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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작가가 안마시술소로 간 까닭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의 ‘나혜석 거리’에는 수십 개의 안마 시술소가 있다. 나혜석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 화가로 이혼과 배신의 상처를 껴안고 쓸쓸하게 살다 세상을 등졌다. 그녀의 상처를 추모하는 동상이 있는 이곳은 수원의 최대 환락가로 꼽힌다.

지난달 18일 예술가 11명이 한꺼번에 이 지역의 한 안마시술소에 입주했다. 여류작가 4명도 끼어있다. 이들이 안마 시술소에 들어간 까닭은 뭘까.

이들이 입주한 안마시술소에는 ‘인계시장’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나름의 아픔을 갖고 있다.

한송이(28) 작가는 유리공예가이자 플로어리스트, 네일아트 전문가다. 그녀가 가진 상처는 외모에서 비롯됐다. 취업에 실패하고, 작품의뢰가 들어오지 않는 것이 모두 자신의 뚱뚱한 외모 탓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녀는 미국으로 떠났다. 실력으로만 평가해주는 곳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곳에서 5년간 활동했다. 작품마다 수백만원을 받는 등 수입도 좋았다. 지난 2월 한국에 돌아온 그녀는 곧바로 인계시장에 합류했다. 인계시장에 들어온 뒤 독한 마음을 먹고 35㎏을 줄였다. 현재 그녀의 몸무게는 65㎏이다. 그녀는 “이 곳에서 자신감을 얻었다”며 “처음엔 역겨운 냄새가 날 것 같은 편견이 들었지만 이곳만큼 예술가들이 활동하기 좋은 공간이 없다”며 밝게 웃었다.












목공예를 하는 천원진(38) 작가는 지난해 폐질환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을 모아 작품을 만들고 있다. 생전에 아버지가 사용하던 서랍장은 가방이 됐고, 밥상은 의자로 변신했다. 그는 “이곳에서 아버지를 생각하며 재활용 작업을 하니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안마는 퇴폐적 의미의 손길이 아니라 내면의 상처를 보듬는 마사지”라며 “이곳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공간이다”라고 말했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이곳에 들어온 작가도 많다. ‘생계형 작가들’ 입장에선 마음껏 작업할 수 있는 이런 공간이 더없이 고마울 뿐이다. 임송희(36) 작가는 4년 동안 독일 본에서 공부했지만 주머니사정 때문에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귀국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작품 활동 대신 바리스타와 바텐더로 일했다. 그녀는 “이곳에 들어온 것은 행운이었다”며 “안마시술소 구조라 방마다 화장실이 있어 더 편하다”고 말했다. 섬유 작품을 하는 김도영(27) 작가도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중간에 학업을 포기했다. 어렵게 구한 작업실은 재개발되면서 쫓겨나기도 했다. 할 수 없이 무대세트 설치 등 남자도 어려운 험한 일을 하며 작업을 계속해왔다. 그녀는 “이제 걱정 없이 편하게 작업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동양화 그래피티’를 하는 박영균(36) 작가는 희귀성 난치병인 크론병을 앓고 있다. 그는 “전통적인 동양화를 서양미술로 재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이곳에서 재활 겸 작업활동을 하고 있고 다른 작가들이 있어 의지된다”고 말했다.







남성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퇴폐업소로 인식되기도 했던 안마시술소가 상처받은 작가들의 재활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안마시술소에 작가들이 입주한 이유다.

경기문화재단은 지난해 말 예술가를 위한 거주 프로그램을 공모했다. 공공예술 단체인 ‘무늬만커뮤니티’의 김월식(42) 감독 등이 낸 인계시장 프로그램이 당선됐다. 이 프로그램에 4000만원이 지원됐다. 인계시장은 안마시술소 건물의 4~5층을 쓴다. 방 11개가 있는 4층은 전시관, 작업실, 카페로 꾸몄다. 방 10개가 있는 5층은 거주공간과 식당으로 바꿨다.

관람객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미국인 자마(Jamar·38) 씨는 “독특하고 신기하다”며 “세련된 갤러리보다 더 한국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누구나 인계 시장을 방문해 작가들의 작업공간을 구경할 수 있다. 토요일에는 나혜석 거리에서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작품 벼룩시장이 열린다.

심영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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