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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만리장성









신의주 맞은편 중국 단둥(丹東)시 압록강가에는 ‘만리장성의 동쪽 끝 호산성(虎山城)’이란 입간판들이 서 있다. 만리장성이 압록강까지 진출한 것이다. 북한은 지금 중국에 대해 항의할 처지가 못 되니 우리가 손 놓고 있으면 만리장성은 황해도 수안까지 내려올 것이다. 일제 식민사학자인 이나바 이와기치(稻葉岩吉)는 『진나라 장성의 동쪽 끝 및 왕험성 고(秦長城東端及王險城考)』라는 논고에서 “진(秦)나라 장성의 동쪽 끝은 지금의 조선 황해도 수안의 경계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진시황 때 쌓은 만리장성이 황해도 수안까지 내려왔다는 허무맹랑한 이 주장에 따라 현재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발행한 『중국역사지도집』은 만리장성을 황해도까지 그려놓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일제 식민사학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의 주류사학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진(秦) 장성의 동쪽 끝이 어디인지는 사마천이 『사기(史記)』 『몽념(蒙恬)』 열전에서 분명히 밝혀 놓았다. 즉 “장성을 쌓는데 지형에 따라 험난한 곳을 이용해 성채를 쌓았으며 임조(臨洮:감숙성)에서 시작해 요동(遼東)까지 만리에 이르렀다(築長城,因地形,用制險塞,起臨洮,至遼

東,延袤萬餘里)”는 구절이다. 황해도가 아니라 요동이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라는 기록인데, 현재의 요동은 요하(遼河)가 가로지르는 중국 요녕성 요양(遙陽)시 동쪽 만주를 뜻한다.



 그러나 진·한(秦·漢) 시대의 요동은 지금보다 약 400여㎞ 서쪽이었다. 중국 고대의 지리서인 『수경주(水經注)』는 “진시황이 태자 부소와 몽념에게 명하여 장성을 쌓게 하였는데, 임조에서 시작해 갈석에 이르렀다(起自臨洮,至於碣石)”고 전하고 있다. 고대의 요동은 지금의 하북성 창려현에 있는 갈석산 지역이라는 뜻이다. 『사기』 『진시황본기』는 2세 황제 때 신하들이 진시황의 송덕비를 세우기 위해 갈석산에 다녀온 것을 ‘요동에서 돌아왔다(到碣石……遂至遼東而還)’고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의 고대 사서들은 한사군 낙랑군의 위치를 ‘그 땅은 요동에 있다(其地在遼東)’고 일관되게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 북부가 아니라 갈석산 지역이 한사군 낙랑군 지역이었다. 백 보를 양보해 현재 요하(遼河) 동쪽이 요동이라도 요양시 동쪽 만주가 만리장성의 끝이지 황해도 수안이 될 수는 없다. 이 문제는 과거사가 아니라 동북아 정세에 따라 북한 강역 전체의 소유권 문제로 비화할 수 있기에 중차대한 강역 문제로 다루어야 할 사안이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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