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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서 오디션, 한류 세계화 시동 건 이수만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나 혼자 꿈꾸면 한낱 꿈이지만 모두가 꿈꾸면 새로운 미래의 시작"











"나 혼자 꿈을 꾸면 한낱 꿈이지만 우리 모두가 꿈을 꾸면 그것은 새로운 미래의 시작이다"



1997년 10월,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프로듀셔는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해외에서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각오였다. 그 '한송이 꿈'은 '파도'를 넘어 행복한 현실이 됐다. 세계 각국 수많은 젊은이가 그가 프로듀싱한 음악과 그 음악에 맞춰 춤추고 노래하는 한국의 젊은 아티스트들에게 열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그는 다시 새로운 꿈을 꾼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산업계 인사들의 모임인 한국문화산업포럼을 이끄는 공동회장으로서 제3회 U(유비쿼터스)-알타이 문화창조네트워크 2011 포럼(11일)과 SM엔터테인먼트 글로벌 현지 오디션(10일) 참석을 위해 알마티를 찾은 그와 일정 틈틈이 이야기를 나눴다.





-세계 곳곳에서 K-POP 열기가 뜨겁습니다. 지난 6월 10일과 11일 'SM타운 라이브' 파리 공연이 커다란 화제가 됐는데, 물꼬를 튼 소감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걸어가려고 했고 그것이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낍니다. 최준호 주불 한국문화원장의 적극적인 노력과 3억5000만원을 지원한 한국관광공사의 도움도 시너지를 일으킨 것 같습니다."



-아직 매니어 위주의 열광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번 파리 공연의 근거는 유튜브와 페이스북에 올라간 SM 동영상 클릭수였습니다. 유럽 공연지로 파리냐 런던이냐를 저울질하다가 클릭수가 높은 파리를 택했습니다. 새로운 미디어를 이용하는 젊은이들은 늘어나는 만큼 저희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겠죠."



-왜 이렇게 성공했다고 봅니까.



"곡을 잘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저희는 전세계 프리랜서 작곡가 100여 명과 네트워킹을 맺고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귀를 끄는 '훅'(반복되며 중독성을 주는 일종의 후렴구)을 찾고 그것을 중심으로 논의하고 다듬어나갑니다."



-어떤 곡이 잘 만든 것입니까.



"그것은 시각에 따라 다릅니다. 예를 들어 이번에 f(x)가 내놓은 '피노키오'는 원래 다른 팀에서 퇴짜를 맞은 노래였습니다. 그런 것을 저는 우리 애들에게 맞는다고 생각했고 타이틀 곡으로 썼습니다. 어떤 곡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야말로 프로듀서의 안목이죠. 그래서 '콘텐트가 중요하다'는 사람에게 저는 다시 말합니다. '콘텐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런 콘텐트를 프로듀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해외 진출은 언제부터 생각했습니까.



"어릴 적에 클리프 리처드와 레이프 개럿 내한 공연을 보면서 '왜 우리는 외국에 나가지 못할까'하는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H.O.T.와 S.E.S.를 기획하면서 해외 진출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죠."



-원래 통기타 가수 출신인데 아이돌 댄스그룹인 H.O.T.는 어떻게 만들 생각을 했나요.



"90년대 중반 신문에 '청소년 새로운 소비층 부상'이라는 기사가 자주 나왔어요. 그래서 고교생 또래로 팀을 만들면 인기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조사와 분석을 많이 하는 편인데, 알아보니까 청소년들이 제일 부러워하는 것은 춤 잘 추는 것, 가장 갖고 싶은 것은 오토바이 라는 등의 결과가 나왔어요. 그래서 춤 잘 추고 노래 잘하는 애들을 물어물어 찾아다녔죠. 그래서 전주 춤 대회에서 우승한 장우혁, 미국에서 소개받은 토니안, 잠실에서 춤·노래·외모로 유명한 강타 등으로 팀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뮤직비디오에는 오토바이를 등장시켰죠. 그러니까 나오자마자 바로 뜨더군요."



-2000년 2월 H.O.T.의 베이징 공연을 K-POP 열풍의 시작으로 꼽았는데.



"그때의 느낌은 최고였어요. 정말 하고 싶었던 공연이 대성공으로 끝났으니까. 영하 13도의 날씨에 줄을 엄청나게들 섰지요. 중국 언론이 그때 처음으로 '한류'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다음날 공항 VIP 룸에 있는데 열혈팬 100여 명이 갑자기 몰려와서 문이 부서지고 난리가 났어요. 결국 군대까지 출동하더라고요."





