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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청문회를 청문하라

조선 초기 세종 때 조말생이란 엘리트 관료가 있었다. 문과 장원급제를 한 뒤 승승장구했을뿐더러 장남은 태종의 부마가 됐다. 태종이 세종에게 양위한 때부터 8년 동안 병조판서를 맡아 병권을 관리했다. 하지만 그는 뇌물수수 사건으로 사형을 당할 위기에 몰렸다. 780관(貫)어치의 전답과 노비를 뇌물로 받아 교형(絞刑·교수형)의 한계인 80관을 훨씬 넘어선 것이다. 그때 세종은 어떻게 했을까. 뜻밖에도 교형이 아닌 유배형을 내리고 2년 후에 사면했다. 다시 2년 후엔 직첩을 돌려줘 관직 회복 자격을 부여했다. 다시 2년 후 조말생은 중추원 동지사를 거쳐 이듬해 함길도(함경도) 관찰사로 나간다.

사헌부를 비롯해 양반 사대부들의 척결 요구는 빗발쳤다. “그대들이 법에 의거해 말하지만 내 뜻은 이미 정해졌다.” 당시 세종이 했던 답변이다.

세종은 왜 그랬을까. 조말생과 사돈관계라서 함부로 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조말생은 관찰사로 있으면서 변방의 안정을 도모하며 명장 최윤덕이 서북면 접경을 방어하는 데 큰 공을 세우도록 했다. 훗날 김종서가 6진 개척에 나설 기반을 닦았다. 세종의 인사에서는 능력을 중시하는 기준이 엿보인다. 국가경영의 목표 달성에 부합하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기용한다는 게 핵심이다. 우리 역사상 최고 명군으로 평가받는 세종의 인사스타일에서 법치보다 왕도정치를 보게 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인사를 했다. 두 후보자에 대한 정치적 중립성, 병역, 위장전입 등 도덕성과 법적인 문제들로 이런저런 비판이 나온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한 것 같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야당은 ‘측근 인사’ ‘회전문 인사’라며 이들을 낙마시키겠다고 잔뜩 벼른다. 한 후보자는 정치적 중립성, 한 후보자는 병역과 위장전입 등을 공격받고 있다.
그중 위장전입 문제는 고위공직자 인사 때마다 불거지는 한국 사회의 골칫거리다. ‘이명박 정부 들어 임명된 검찰총장 전원이 위장전입을 했다’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 청와대·한나라당은 ‘민주당이 추천했던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도 위장전입 사실이 있었다’고 맞선다. 장군멍군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공직후보자의 위장전입에 대한 기준은 ‘3진 아웃제’로 굳어지는 것 같다. 지금까지 낙마한 인사들을 보면 투 스트라이크까지는 괜찮다고 보는 모양이다. 업무능력과 도덕성이 충돌할 때 지도자는 어떤 식으로 사람을 써야 하는가? ‘법의 뜻’이 ‘인사권자의 뜻’을 앞서는 것인가?

조말생 사례는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세종은 조말생이 자신의 사돈이자 고굉지신(股肱之臣)이기 때문에 신하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복권시킨 게 아니었다. 함길도 관찰사라는 직임을 훌륭히 수행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요샛말로 업무능력을 봤던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장관급 인사청문회를 도입한 이후 도덕성의 벽을 넘지 못하고 낙마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인사청문회가 겁나서 자리를 사양하는 인사도 적지 않다는 소문이 나돈다. 도덕성의 씨줄과 업무능력의 날줄로 짜인 정교한 그물을 무사히 통과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떡고물론’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도덕과 법의 현실적 격차가 크기에 도덕성의 촘촘한 그물을 흠집 없이 통과하기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울지 모른다.

이제는 이런 모순을 극복할 때다. 청문회를 통해 도덕성 못지않게 후보자의 자질·능력을 검증하는 데 진력해야 한다. 국가를 위해 무슨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규명한 뒤 국민 여론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정파적 이해에 매몰된 나머지 자기 모순적 잣대를 들이대는 건, 그나마 쓸 만한 인재들을 스스로 짓밟는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 어느 정당이든 야당 때의 공격 기준과 여당이 된 다음의 적용 기준이 일치되지 않는다면 인사청문회 취지는 영영 퇴색될 것이다.

미·일 같은 선진국도 우리 국회에서처럼 가혹한 흠집내기와 인신공격, 무차별 폭로가 펼쳐진다면 고위공직자로 발탁할 ‘인재 풀’은 훨씬 좁아질 것이다. 21일 상원 인준 청문회를 마친 성 김 주한 미 대사 내정자의 사례를 보자. 직전 직위와 심지어 나이까지 따지고 사돈네 팔촌까지 걸고 넘어졌다면 그가 과연 40분 만에 인준 청문회를 끝낼 수 있었을까. 이런 게 미국의 인사청문회가 다른 점이다. 업무능력과 도덕성이 충돌할 때, 조말생을 복권시킨 세종의 깊은 뜻을 헤아려보자.



강성남 1992년 서울대 행정학 박사 학위를 딴 뒤 대학·국회·시민단체에서 활동해 왔다. 저서로 『부정 부패의 사회학』 『행정변동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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