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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환 만난 DJ “내각제 공약하면 누가 찍어주겠소”

1996년 말부터 DJ는 우경화 전략을 썼다. 국방비를 증액하고, 군인들 사기를 챙겼다. 10월 28일 DJ가 당사에서 김동진 국방부 장관을 만났다. [중앙포토]
1996년 11월 1일은 금요일이었다. DJ의 동선이 하루 종일 오리무중이었다. 여의도 당사에도, 일산 자택에도, 아태재단 사무실이나 동교동 김홍일 의원의 자택에도, 어디에도 총재의 흔적이 없었다. 오후까지 기다리다 수행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머뭇거리며 “어딘지 말해줄 수 없다”고 했다. 금방 감이 왔다. DJ가 누군가 중요한 인물을 만나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럼 더 이상 질문하면 안 된다. 알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건 동교동 비서들 사이에서 일종의 철칙 같은 거였다.

장성민 전 의원 인간 金大中 이야기<22>1996년 11월 1일 DJ의 ‘증발’

DJ는 오랫동안 도청과 미행에 시달려 왔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단히 철저했다. 어떤 비서든 쓸데없는 호기심을 보이면 신뢰하지 않았다. 사람의 능력에 대한 DJ의 관점은 독특했다. 인간의 능력은 태어날 때 주어지는 게 아니라, 살면서 계속 갈고 닦아 진화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학력이 높은 비서보다는 날이 갈수록 능력과 감각이 커지는 비서를 선호했다. 그런 비서들에게는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주면서 보석 다듬듯 즐거워했다.

그걸 알면서도 도대체 DJ가 누굴 만나고 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혹시, 하는 생각에 목동 이모에게 전화를 했다. 이희호 여사의 여동생 이미호씨를 나는 이모라고 부르며 따랐다. 88년 초 내가 DJ를 처음 대면했던 것도 목동 이모댁에서였다. DJ는 중요한 구상을 하거나, 공천 작업을 하거나, 연설문을 쓰거나, 극비리에 사람을 만날 때 그 집을 이용했다. “이모님, 전데요, 혹시 거기 계세요?” 이모는 목소리를 최대한 죽여서 말했다. “나중에… 지금 중요한 손님이 오셔서 통화하기가 그래요.” 이모는 원래 목소리가 작지 않지만 형부인 DJ가 머무르고 있을 땐 최대한 목소리를 낮췄다. 더 이상 물을 것도 없었다. 바로 목동으로 달려갔다.

당시 비서는 김정기·방기섭·이재만과 김종선 기사였다. 이들은 모두 DJ와 함께 청와대로 들어가 수행실장과 제2부속실장, 수행비서, 대통령 기사로 일했다. 비서들의 입이 쫙 벌어졌다. “아니, 어떻게 알고?…” 집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자그마한 체구에 안경을 낀 사람이 방에서 나왔다. 자민련 김용환 사무총장이었다. DJ가 마루까지 나와 “잘 가시라”고 했다. 두 분 다 표정이 괜찮았다. 힐끗 방안을 보자 책상 위 A4용지에 DJ가 검은색 수성 사인펜으로 뭔가 빼곡히 적어 놓은 게 보였다. DJ가 나를 보고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왔지?” “예, 혹시나 해서 들렀더니 여기 계신다고 해서요. 드릴 보고서가 있습니다.” “그래요, 한데 여기서 있었던 얘기가 절대 새어나가면 안 돼요. 보고서는 내가 나중에 볼 테니 두고 가세요.”

나중에 알게 됐지만 DJ와 김용환 총장은 10월 20일 경북 봉화 현불사에서 열린 호국영령위령대제에서 만났는데 거기서 김 총장이 면담 일정을 잡아 달라고 했다고 한다. 이날 두 사람은 내각제를 놓고 꽤 많은 얘기를 나눴다. 한 일주일쯤 뒤 DJ가 이날 대화 내용을 알려줬다. 다음과 같은 것이다.

▶김 총장=국민회의가 당론을 내각제로 바꾸고 대선에서 승리하면 곧바로 내각제 개헌을 한다고 공약해 달라. 대선에서 이기고 내각제를 추진하면 신한국당 내에서도 동조하는 이탈 세력이 나올 것이다.
▶DJ=15대 국회 때 개헌은 어렵다. 대통령이 되자마자 내각제 개헌을 한다면 누가 표를 주겠나. 신한국당 내 이탈을 얘기하지만 자민련 내 TK(대구·경북)와 신한국당이 결합하면 오히려 개헌주도권을 상실할 가능성이 있다.

내가 궁금해서 물었다. “그럼 의견 일치를 본 부분은 없습니까?” DJ가 말했다. “저쪽에서도 정권교체를 위한 양당 공조의 필요성에는 확실히 강한 의견을 갖고 있었어요. 후보 단일화와 집권 후 내각 분배는 내년 6월부터 논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모았어요.” 두 사람의 회동 사실은 나중에 11월 말께 공개됐다. 당시 언론은 DJP(김대중과 김종필 연대)가 제대로 안 될 것 같다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게 아니란 걸 알려주려고 동교동의 한 핵심 측근이 회동 사실을 언론에 슬쩍 흘려준 것이다.

