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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에 시술법 전수 자연스럽게 단골 돼

지난 6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오스템 월드미팅 2011 서울’에서 외국인 치과의사가 제품 상담을 하고 있다. 국내외 치과의사가 참석하는 이 행사는 임상 노하우를 공유하는 강의와 포럼, 제품 전시와 상담이 동시에 이뤄진다. [오스템임플란트 제공]
‘치아 임플란트 시술은 턱뼈에 기둥을 박아 이를 만들어주는 획기적인 치료법이다’. 2001년 신문 기사의 내용이다. 임플란트는 자신의 원래 이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금세기 치과학의 최대 업적’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시술 의사가 부족한 데다 비용도 비싸 부담스러운 시술법이었다. 그랬던 것이 눈 깜짝할 새 상한 이를 대체하는 일반적인 시술이 됐다. 그 중심엔 오스템임플란트(대표 최규옥)가 있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임플란트 시장을 개척해 약 2500억원 규모의 국내 시장에서 1위를 지키고 있다. 2005년에는 해외 진출에 나서 15개국에 현지 법인을 두고 4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IGM과 함께하는 강소기업 벤치마킹⑩ 오스템임플란트

어떻게 병원·대학 등 의학계가 아닌 기업이 의료 시술 대중화의 주역이 됐을까. 그리고 어떻게 세계시장에서 짧은 시간 안에 두각을 나타냈을까.

기존 회사 인수해 1997년 출범
최규옥 대표는 전직 치과의사다. 제품을 이용하는 치과 의사들의 마음을 잘 알 수밖에 없다. 그 역시 “치과 의사들이 행복하게 진료할 수 있게 해 주고 싶다”고 말한다. 개인병원을 운영하던 최 대표가 사업가의 길에 첫발을 들인 것은 1992년. 차트 관리, 보험 청구 등 행정 업무에 불편함을 느끼고 직접 해결할 방법을 찾아나선 것이다. 주변의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모았고, 두 번의 클릭으로 환자 진료, 보험 청구를 해결할 수 있는 ‘두번에’를 개발했다. ‘두번에’는 전체 치과병원 65%에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가 됐다.

두 번째 기회는 97년에 왔다. 임플란트 제조를 하던 중소기업 사장이 제품 홍보를 위해 그의 병원을 찾았다. 대뜸 물었다. “원장님이 우리 회사를 인수할 생각이 없습니까.” 92년 설립된 수민종합치재라는 회사였다. 국내 최초로 임플란트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시장은 열악했고 그나마 외국산에 밀려 고전하고 있었다. 최 대표는 멀리 내다봤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고 소득 수준이 향상되면서 무한한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 본 것이다. 70억원을 주고 회사를 인수했다.

교육센터 만들어 시술법 실습교육
당시 1만8000명의 치과의사 중 임플란트 시술을 할 수 있는 의사는 300명. 해외에서 시술법을 배워온 이들은 대학 중심으로 연구회를 만들어 알음알음 시술법을 전파했다. 하지만 일종의 외과 수술인 임플란트를 익히기 위해선 1인당 수백만원의 실습비가 들었다. 수업은 이론 중심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진짜 시술법을 배울 길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오스템은 의사를 교육하는 데 정성을 들였다. 시장을 키우려면 일단 시술할 수 있는 의사가 많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 삼성동에 교육센터 AIC(Apsun Dental Implant Research & Education Center)를 열었다. 실력 있는 의사를 디렉터로 초빙했다. 교육 프로그램도 실습 위주로 마련했다. 개별 실습이 가능하도록 1인용 테이블을 만들고 실제 제품을 사용하도록 했다. 6개월의 모형 실습 후 환자에게 시술하는 실제 시술을 마쳐야 수료할 수 있었다. 테이블 한 개당 500만원. 적지 않은 투자지만 AIC는 오스템임플란트 성공의 기반이 됐다. 이곳에서 교육받은 의사들이 자연스럽게 오스템임플란트 제품으로 시술했기 때문이다. 처음 손에 쥔, 익숙한 제품을 계속 사용하게 되는 특성을 십분 활용한 일종의 마케팅이 됐다. 처음 20개 테이블에서 시작한 AIC는 전국 18개 지역으로 확장됐다.

중국시장 점유율 40%…15개국에 법인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다. 한국은 원조인 유럽보다 많은 임플란트 시술이 이뤄지는 나라가 됐다. 하지만 후발주자들이 바짝 쫓아오면서 블루오션은 레드오션이 됐다. 이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국내 시장에서 유명해 지면서 해외 주문이 들어온 것이다. 오스템임플란트는 2005년 아시아 시장부터 진출했다. 아시아 시장이 사업 초기 국내 시장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시술할 수 있는 의사는 적고, 제품 가격도 비쌌다.

한국 시장과 같은 전략을 썼다. 제품보다는 AIC를 먼저 알렸다. 교육으로 시장을 창출하고 매출을 늘리는 방식을 적용했다. 중국의 경우 2007년 354명, 2008년 636명, 2009년 750명 의사가 교육을 받았다. 시장점유율도 2007년 8.5%에서 2009년 40%까지 늘었다.

공격적인 해외 진출이 성과를 보이기도 했지만 생각지 못한 어려움도 생겼다. 최 대표는 “해외 법인 투자금으로 200억원 정도를 생각했는데 1200억원도 넘게 들었다”며 “현금 흐름이 막히면서 인수합병(M&A)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어려움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해외진출 3년차를 맞으면서 흑자를 내는 해외법인이 생겼고, 2009년엔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 후생노동성 허가를 획득하면서 다시 탄력을 받게 됐다.

국내에서는 최종 소비자의 마음을 사는 데도 매진했다. 임플란트는 기업이 치과의사와 거래하는 B2B 제품이다. 의사를 상대로 마케팅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오스템은 임플란트가 몸에 심는 제품이기 때문이 환자가 알고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고, 갈수록 이런 요구가 커질 것으로 봤다. 2006년 과감하게 라디오·TV 광고를 시작했다. 초기엔 다양한 연령대의 모델을 기용해 임플란트는 나이가 들었을 때가 아니라, ‘이가 상했을 때 필요한 것’이라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이후에는 브랜드명을 넣어 ‘오스템=임플란트’라는 등식을 각인시켰다.

급성장하던 회사는 2009~2010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국내 시장 포화와 대규모 해외투자 등이 원인이 됐다. 위기 극복을 위해 회사는 정공법을 택했다. 지금까지 임플란트라는 선진기술 도입으로 성장했다면, 앞으로는 기술 개발로 앞서 나가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자체 기술로 개발한 3세대 임플란트가 보건복지부의 ‘보건의료 연구개발사업’ 국책과제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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