 미얀마 정부도 그를 풀어줄 의사가 있었다. 우리 정부도 그를 데려오는 문제를 검토했다. 두 가지 이유로 성사되지 않았다. 첫째 우리가 데려오면 북한이 ‘아웅산 사건은 남한의 조작임이 드러났다’고 주장할 수 있다는 우려다. 하지만 이미 미얀마(사건 당시엔 버마) 정부의 수사로 진상이 완전히 드러난 상태였기 때문에 정당한 이유가 아니었다. 둘째는 남북 관계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던 햇볕정책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정부가 안 움직이기에 평소 친분이 있는 극동방송 회장인 김장환 목사에게 교섭을 부탁했었다. 2000년대 초에 김 목사가 미얀마로 가 강민철의 석방을 교섭했다. 그쪽에선 정부 차원의 요청이라면 몰라도 민간인에겐 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나는 꼭 한국으로 데려오자는 것도 아니었다. 제 3국에라도 가서 치료도 받으면서 단 하루라도 자유롭고 사람답게 살게 해 주고 싶었다. 한 번은 호주 정부 관리와 식사를 하면서 비공식적으로 얘기를 꺼낸 적이 있는데 부담스럽다고 하더라.”

-남북관계에 걸림돌이 된다는 게 사실상의 이유였던 건가.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강민철을 석방시켜도 남북관계나 햇볕정책에 대한 영향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게 있다. 북한이 햇볕정책에 응한 건 북한의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지 우리의 진심을 보고 응한 게 아니다. 내가 접했던 정보를 공개할 수 없도록 돼 있기 때문에 자세히 밝히기 힘들다. 하지만 북한이 아무런 전략 없이 햇볕정책에 응한 건 아니었다. 북한은 햇볕정책 덕분에 대남정책에서도 상당히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6·15 선언이 여러 가지 긍정적인 면이 있는데 김대중 대통령은 순수한 마음에서 햇볕정책을 접근했을지 몰라도 북한이 같은 마음이라고 보긴 힘들다.”

-결국 남북한 정부 모두가 강민철을 버린 셈이다.
“자기들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을 하는데 사람 하나의 운명이 어떻게 되건 뭐가 문제냐는 사고방식이 문제다. 미국은 북한에 억류된 자국민 한 명 때문에 전직 대통령이 체면을 구겨가면서 들어가서 결국 데려오지 않는가. 그런데 우리에겐 사람의 문제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다.”

-그동안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강민철의 얘기를 왜 이제 하는 것인가.
“2008년 그가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많은 생각을 했다. 장례도 없이 화장했다고 한다. 그로써 강민철은 남과 북에서 완전히 잊혀진 사람이 되고 말았다. 강민철이 살아있을 때 남북 정부는 수없이 접촉하고 만났는데 한번도 강민철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민족 화합을 얘기하던 햇볕정책 때도 마찬가지였다. 분단체제의 희생자인 그를 평생 이국의 감옥에서 살다 죽게 하면서 통일과 화합을 얘기하는 건 비극이다. 우리 민족의 엄청난 업보가 있다. 북한의 만행을 규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민족이 사람 하나의 목숨을 쉽게 안다는 걸 지적하고 싶었다. 현실에선 잊혀졌지만 사람들의 기억에서라도 되살려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치적 동기는 전혀 없다. 사람의 문제를 부각시키려는 것뿐이다.”

-북에서도 강민철은 잊혀진 존재인가.
“전해 들은 얘기지만 강민철의 상관들은 동정은커녕 ‘바보 같은 놈, 일 처리를 잘 못해 놓고 붙잡히기까지 했다’며 비난했다고 한다. 강민철은 마지막까지 탈출하려 했다. 특수훈련을 받은 그는 미얀마 군인의 추적 정도는 우스웠을 것이다. 약속한 곳으로 가면 보트가 기다리고 있다가 자신을 조국으로 데리고 갈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보트는 없었다. 강민철은 수류탄이 터져 한쪽 팔이 잘리고 온몸이 불구가 된 채 붙잡혔는데 자살하려던 게 아니다. 수류탄 핀을 뽑고 안전 버튼을 잡고 있으면 터지지 않는데 바로 터져버렸다는 것이다. 강민철은 그때 ‘아, 조국이 날 죽여버리려고 이런 수류탄을 지급한 거구나’하고 배신감을 느꼈고 그래서 자신이 북한 공작원임을 자백한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요직에서 일했는데 스스로를 진보 학자라고 생각하나.
“나는 그런 분류를 거부한다. 개인적으론 급진적이기도 하고, 보수적이기도 하고, 때론 리버럴하다. 권력의 논리를 알고 체득할수록 진보나 보수의 한쪽으로 가기 힘들다. 발자크는 큰 부(富)의 뒤엔 반드시 범죄가 있다고 했다. 큰 권력의 뒤는 더 심하다고 생각한다. 마키아벨리도 말했듯 권력은 신의 영광이 아니라 사람의 영광이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아마도 이명박 정부가 과거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180도 선회한 데 대한 경고이겠지만 더 큰 이유는 다음 정권에 대한 경고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정권에 대해서 우리한테 잘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라는 메시지일 것이다.”

-강민철 이야기를 증언하면서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가.
“마오쩌둥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다. 내가 보기엔 틀린 얘기다. 권력은 총구가 아니라 결국은 수많은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데서 나온다. 햇볕정책도 단순히 정치적 어젠다로 접근하면 안 되고 휴먼 어젠다로 가야 한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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