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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과수’ 특성 무시한 지방 이전

달팽이가 지나간 흔적을 남기듯 모든 범죄는 증거를 남긴다. 범인 검거와 사건 해결을 위해 반드시 증거물에 대한 과학적 감정이 뒤따르는 이유다. 정확한 감정을 위해선 증거물의 훼손·오염 방지와 신속성이 기본 원칙이다. 그러나 범죄수사 증거물에 대한 과학적 감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한민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이런 원칙과는 엇나갈 상황에 처했다. 혁신도시 이전 대상 공공기관으로 지정돼 내년 12월 서울 신월동에서 강원도 원주로 이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과수가 담당하는 사건의 50% 이상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서울에 분원을 남겨둔다고 하더라도 각종 증거물과 부검 대상 시신의 상당수를 150㎞나 떨어진 원주로 매번 이송해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해 국과수 서울 본원의 감정 의뢰 건수가 15만3000여 건임을 감안하면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다. 증거물 보관과 이송에 엄청난 추가 경비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길바닥에 세금을 줄줄 흘리고 다녀야 할 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증거물 훼손이나 감정 지연으로 신속한 사건 처리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산물이다. 노무현 정부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혁신도시 사업을 추진하면서 분초를 다투는 일을 하는 국과수의 업무 특성을 감안하지 않고 무턱대고 지방 이전을 결정해 버린 것이다. 당시 이전 대상 기관 선정을 하면서 국과수에 대해서는 예산과 인력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효과 분석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니 그야말로 주먹구구에 박 터진 꼴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국과수 원주 이전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지난 정부 때 결정된 사안이라는 이유로 불 보듯 뻔한 세금 낭비와 업무 비효율을 그냥 내버려둬선 안 된다. 그나마 원주 신청사가 10월에나 착공하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건물이 완공되고 이전이 완료된 뒤엔 돌이키기 어렵다. 다른 이전 대상 기관과의 형평성 문제를 따지며 미적거릴 일이 아니다. 더 늦기 전에 정부가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해 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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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