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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서 여덟 손가락 잃었다 … 이번엔 패러글라이더로 날아간다





산악인 박정헌씨 내달부터 히말라야 6000㎞ 종주



등반 장비를 점검하던 중 기자와 인터뷰하며 즐거워하는 박정헌 대장. [서동일 인턴기자]



산을 떠날 수 없는 운명이 있다. 촐라체에서 살아남은 사나이, 박정헌(40) 대장이다. 그는 한국인 최초 안나푸르나 등정 기록을 세우며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은 알파인 등반 전문가다. 2005년 히말라야의 난공불락인 촐라체(6440m) 북벽 등반에 성공한 후 하산 길에 큰 사고를 당하면서 후유증으로 손가락 8개 두 번째 마디를 잘라냈다. 얼음 틈 사이에 빠진 후배 최강식(32)씨를 구하기 위해 함께 묶고 있던 끈을 온몸에 휘감으면서 갈비뼈가 부러지고, 손가락에 동상을 입었다. 최씨도 동상을 입어 손가락과 발가락을 잘라냈다.



 그로부터 6년, 세월은 흘렀지만 박 대장의 마음은 여전히 산에 가 있다. 패러글라이더를 타고 총 길이 6000㎞의 히말라야를 종주하겠다는 계획을 갖고서다. 지난 18일, 경기도 용인의 한 패러글라이더 공장에서 장비를 시험하고 있는 박 대장을 만났다.



 -왜 또 히말라야냐?



 “히말라야는 인류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아름다움이다. 나는 산만큼 아름다운 곳을 보지 못했다. 이곳은 수많은 내 친구가 죽은 곳이고, 나도 죽을 뻔했던 곳이다. 그럼에도 정상에 오르면 늘 산이 먼저 다음 목표를 알려준다. 이번 목표는 히말라야를 날아서 가는 것이다.”











 박 대장이 패러글라이딩 등반의 묘미를 안 것은 1996년이다. 처음으로 글라이딩을 해서 티베트의 초유봉(8201m)을 하산했다. 그때 하늘에서 바라본 히말라야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는 “걸어서는 다시 가고 싶지 않을 지경이었다”고 했다.



 2005년 손가락을 잃으면서 등반가로서 생명도 함께 잃었다. 그의 전문인 거벽 등반은 두 손, 두 발을 같이 사용해 벽을 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포기했을 때, 패러글라이딩이 떠올랐다. 일반 등산로로 천천히 올라 패러글라이더를 타고 날아 하산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는 “촐라체 사고는 인생의 끝이 아닌 제 2의 인생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다”고 했다. 손가락 대신 그에게 날개가 달린 셈이었다.



 박 대장은 3년 전부터 함께 갈 원정대를 모집했다. 패러글라이딩 국가대표 출신인 홍필표(44)씨, 항공촬영 전문가인 함영민(39)씨가 합류했다. 원정대는 해발 3840m 파키스탄 힌트쿠시 자니패스에서 출발해 K2·낭가파르바트·안나푸르나·에베레스트·칸첸중가 등의 고봉을 넘어 부탄의 랑푸어까지 6개월여에 걸친 장정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물론 손 때문에 여전히 힘든 점도 많다. 방향을 조절하는 브레이크 라인을 컨트롤하는 것이 쉽지 않다. 또 긴급상황에서 낙하산이나 보조선을 던져야 하는데 그것도 세밀한 동작을 할 수 없어 어렵다. 하지만 박 대장은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라며 “주변에서도 이 손가락으로 하도 바삐 움직이니까 도와주려고도 안 한다”고 했다.



 그에게 촐라체에서 손가락을 잃지 않았으면 어땠을까라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아마 탈레이시가르 북벽 어딘가를 붙들고 있었을 것이다. 아, 아니 더 어려운 곳을 등반하다가 죽었을지도 모른다. 손가락을 잃었기 때문에 지금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다.”



 원정대는 2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발대식을 갖고 8월 초 히말라야로 떠난다. 채윤경 기자



서동일 인턴기자(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알파인 등반=초경량 등반. 2~3명의 소규모 등반대가 셰르파와 산소통 도움 없이 베이스 캠프를 차리지 않고 속성으로 등정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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