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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한나라당에 할 말 있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윤리교육과


한나라당이 새 지도부를 뽑았다. 지도부가 젊어진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그렇다면 쇄신다운 쇄신도 있는 것인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고 했는데, 부대가 새 부대인 것은 맞을는지 모르나 그 안에 새 술이 담겼는지는 의문이다.

 원래 이번 지도부 개편은 지난해 지방선거와 올해 재·보선에서의 참담한 패배가 빌미가 됐다. 민심이반이 치열한 반성의 소재가 되는 것은 공당이라면 당연하다. 그런데 반성의 철학과 분위기가 이상하다. 한나라당이 그동안 패배한 것이 보수의 기조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며 그래서 과감히 보수의 색깔을 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다. 과연 한나라당이 보수의 기조를 굳건히 유지해온 당인가. 재야 보수는 한나라당을 ‘조강지처(糟糠之妻)’처럼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들은 급할 때면 보수에게 표를 달라고 애원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계륵(鷄肋)처럼 취급했다. 이번 18대 국회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한나라당이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한 일이 무엇인가. 보수의 원칙을 담은 법안을 통과시켰는가. 아니면 보수 철학의 깊이와 넓이를 다졌는가.

 지금 한나라당의 문제는 이렇다 할 ‘페르소나(persona)’가 없다는 것이다. 거대한 정치공룡에 불과할 뿐 지킬 가치도, 지향할 정책도 없다. 그러다 보니 천안함 규탄 대북결의안도 3개월이 되어서야 늑장 통과시켰고 북한 주민을 어루만지는 북한인권 법안도 지지부진이다. 그러면서도 재야 보수는 집토끼처럼 생각한다. 사실 ‘집토끼론’은 재야 보수에 대한 모욕이다. 재야 보수주의자들은 권력의 곁불을 쪼이면서 출세할 생각은 없다. 또 보수의 가치를 팔아 가문의 영광을 꾀한다든지 인생역전을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자유와 평등의 기초 위에 세워진 이 나라가 정말로 자손만대에 이르기까지 번영하는 천년의 공화국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데만 노심초사할 뿐이다. 또 “내가 태어난 이 나라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대를 이어 많아지기만을 염원하고 있다. 뉴욕을 사랑하는 뉴요커도 많고 파리를 사랑하는 파리지앵도 많은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 번영된 나라에 태어난 것을 후회하는 젊은이가 꽤 있다. 또 헌법정신이나 건국정신을 부끄러워하는 종북(從北)주의자도 수두룩하다.

 김정은의 3대 세습을 보면서 꼭 집어 세습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영국의 엘리자베스 가문이나 부시 부자의 집권과 비슷한 것처럼 말하는 종북주의자들의 궤변을 보라. 전제국가를 전제국가라고 부르지 못하는 그들이야말로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던 홍길동과 짝퉁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이 나라의 정통성 문제를 다루는 새 역사 교과서에는 관심이 없다. 대한민국의 건국을 폄하하고 최악의 국가인 북한을 우호적으로 서술하는 생뚱맞은 부분이 꽤 있는데도 그런 문제는 보수언론이나 재야 보수학자들에게 미루고 자신들은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보수정당이라면서 이보다 더한 ‘페르소나 결핍’이 있는가.

 복지 문제에 대한 한나라당의 입장도 좌파진보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 종잡을 수 없다. 원칙으로 말하면 보수의 복지는 공공복지가 아니라 민간복지의 확충에 있으며 세금에 의한 강제복지가 아니라 민간 자율에 의한 자발적 복지를 활성화하는 데 있다. 공공복지 논쟁이 가열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복지에 관한 이런 원칙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가.

 물론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강물이 도도히 흘러가는데 한나라당만 그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살기란 어려울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한나라당의 행태를 보노라면 영락없이 죽은 연어의 모습이다. 죽은 연어는 강물 따라 흘러갈 뿐 조금도 강물을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 생명력도 자기확신도 없는데 무슨 수로 존재감을 보인단 말인가. 하지만 살아있는 정당이라면 시류에 무조건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180석의 한나라당이 죽은 정당처럼 처신하는 것은 다음 총선에서는 패배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래서 표를 위해서라면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물 흐르는 대로 몸을 내맡기겠다는 심산이다. 하나 약자 보호와 복지 포퓰리즘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무상복지가 정작 약자에게 해가 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가 아닌가. 무엇을 지킬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자기 확신 없이 시류에 따라 이리저리 표류하는 죽은 정당처럼 행동한다면, 그것이 무슨 새 술과 새 부대인가.

박효종 서울대 교수·윤리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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