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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절한 그리움 불러내는 파스밴더 옹달샘물처럼 순수한 음색 제프리트

자기 취향이 어떤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내 경우는 이런가 보다 하면 곧장 저런가로 넘어가고 또 금방 요런가, 아니 조런가 뒤죽박죽이다. 아직도 바다의 해군을 더 좋아하는지 육군을 좋아하는지, 즉 회인지 고기인지 오락가락한다. 산이 좋은가 해서 설악산을 찾으면 곧장 경포 앞바다가 그립고 또 뒤바뀌고 그런다. 이 취향불명 성향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기도 한다. “난 주관이 달리나봐”하고 한탄하면서.

詩人의 음악 읽기 옛 가수들③- 내가 사랑하는 여가수들

그중 으뜸의 취향불명이 여성 취향이다. 싫은 여성은 거의 없다. 싫어하기보다 무관심할 뿐. 그리고 대부분의 여인 역시 내게 무관심한 것일 뿐. 이래 좋고 저래 좋으니 만나고 싶고 놀고 싶은 상대는 많다. 그런데 잘되는 일은 없다. 결혼했지 가진 것 없지 덜 생겼지,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모든 그녀들을 용서하고 이해하기로 한다. 연예인이 각광받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대리만족이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사정이 이러하니 연정을 느끼며 좋아하는 여가수가 너무 많다. 편의상 첫 손가락을 꼽으려 얼굴들을 떠올려 보니 순식간에 대여섯 명 넘게 뇌리를 스친다. 아, 음악에서만은 절대로 일부일처제를 수용 못하겠다. 현실에서 일부일처가 가능한 것은 그놈의 의리 때문이다. 의리란 함께한 세월의 무게가 안겨 준다. 의리의 돌쇠 심정으로 내가 사랑한 여가수 맨 앞자리를 꼽아보니 어쩔 수 없이 브리기테 파스밴더(위 사진)가 놓인다. 슈만의 연가곡집 ‘여인의 사랑과 생애’ 때문이다. 사람 죽이는 그리움.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때 파스밴더의 그 노래, 그 목소리를 들었다. 청승이 절절한데 그걸 억제시키는 의지가 결연하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려고 피가 나도록 제 몸을 꼬집고 할퀴어 본 사람은 파스밴더 음성의 결을 느낄 수 있다. 배우인 엄마를 따라 내내 연극 공부를 하다 아주 늦게 독학으로 성악을 깨우쳤다고 한다. 오페라 공연물도 여럿 보았지만 역시 파스밴더는 독일 리트에서 범접불가의 경지를 보여준다.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왼쪽)와 이름가르트 제프리트가 듀오로 녹음한 음반.
찌릿찌릿한 ‘카르멘’ 베르간자
여성의 매력 가운데 양면성만큼 예찬돼 온 것이 또 없을 것 같다. 이른바 성녀와 창녀의 복합적 성향. 바이런 이래 ‘순결하면서 요염하라’ 식의 열망은 모든 사내의 로망처럼 여겨져 왔는데 강고한 페미니스트들은 뭐라고 할지 모르겠다. 혹시 그 유명한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을 감상하고 싶다면 1977년 아바도가 지휘한 판본을 권한다. 거기 카르멘 역으로 스페인 가수 계보의 한 획을 그은 테레사 베르간자가 나온다. 지금은 주로 영상물로 보지만 처음 LP를 구해 들었을 때 진짜로 그 음성에서 성충동 비슷한 자극을 찌릿찌릿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참 아름다운 외모! 그런데 섹시한 음색의 화신인 줄 알고 베르간자의 또 다른 음반을 듣는다면 당장 ‘어이쿠’ 한다. 그토록 거룩함이라니! 거룩한 베르간자의 정점으로는 기타리스트 나르시소 예페스와 함께 취입한 ‘칸시온 에스파뇰라’를 들 수 있다. 아예 색정의 불덩어리가 활활 느껴지는 여가수로 헝가리 출신의 에바 마르톤이 떠오른다. 잡아먹을 것 같은 음탕한 눈매와 입술, 그리고 어마어마한 성량에 매혹되면서 ‘참 저 여자 인생 쉽지 않겠다’ 했는데 나중에 전기를 읽어보니 의사 남편과 일편단심 민들레였다. 이상한 실망감이 들었다.

목소리의 유형을 꾀꼬리 같은 미성과 산속 옹달샘의 순수로 나눌 수도 있다. 꾀꼬리 쪽은 꽤 많은데 그중 정점으로 우리나라에도 여러 번 찾아온 캐슬린 배틀을 꼽아야 할 것 같다. 워낙 개성이 강한 음색이어서 어떤 목소리와 섞여도 그녀만이 도드라진다. 한 시대를 점하는 위대한 명인 반열에 굳건히 오를 것이 틀림없을 만큼 대인기였다. 그런데 웬일일까. 절정의 활약상을 보여주던 1990년대 중반 ‘프로답지 못한 행동’이 문제되면서 메트로폴리탄 무대에서 쫓겨났고 이후 퇴조의 길을 걸었다. 문제의 행실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배틀은 언제나 사랑스럽다. 그녀는 좀 못돼도 좋을 만큼 아름답고 도발적이다.

옹달샘 물의 순수파 목소리 중에는 단연 우뚝하게 솟는 존재가 있다. 감자같이 생긴, 어쩐지 성악 레슨 따위는 전혀 받지 않았을 것 같은, 마리아 칼라스 이전에 또 다른 의미의 여왕인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와 단짝을 이루어 향단이처럼 활동한 이름가르트 제프리트가 그렇다. 역시 예술가곡 쪽이 탁월한데 가령 파스밴더가 ‘여인의 사랑과 생애’를 부르면 ‘한이 많아서…’라는 탄식이 나오는 반면 제프리트가 부르면 ‘차카게 살자’가 저절로 떠오른다. 그녀는 절대로 착해야만 한다.

목소리로 사랑한 나의 연인들을 거론하고자 첫 마디를 여는 데 지면이 다 차버렸다. 세상은 넓고 사랑할 여인은 성질나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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