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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의 푸른 안료, 이베리아의 역사를 물들이다

1 에스파냐 광장에 있는 주요 도시들의 아줄레주. 사진은 바르셀로나 것이다. 이러한 아줄레주가 56개가 이어진다. 2, 3 정교한 아줄레주 문양으로 장식된 알함브라 나자리스궁전의 내부 모습. 타일 위 조각으로 새겨진 글귀는 ‘오직 알라만이 3 영원하다’는 의미다.
스페인 하면 우선 투우, 타파스(소량의 전채요리), 가우디, 플라멩코, 달리와 피카소, 돈키호테 등이 떠오른다. 물론 레알 마드리드나 FC 바르셀로나 같은 축구클럽부터 연상할 수도 있겠다.

스페인의 색채타일 아줄레주 이야기

그러나 스페인을 전혀 새롭게 보는 방법이 있다. 타일(세라믹) 아트를 통해 이베리아 반도를 구경하는 것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는 자기로 만든 색채 타일을 ‘아줄레주(Azolejo)’라 부른다. 아줄레주는 왕실부터 개인까지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람들 일상에 매우 밀착돼 있다.

그 시작은 페르시아의 산화코발트 안료다. 페르시아에서는 13세기 이전부터 백토에 푸른색 산화코발트 안료를 칠한 도기들을 제작하고 있었다. 그 안료가 회청(回靑) 혹은 회회청(回回靑)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에 들어가 ‘청화’가 된다. 그리고 1457년(세조 3년) 명나라에서 회청이 수입되면서 조선에서도 제작이 시작된다. 한편 페르시아로부터 회청 안료와 도자 제조법을 받아들인 무어인들은 500년 이상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면서 아줄레주를 특유의 문화로 정착시켰다. 따라서 우리의 청화백자, 중국의 청화자기와 스페인의 아줄레주는 이복형제인 셈이다.

다만 동아시아처럼 고급 자기를 만들 수 없었고 무더위라는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그들은 자기보다 타일로 방향을 틀었다. 또 회청이 너무 비싸 자기 제작에 소량밖에 사용하지 못한 한국이나 중국과 달리, 그들은 코발트를 안료로 쓴 타일을 대량으로 제작해 왕궁을 치장했다. 대표적인 것이 기타의 거장 프란시스코 타레가로 하여금 ‘알함브라의 추억’이란 아름다운 선율을 낳게 만든 그라나다(Granada)의 알함브라(Alhambra) 궁전이다.

코르도바와 세비야가 가톨릭 군대에 넘어가고 나서도 200년도 더 넘게 존속했던 알함브라는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뉜다. 무어인을 내쫓은 다음에 지은 카를로스 5세의 르네상스 양식 궁전, 견고한 요새 알카자바(Alcazaba), 나자리스 궁전(Nazaries Palace), 헤네라리페(Generalife) 정원, 왕궁 정원 등이다. 이중 아줄레주의 걸작은 나자리스 궁전에 있다. 세 곳으로 구성된 나자리스 궁전은 어느 곳을 가든 정교하고 아름다운 타일과 조각을 볼 수 있다. 코란은 사람과 동물의 신격화를 금지하고 있으므로, 천장부터 벽은 오로지 문양과 글자로만 치장돼 있다. 이 궁전 벽에서 눈에 띄는 것은 ‘오직 알라만이 영원하다’는 글귀다. 9000 번이나 반복해서 새겨져 있다.

하지만 나자리스 궁전의 아줄레주는 건물과 건물 사이 파티오(中庭)와 외벽에 갇혀 있어 뭔가 답답한 느낌을 준다. 알함브라보다 더 화려하고 현란한 왕궁 아줄레주의 극치는 세비야(Seville) 알카사르(Alcazar)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알카사르가 흥미로운 점은 이슬람과 가톨릭 양식이 결합된 ‘혼혈’이라는 점이다. 알함브라의 건축 양식과 아줄레주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한편 여기에 화려한 색채감을 더했다. 8세기부터 무어인 왕조에 의해 세워진 궁전을 역대 왕들이 개축을 거듭했고, 1248년 레콩기스타(국토회복 운동)의 성공으로 세비야에 가톨릭 왕국이 들어서면서 고딕 양식이 가미되었다가 14세기 들어서 페드로 1세에 의해 대대적으로 개축됐다. 페드로 1세는 이슬람풍의 무데하르(Mudejar) 양식을 좋아했다. 그래서 당시 이베리아 반도에서 유일하게 버티고 있던 그라나다의 무슬림 건축가와 장인을 초청해 왕궁을 장식하게 했다. 야외 정원의 벤치나 난간·계단·화단 등에까지 화려한 아줄레주를 가미해 미학성을 높였다.

사실 이슬람에서 코발트블루가 빚어내는 청색은 고귀함과 고상함의 표상이다. 알라를 모시는 모스크나 왕궁의 중요한 문, 내부에서도 가장 중요한 메카 쪽의 벽면, 하늘과 만나는 돔 부분은 청색을 집중적으로 사용했다. 건조하고 뜨거운 대지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게 파란색은 오아시스를 의미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어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쫓겨나면서 그러한 원칙이 깨진 것이다.

푸른색에서 벗어나 황·적·백·녹의 다양한 색채가 극대화되어 나타나는 곳은 에스파냐 광장이다. 1929년 이베리아-아메리카 박람회를 위해 건축가 아니발 곤살레스(
)가 만든 반달 모양의 거대한 이 광장은 건물 정면, 다리와 아치, 분수, 벤치 등 보이는 곳곳을 화려한 색감의 아줄레주로 장식했다. 특히 광장을 에워싸듯 56개 주요 도시의 문양과 특징을 아줄레주로 나타내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마치 옛날 대항해시대를 주도했던 에스파냐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고 있는 듯하다.

일반 시민들의 삶을 담아낸 아줄레주 역시 눈길을 끈다. 과달키비르(Guadalquivir) 강을 넘어 트리아나(Triana) 지구로 가면 다양한 모습의 아줄레주로 형상화된 교회나 성당의 예수와 성모 마리아상 등을 볼 수 있다.

특히 한 사람의 생애를 묘사해 집의 외벽에 걸어 놓은 아줄레주는 무척 흥미롭다. 위인이나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이 집에 누가 살았으며, 무슨 일을 했는지 등등을 마치 묘비명처럼 시시콜콜하게 적어놓은 아줄레주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트리아나의 골목길 전체가 커다란 박물관 같은 느낌이다.
사실 트리아나는 옛날부터 아줄레주 제작의 본거지였다. 그래서 지금도 각종 아줄레주를 제작하는 공방이 10여 곳 넘게 있다.

이곳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또 한곳은 카스티야(Castilla) 거리의 식당 ‘카사 쿠에스타(Casa Cuesta)’다. 역시 인상적인 아줄레주가 있는 이 식당이 문을 연 것은 1888년. 아름다운 아줄레주 아래 저렴하고 맛있는 타파스를 안주 삼아 샹그리아를 마시는 재미는 환상적인 여름밤의 낭만을 만들어준다.




조용준씨는‘시사저널’ 등 16년간의 기자생활을 바탕으로 창조적이고 인문학적인 ‘컬처 투어’를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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