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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파이오니어] 민족정체성찾기 50년 ⑤ 고건축 보수 전문가 윤홍로





“대목장들 활동력 왕성한 지금, 황룡사 9층목탑 복원할 때”



서울 방배동 한국건축문화연구소에서 윤홍로 위원이 전통 건축 모형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는 “썩은 부재를 도려내는 것은 의사가 환자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과 같다. 인체를 치료하면 수술자국이 남듯, 문화재 보수 흔적이 남는 것도 얼마간은 각오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윤홍로(72) 명지대 겸임교수는 고건축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홍익대 건축공학과에 재학 중이던 1966년 국립종합박물관 보완 설계에 참여하면서부터 지금까지, 45년간 고건축 복원·정비 현장을 지켰다. 그가 관여하지 않은 고건축물을 찾기 힘들 정도다. 수리하고 보존하는 일이란 새로운 건물을 번듯하게 짓는 것만큼 빛나지 않는다. 그러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유산이 든든히 서 있는 데엔 그의 보이지 않는 노고가 있었을 것이다.



-고건축 복원·정비는 일본에서 배우셨죠.



 “1969년 초대 국립문화재연구소장으로 부임한 김정기 선생 덕분에 나라문화재연구소에서 배웠죠. 어떻게 문화재를 수리하는지 봤더니, 썩은 기둥을 갈아내지 않고 부식된 부분만 도려내 채워 넣더라고요. 우리는 70년대까지도 웬만큼 썩은 건 그냥 갈아냈거든요. 그런데 산림녹화로 나무를 못 베게 할 때라 수입 나무를 썼어요. 더운 지방에서 자란 수입목은 강도가 떨어지고 흰개미 같은 해충도 딸려 들어와 문제가 됐죠. 우리하고 많이 다르구나 싶었어요.”



 -71년 무령왕릉 최초 발견자로 유명하신데요.



 “무령왕릉 인근 배수로 공사 현장감독으로 있었어요. 그런데 뭔가가 나오길래 중지하고 흙을 살살 걷어봤더니 전돌(검은벽돌)이 나오더군요. 김원룡(1922~93) 전 국립박물관장 등 몇 분이 조사단을 꾸려 내려오셨어요. 김원룡 선생이 연대를 확정하지 못하고 어물어물 하시길래 제가 끼고 다니던 『동양연표』를 펼쳐 ‘혹시 이런 거 아닙니까?’ 했어요. 그랬더니 ‘그래, 맞아’ 하시더군요. 그렇게 무령왕릉 발굴이 시작됐죠.”



 -무령왕릉은 졸속 발굴의 대명사이기도 한데요. 단 하루 만에 발굴을 마쳤죠.



 “김원룡 선생이 몇 차례 잘못됐다고 밝히셨으니까 더 이상 얘기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무령왕릉에 아쉬운 점이라면 오히려 인근에 아파트·경찰서가 들어오며 개발이 된 거예요. 문화재 보존의 가장 기본은 주변 경관 보존이에요. 문화재청은 문화재 보존관리를 맡고, 국토해양부가 문화재 주변 경관에 대한 제도나 법을 만들었어야 해요. 런던은 도시 경관 전체를 관리하잖아요.”



 -지난 45년 동안 아쉬운 점이 있다면요.



 “박정희 대통령이 ‘민족문화 창달’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아산 현충사 성역화 사업’을 지시했죠. 원래 호화로운 곳이 아니라 한적한 시골이었거든요. 산 밑에 조그마한 사당이 있었고, 은행나무 옆에 작은 집이 있었죠. 그게 다 대형화 됐는데 과연 잘 된 건가 싶어요. 일본 소나무라 해서 요즘 문제가 되는 금송도 그때 갖다 심었어요.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앞에 있던 금송 3주를 하나는 현충사, 하나는 칠백의총, 또 하나는 도산서원에 옮겨 심었죠. 그땐 전통 조경이 연구되지 못했던 시절이에요. 그냥 꽃이랑 나무 심고 보기 좋게 한다는 정도였죠. 도산서원은 보물로 지정됐던 토석담을 대통령 지시로 헐고 궁궐의 사괴석(四塊石·벽이나 담을 쌓는 데 쓰는 육면체의 돌) 담으로 개조했어요. 지금의 국립민속박물관도 언젠간 경복궁 바깥으로 옮겨야 할 건물이죠. 그땐 경복궁이 문화재로 지정되지도 않았던 때라 궁궐 경관을 해치고 전각을 헐어가며 건물을 지었죠.”



 -가장 최근에 관여하신 게 숭례문인데, 전통 방식으로 복구하도록 하셨죠.



 “국보 1호에서조차 기계를 쓴다면 우리나라 건축 기능은 끝납니다. 옛날엔 석산에서 사람 손으로 돌을 떼어왔는데 요샌 기계로 자르죠. 표면이 유리알처럼 깨끗해 옛날 같은 질감이 안 나요. 장인들이 편리한 것만 찾다가 자기 스스로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거죠. 인력으로 하나 기계로 하나 결과는 비슷할지 몰라도 기능이나 기법이 사라진다는 점은 큰 차이입니다. 나아가 드잡이공(건축 기초를 쌓거나 해체할 때 돌을 들고 나는 장인)이나 미장공 같은 소외된 분야도 문화재로 지정해야 해요.”



 -문화재를 복원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불국사나 안압지도 70년대에 복원했잖아요. 경복궁도 95년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고 흥례문과 광화문을 원위치에 복원한 거죠. 과연 이런 일들을 하지 않고 잔디만 심어놨다면 일반인들이 보이지 않는 옛 문화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요. 복원이란 건 그냥 집을 지어 모형을 만드는 게 아니에요. 옛 건축의 맥을 장인들이 찾아서 이어갈 수 있고, 다음 세대에 넘겨줄 수 있어요. 우리 고건축이 과거 어느 때보다 활성화돼 있어요. 대목장들의 활동력도 지금이 가장 좋아요. 우리 역사상 가장 훌륭했던 건축인 황룡사 9층 목탑을 복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점이라고 봐요. 25년 전쯤 복구 계획이 있었는데 반대에 부딪혀 못했죠. 동양 최고의 건축물이라 해도 손색없는 황룡사 목탑을 우리 대에 찾을 수 있다면 후세대에게 굉장한 자긍심을 줄 수 있을 겁니다. 관광객을 유치할수 있는 건 물론이고요.”



글=이경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윤홍로=문화재관리국(문화재청의 전신) 보수과장, 독립기념관 건설국장 역임. 문화재청 상근전문위원(1989~2003), 문화재위원(건축분과·민속) 역임. 한국전통건축연구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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