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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유류세 인하 ≠ 기름값 인하




김교식
조세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질긴 장마 탓에 농산물 값이 다락같이 올랐다. 외식비도 내려올 줄 모른다. 여기에 정유사들의 기름값 할인 기간이 이달 초 종료되면서 휘발유값도 2000원대에 고착된 모양새다. 국민들이 일상생활 곳곳에서 한숨을 쉴 법하다. 더구나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 전에 태풍이 예고돼 있어 농산물 값이 추석 때까지 고공행진을 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몸이 단 정부는 “기름값이라도 잡자”며 업계에 사정도 하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고, 적정 가격을 산출해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유소 입구 가격표는 요지부동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치권과 국민의 눈길이 정부로 향하고 있다. 유류세라도 내려 일단 숨통을 트고 보자는 것이다. 50여 일밖에 남지 않은 추석 때 국민들이 2000원대 기름을 채우고 고향에 가는 모습은 정치권에 큰 부담이다. 결국 기름값 관련 대형 공약으로 불만을 해소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것이다. 그것도 ‘찔끔’이 아니라 ‘무상급식’ ‘반값등록금’처럼 ‘유류세 왕창 인하’로 말이다. 복지논쟁을 거치며 ‘선수 쳐야 이기고 통이 커야 이긴다’는 걸 학습했기 때문이다. 국민 역시 세금 깎아준다는 데 반대할 리 없다.

 그러나 유류세는 급식·등록금과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먼저 유류세 인하는 혜택이 소비자에게 귀착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2008년에 수송용 유류세율을 10% 인하했으나 가격은 찔끔 내렸다가 일주일여 만에 원위치됐다. 계속 오르는 국제원유가격이 흡수해 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세수는 10개월간 1조4000억원이나 줄었다. 줄어든 세수를 다른 분야에서 채울 수밖에 없으니 기름 소비자는 혜택도 보지 못하고 세금만 더 낸 셈이다.

 둘째, 국제원유가격의 고공행진은 구조적인 문제다. 유가상승은 세계경제의 회복과 함께 중국·인도 등 신흥 경제대국의 지속적인 수요 증가, 산유국의 소극적인 증산 등이 맞물려 발생하고 있다. 더구나 이런 구조적 요인이 당분간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제유가 상승에 세율 인하보다는 에너지 절약이나 대체 에너지 개발로 대응해야 하는 이유다.

 셋째,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은 탄소세를 도입하는 등 오히려 유류세를 강화하는 추세다. 휘발유를 기준으로 소비자가격에서 유류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이 48%이고 OECD 평균은 53%다(주별로 세금이 다른 미국 제외). 이는 통계 인용이 가능한 OECD 23개국 가운데 뉴질랜드·캐나다·일본을 빼고는 모두 우리보다 유류세 비중이 높다.

 우리나라는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다. 반면에 자동차는 가파르게 늘고, 승용차 가운데 대형 승용차의 비중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런 나라에서 유가상승에 유류세 인하로 대응한다고? 이는 재정수입만 축내면서 세금인하 효과는 수일 내로 증발해 바라던 물가안정과는 무관한 대책이다. 미래는 기름을 펑펑 써도 되는 ‘풍요한’ 세상이 아니라 에너지만큼은 절제와 불편을 감내해야 하는 세상일 것이다. 지금은 시장 원리를 통해 수요를 억제하고, 생계형 차량에 한해 선별적인 지원책을 검토할 때다. 에너지절약을 불, 석유, 원자력, 신재생 에너지에 이은 ‘제5의 에너지(Fifth Fuel)’라고 부른다. 대한민국이 제5의 에너지 분야를 선도하는 국가가 되는 것을 주요 국정과제로 삼으면 어떨까.

김교식 조세연구원 초빙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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