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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종암동 하숙 동문’ 홍판표·박재완·장충기




기타 치는 판표 1970년대 초반 고려대에 다니던 시절의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 서울 성북구 종암동 하숙집 쪽마루에 앉아 통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홍준표 대표실 제공]

1973년의 일이다. 고려대 법대 72학번(72년 입학) ‘홍판표’(오늘의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고학생이었다. 일주일 내내 과외수업을 해야 등록금을 댈 수 있었다. 저녁마다 아르바이트에 지친 판표는 터벅터벅 돌아와 작은 하숙방에 몸을 뉘었다.

 하숙집은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 있었다. 노부부가 주인인 이 하숙집의 하숙생은 8명이었고, 판표를 빼면 모두 서울대 상과대학생들이었다. 서울대 캠퍼스가 단과대학별로 나누어져 있었고, 그중 상과대는 고려대 근처 종암동에 있던 시절이다.

 학교는 달랐지만 판표는 다른 하숙생들과 잘 지냈다. 1년여를 같이 산 서울대생 박재완(경제학과 73학번·현 기획재정부 장관)과도 그랬다. 55년생이지만 1월생인 재완은 54년생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고, 그래서 처음엔 호적이 54년생으로 돼있는 판표도 친구로 알았다. 그런 재완이 말을 놓으려 하자 판표가 펄쩍 뛰었다. “내가 호적이 잘못돼 그렇지 53년생이야!” 이후 재완은 판표를 ‘형’이라고 불렀다는 게 홍 대표의 주장이다.

 판표의 하숙집 친구 중엔 서울대 무역학과 72학번 장충기(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사장)도 있었다. 그는 하숙집에서 ‘부산고 천재’로 통했다는 게 홍 대표의 회고다. “충기는 부산의 명문 부산고에서 고2 때까지 반에서 48등을 하다 고3 때 ‘서울대 상대에 가야겠다’고 선언하더니 몇 개월 만에 성적을 최상위권으로 올렸고, 정말로 서울대 상대에 갔다. 당시 충기는 정말 머리가 비상했다”고 홍 대표는 말한다.







 경제학도인 충기는 법학도인 판표에게 “학문 중의 학문은 경제학”이라며 경제학을 가르치려 했다고 한다. 판표와 충기는 또 잡학다식을 뽐내기 위해 퀴즈시합을 하기도 했는데 충기가 이긴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홍 대표는 1980년대 초반 ‘판표(判杓)’에서 ‘준표(準杓)’로 이름을 바꿨다. 종암동 하숙생 시절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초임 검사 시절이다. 그의 첫 근무지였던 청주지검에서 친하게 지내던 청주지원 판사가 개명(改名)을 권유했다. 이 판사는 개명허가권을 가지고 있던 지원장의 허락까지 받아줬다. 그 판사가 지금 한나라당 정책위를 이끌고 있는 이주영 의원이다. 이주영 의원은 당시 "칼‘도(刀)’자가 들어간 이름은 안 좋다”면서 개명을 권유했다고 한다.

 재완은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국정기획수석→고용노동부 장관→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승승장구했다. 충기는 삼성그룹의 핵심인사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기업인이 됐다. 종암동의 허름한 하숙집이 정·관·재계의 기둥들을 한꺼번에 배출한 ‘산실’이 된 셈이다.

 하숙집을 떠나면서 검사·정치인과 공무원·대학교수로 각자의 길을 걸어온 홍 대표와 박 장관이 다시 조우한 건 2004년 총선 직후다. 박 장관이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당선돼 국회에 들어오면서 당시 같은 당 소속으로 3선 의원이 된 홍 대표와 30년 만에 만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박 장관은 홍 대표를 바로 알아보지는 못했다 한다. ‘홍준표=홍판표’라는 걸 아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홍 대표와 장 사장의 재회도 2000년대 초반 이뤄졌다. 장 사장이 먼저 전화를 걸어 “홍준표 의원님이시죠”라고 물었을 뿐인데, 홍 대표는 목소리를 알아보고 “너 충기구나!”라며 반겼다고 한다. 이들과 함께 청춘을 보낸 ‘하숙 동문’ 중에는 STX팬오션 서충일 부사장, 정해문 주태국대사 등도 있다. 홍 대표는 이들에 대해서도 “서로 연애상담을 해주던 사이로 참 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도, 그 친구들도 그저 가난한 대학생들이었는데, 세월이 흘러 모두 한 자리씩 하고 있는 걸 보면 참 신기하다. 이게 성장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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