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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제도<시가평가제도>보다 ‘탐욕’이 금융위기 원인

2008년 9월 14일 미국 뉴욕 월가의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자 직원들이 개인 소지품을 넣은 박스를 들고 본사를 빠져나가고 있다. 이 파산이 금융위기의 시발이 됐다. [뉴욕 로이터=연합뉴스]
막대한 재정적자를 감수한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기는 쉽게 회복되지 않고 있다. 국민의 불만 때문에 민주당은 2010년 중간선거에서 참패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런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금융개혁’이라는 이슈를 들고나왔다.

최종학의 경영산책

오바마의 개혁안은 은행이 성장보다 안정적인 경영에 집중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결과 단기적으로는 은행의 영업이 위축되는 결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이며, 장기적으로 어떤 효과가 발생할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른 나라들이 똑같은 규제를 실시한다면 세계의 금융기관들이 동일한 규제 아래서 경쟁하게 되면서 금융업의 안정화에 공헌할 것이다. 그런데 미국만 이런 제도를 실시한다면 결국 미국 은행들만 손발이 묶여 다른 나라의 은행들이 미국 은행을 제치고 시장을 차지하는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결국 이 규제의 성공은 얼마만큼 다른 나라 정부가 미국의 규제에 동참해 줄 것이냐가 관건이다.

금융권은 이런 규제가 일반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한 목적일 뿐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또한 금융권은 공격적인 파생상품 판매로 인한 부동산 거품 때문이 아니라 ‘시가평가제도(市價評價制度· mark-to-market accounting)’라는 잘못된 회계제도 때문에 금융위기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들은 ‘시가평가제’가 없었다면 위기가 발생하지 않았거나 발생했더라도 ‘찻잔 속의 미풍’ 정도에 그쳤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들은 시가평가제를 없애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가평가제란 자산 가치를 시장에서 현재 거래되는 가격대로 재무제표에 표시하는 제도다. 과거에는 보수적인 원칙에 입각해 자산의 구입 가격을 사용하는 역사적 원가와, 원가와 시가를 비교한 후 둘 중 더 낮은 가치를 자산 가치로 사용하는 ‘저가주의(低價主義)’가 보충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90년대 이후 이런 평가 방법이 자산 가치를 되도록이면 낮게 평가하는 방식이므로, 기업의 재무상황을 실제보다 나쁜 것처럼 표시하게 된다는 불만이 대두되었다. 그 대신 공정한 가치라고 할 수 있는 시가를 이용해 자산 가치를 평가하자는 주장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가평가제의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한 집단이 바로 금융권이었다. 금융권은 주식·채권·파생상품 등의 금융자산을 다수 보유한다. 금융자산의 가치 평가를 위해서는 이들 금융상품이 기초하고 있는 자산(underlying assets)의 시가가 얼마인지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주식의 내재 가치가 얼마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삼성전자가 보유하고 있는 자산들의 원가가 아니라 시가가 얼마냐를 아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금융권에서 시가평가제의 도입을 주장한 것이다.

회계학자들이 이런 점을 몰라서 보수적인 원칙에 입각한 가치 평가 방법을 사용해온 것은 아니다. 대공황 이전에는 회계 기준이나 의무감사제도가 없었다. 인간은 자신의 장점을 과장하고 단점을 숨기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당시 기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산 가치를 부풀려 재무제표에 표시했다. 그러다 보니 주가가 기업의 내재 가치와 비교할 수 없이 높이 치솟는 거품이 발생했고, 더 이상 거품이 유지될 수 없자 버블이 터진 것이다. 그 결과 대공황 이후 제도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회계감사가 의무화되었으며, 보수적인 원칙에 입각한 회계기준이 준법률로 제정되게 되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부터 저금리 정책이 시작되고, 정부가 저소득층에 대한 부동산 매입 대금 전액 대출을 장려하자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 그 결과 부동산 관련 파생상품 가격이 치솟았다. 이 때문에 시가 평가를 시행해 많은 미실현 평가이익을 재무제표에 기록한 금융권은 보너스 잔치를 벌였다. 그러나 거품이 폭락하자 파생상품 자산의 가격이 폭락했다. 자기자본의 수십 배에 달하는 막대한 부채를 빌려 공격적으로 파생상품에 투자했던 투자은행들은 막대한 손실을 기록했고, 이들 손실이 재무제표에 미실현 평가손실로 반영되면서 순식간에 부도 위기에 처하게 됐다.

만약 시가평가제가 없었다면 금융기관들은 이들 파생상품을 회계장부에 기존의 장부금액으로 표시하면서 손실을 당분간 숨겨둘 수 있었을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금융권에서 시가평가제가 위기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시가평가제가 없었다면 가치가 폭락했더라도 폭락한 가치를 회계장부에 반영할 필요가 없으므로 회사가 어려운 것처럼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주식이나 보유자산의 투매가 덜 발생해 그 결과 경제위기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금융기관들이 각국 정부에 강력하게 로비를 했고, 이에 따라 각국은 회계기준을 변경해 시가나 장부금액 중 기업이 자율적으로 한 가지 방법을 선택해 사용하는 것을 허용했다. 그러자 대다수의 금융기관이 시가 사용을 중지하는 방식으로 회계 처리 방법을 변경했다. 금융위기 동안 금융기관들이 본 손실은 대략 4조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학자들은 그중 대략 1조5000억~2조 달러 정도가 이런 방식으로 회계장부에 숨겨져 있다고 추정한다. 겉으로 보이는 금융위기는 이제 끝난 듯하지만 아직 숨겨진 부실이 다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회계 처리 방법도 기업의 자율 선택에 맡겨졌으니 앞으로는 회계지식이 별로 없는 일반투자자가 재무제표만 보면서 기업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더 어려워진 셈이다.

회계제도가 위기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금융권이 회계제도를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잠재우려는 것일 뿐이다. 시가평가제가 도입되지 않았더라면 거품이 터지는 시기만 좀 더 늦춰졌을 뿐 언젠가 거품은 터지기 마련이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진실은 드러나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개혁이 성공하기까지는 많은 험난한 장애물이 놓여 있다. 가장 큰 장애물은 우리 스스로의 ‘탐욕’이다. 정치인의 인기에 대한 탐욕 때문에 무리한 정책이 실시되었고, 개인들은 부에 대한 탐욕 때문에 돈을 빌려 주택 구입에 나섰다. 그리고 그 과정에 금융기관들이 파생상품을 만들어 돈벌이에 나섰던 게 금융위기의 원인이다.

오바마의 금융개혁안도 어중간한 수준에서 타협하는 것으로 끝났다. 다른 나라들이 미국의 개혁안에 대해 동조하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만 강력한 규제를 실시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금융개혁이 마무리되자 오바마는 이슈를 제조업 살리기로 돌렸다. 하루빨리 미국 경제가 살아나 세계 경기가 함께 회복되기를 바란다.




최종학(44) 서울대 경영대학 학부와 석사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회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홍콩과기대학 교수를 거쳐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숫자로 경영하라』와 『재무제표 분석과 기업가치 평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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