그런 와중에서도 JP는 협상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11월 9일 부여에서 “15대 국회 임기 중 내각제 개헌이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이틀 뒤인 11일 대구에서는 “내각제를 전제로 한다면 신한국당과도 협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DJ와 국민회의를 향해 “난 언제든 맘을 바꿀 수 있으니 알아서 하라”는 신호였다. 당시 신한국당이 JP의 발언에 적당히 호응하면서 DJP 분열 전략을 썼다면 어떻게 됐을까.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분명 국민회의 내부에서 적지 않은 동요와 혼란이 발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신한국당은 JP에게 싸늘하게 반응했다. 강삼재 사무총장은 “개헌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고, 자민련과 협상할 생각도 없다”고 싹을 잘랐다. 다른 고위 당직자들도 “일고의 가치도 없다. 우리 당을 교란시키려는 불순한 의도로 보인다”고 비난했다. 한 달 뒤인 12월 19일 자민련 소속 최각규 강원도지사와 황학수·유종수 의원이 탈당해 신한국당으로 간 걸 보면 당시 신한국당은 자민련과 JP를 회유하는 대신 망가뜨리기로 작정했던 것 같다. 그게 전략적 실패라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알게 됐을 테지만 말이다.

신한국당과 자민련이 다시 손잡을 가능성이 희박해짐에 따라 DJ와 국민회의는 대선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다음 선거에선 총리가 아니라 대통령을 뽑는 게 분명했고, 일단 지지도를 높이는 게 급선무였다.

당시 DJ의 전략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키워드는 통합, 노선은 중도보수, 핵심 쟁점은 경제, 공략 대상은 젊은 유권자, 정성을 쏟을 지역은 충청과 TK.

PK(부산·경남)와 TK 사이에서 고민했지만 TK로 간 건 당시 그 지역에 YS(김영삼 대통령)에게 팽(烹) 당했다는 정서가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다. 통합을 앞세우고 경제를 핵심 쟁점으로 삼은 건 예상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가장 나이가 많은 DJ가 젊은 유권자를 공략 대상으로 하고 중도진보도 아닌 중도보수를 선택했다는 건 아마 의외일 것이다. 그런 판단을 내린 건 지지난 호에서 지적했듯이 11월 5일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빌 클린턴이 보수 정책을 앞세워 재선에 성공했다는 게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진보진영은 정권교체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DJ가 보수화해도 신한국당 후보를 찍지는 못할 것”이라는 교수들의 조언도 참고했을 것이다.

11월 12일 DJ가 국민회의 소속 국방위원들에게 “국방예산이 대폭 늘어나도록 노력하라”고 지시했다. 방위력 증강을 위해 추가 계상한 1140억원과 별도로 장병처우개선비 900억원을 증액하라고 한 것이다. 구체적으론 하사관 수당 인상분 400억원, 급식인상비 244억원, 하사관대학생 자녀 학자금 보조금 250억원이었다. 해마다 국방비 삭감투쟁을 벌였던 DJ로선 그야말로 획기적인 변화였다.

11월 14일 진보기독교단체인 한국기독교사회연구원 초청특강과 하루 뒤인 15일 당청년특위대학생 모니터팀 대화에서 DJ는 자신의 보수전략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DJ는 한총련을 해체하라고 하고 대북규탄대회를 열자고 한 이유를 열띤 어조로 설명한 뒤 “나는 반동적 보수가 아니라 온건보수, 개혁적 보수”라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의 클린턴도 다소 우경화해서 진보세력의 4%를 잃고 중도와 보수로부터 훨씬 많은 표를 얻었다. 여성과 흑인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기본정책은 포기하지 않았다. 나도 그렇게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말도 했다. “세계가 보수화하고 있다…(중략) 걱정 말고 나를 당선시켜 보라. 그러면 아, 저렇게 하려고 표를 모으기 위해 그런 자세를 보였구나 하는 걸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DJ의 우경화를 가만히 보고 있을 신한국당이 아니었다. 김철 대변인은 “클린턴은 기본 노선을 견지하면서 정책을 응용한 반면 김 총재는 노선 자체를 수시로 위장하고 있는 게 문제다”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이른바 ‘위장보수론’이다. 당내에서도 DJ의 노선에 대해 일부 동요가 있었다. 젊은 층의 반발도 감지됐다. DJ는 젊은 초선 의원들로 구성된 특보단을 최대한 활용했다. 전국을 세 권역으로 나눠 연고가 있는 특보단 의원들을 분산 배치했다. ▶경기·강원=김한길·유선호·이기문·조성준·천정배 ▶충청·호남=정한용·신기남·김성곤·정세균 ▶영남=추미애·김민석·설훈·김상우 등이다.

11월 18일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는 전국지구당 위원장 200여 명과 광역의원 300여 명이 모였다. 여기서 DJ는 경제제일주의를 선언했다. “정권을 맡을 사람은 경제 식견과 경험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내년에 필요한 대통령은 경제 대통령이다.” DJ는 또 ‘우리 경제 어떻게 살릴 것인가’라는 제목의 책을 쓰기 시작했고 내년에 출간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네 번이나 대통령에 출마한다는 유권자의 식상함은 ‘준비된 대통령’이란 단어로 역전시키고, 경제에 대한 국민적 불만은 ‘경제 서적을 쓰는 전문가’라는 이미지로 흡수하고, 사상에 대한 의구심은 보수 행보로 맞받아치면서 성큼 다가온 대선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DJ는 선거 때마다 ‘빨갱이’라는 음해에 시달렸었다. 이번엔 대비가 철저했다. 여당이 DJ의 사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 곧바로 “색깔론이며 용공음해”라고 강력히 반박했다. 그러면서 신한국당을 수구냉전, 보수골통이라고 역공했다.

정치는 말에서 시작해 말로 끝난다. 용어와 개념을 장악하는 쪽이 승리한다. 수구골통이라는 용어가 빨갱이라는 용어를 서서히 대체하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DJ에겐 집권의 희망도 커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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