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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나는 발자국을 짓밟으며 미래로 간다

나는 발자국을 짓밟으며 미래로 간다 - 심보선(1970~ )


가장 먼저 등 돌리데

가장 그리운 것들

기억을 향해 총을 겨눴지

꼼짝 마라, 잡것들아

살고 싶으면 차라리 죽어라

역겨워, 지겨워, 왜

영원하다는 것들은 다 그 모양이야

십장생 중에 아홉 마릴 잡아 죽였어

남은 한 마리가 뭔지 기억이 안 나

옛 애인이던가, 전처던가

그미들 옆에 쪼르르 난 내 발자국이던가

가장 먼저 사라지데

가장 사랑하던 것들

추억을 뒤집으니 그냥 시커멓데


나는 갈수록 추해진다

나쁜 냄새가 난다

발자국을 짓밟으며 미래로 간다

강변 살자, 부르튼 발들아


그리움이란 누군가의 뒤에 서는 것이다. 누군가의 등에 대고 “꼼짝 마라” 외치는 것이다. 그가 아주 가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조준선 위에 그 사람을 올려두고 노려보는 것이다. 영원하다고 믿었던 것들은 다 사라졌다. 그대와 나 사이에 십장생이 뛰놀았다고? 다 잡아먹고 한 마리만 남았는데, 그마저 실종되고 말았다. 추억은 거울과 같아서 거울 뒤로 돌아가면 그냥 캄캄절벽이었지. “나는 갈수록 추해진다.” 안 되겠다. 세수하고 이부터 닦자. 정신 차리고 미래로 가자. 내게도 “강변 살자”고 청원할 사람은 있겠지. 그런데 어, 발자국이 나 있네? 누군가 먼저 밟고 간 흔적이 있다. 나는 여전히 그의 등을 보아야 한다. <권혁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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