그의 경력은 다채롭다. 경복고를 나와 71년 서울대 농업기계학과에 입학한 그는 입학 전 두엣 '4월과 5월'(나중에 '장미'로 유명해졌다)을 결성했다. '한 송이 꿈' '파도' '행복' 등의 히트곡이 있으며 MBC 10대 가수상 신인가수상(76년), MBC 10대 가수상(77년)을 받았다. 74년 TBC '비바 팝스'에서는 대학생 신분으로 토크쇼와 라이브 무대를 결합한 생방송을 선보이며 특유의 입담을 과시했다. 이어 MBC로 옮겨 대학가요제 초대 MC, '이수만과 함께' 등 각종 오락프로그램 진행자로 이름을 날리다 81년 홀연 미국 유학을 떠났다. "NASA에 들어가고 싶었"던 그는 우여곡절 끝에 학교를 옮겨 캘리포니아의 State University Northridge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링을 공부했다. 그리고 당시 막 방송을 시작한 MTV를 보았다. 모타운 레코드 출신 가수들과 함께 무대에 서던 마이클 잭슨이 단숨에 세계적인 스타로 부상하는 것도 지켜보았다. 그렇게 미국의 음악계 현장 얘기를 속속들이 품에 안고 85년 귀국했다.



-바로 음악사업을 시작했나요.



"아뇨. 제대로 된 녹음실이 필요했는데 돈이 없었어요. 월미도에서 '헤밍웨이'라는 카페를 하면서 돈을 벌었죠. 당시 아날로그 방식은 5억 원대가 들었는데 저는 5000만 원 정도로 디지털 녹음실을 만들었어요. 그 인연으로 일본 최대의 기획사 에이벡스와도 인연이 될 수 있었죠."



-왜 가수를 계속하지 않았죠?



"사실 전 가창력이 좋은 편은 아니에요. (원래 두엣을 하려 했던)작은 형(써니 아버지)이 노래를 더 잘했죠. 대신 저는 곡을 만들거나 믹싱을 하거나 최신 트렌드를 간파하는 능력이 좋은 편이었어요. 컴퓨터 공학을 공부한 덕분에 디지털 사운드에 대한 이해도 남보다 빨랐고."



-새로운 미디어가 세상을 바꾸고 있습니다. 옛날 MTV의 역할을 지금 유튜브가 하고 있네요.



"세상이 정말 급속도로 변합니다. 젊은이들은 지금 방송대신 유튜브나 페이스북을 즐기고 있어요. 지난번 SM타운 라이브 파리 공연을 마치고 세느강에 배를 띄운 뒤 자축파티를 했습니다. 그 동영상까지 포함해 3일간의 페이스북 조회 수가 8700만에 이릅니다. 아시아 최고 기록이죠."



-앞으로 이런 SNS를 어떻게 활용할 생각인가요.



"'에브리싱'이라고 저희가 만든 노래방 기기가 있어요. 컴퓨터 사운드로 반주를 만든 다른 회사 제품과 달리 모든 음악을 MR(실제 연주 음악)로 처리한 것이죠. 음의 높낮이가 가능하도록 하는 등 다양한 업그레이드를 진행 중인데 이 소프트웨어를 유튜브에 설치하면 어떨까요. 그럼 전세계 누구나 노래를 하고 맘에 드는 영상을 보내 SM 오디션에 응모할 수 있겠죠."











그에 대한 호불호는 아직 엇갈린다. 주먹구구식이던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시스템을 도입한 공로는 인정하지만 소속 연예인에 대한 장기 계약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연습생 기간을 제외한 13년이라는 기간이 너무 길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그는 "그것이 지금의 한류를 일으킨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장기 계약이라는 한국적 매니지먼트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13년이라는 기간은 한국에서 3년, 일본에서 3년, 아시아에서 3년, 그리고 세계에서 3년 정도를 감안한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 회사는 믿음을 갖고 미래에 대한 투자를 하게 됩니다. 춤과 노래, 연기와 어학까지 철저하게 트레이닝 시킵니다. 그래서 스타로 만드는 것이죠. 미국의 에이전시들은 단순한 계약관계라 연예인에 대한 투자가 한계가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개선할 생각입니까.



"공정거래위원회와 수차례 협의를 했습니다. 한국에만 있을 경우 7년, 해외에 나갈 경우 10년으로 정해 원하는 경우 재계약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엔터테인먼트의 세계적인 경쟁력을 키우려면 기업화가 필요합니다. 또 가능성 있는 연습생을 선발해 철저한 트레이닝을 거쳐 스타로 키우고 있죠. 그러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계약이 돼야 회사도 충분히 투자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다른 얘기를 해 볼까요. 와인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미국 나파밸리에서 포도를 구입해 제가 블렌딩한 '이모스(EMOS)'라는 와인을 조금씩 선보여 왔습니다. 'My Everything'이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입니다. 한국어로는 '이모들' 같다는 정감도 주고요."



-와인 블렌딩도 하는군요.



"유럽의 어떤 소믈리에가 '아시아인 입맛은 아시아인이 잘 알 것'이라면서 권하더군요. 막상 해보니까 이게 사운드 믹싱하고 비슷해요. 제가 블렌딩한 와인이 유럽에서 인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하"



-지난해 와인 기사 작위도 받았던데.



"프랑스에 샤토가 수십 개가 되는데 매년 돌아가면서 와인 홍보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작위를 주고 있습니다. 이 작위는 어느 샤토가 주느냐가 중요한데 지난해의 경우 5대 와인으로 꼽히는 샤토 무통 로칠드 가문에서 수여하는 것이라 남다른 의미가 있었죠."



-와인 사업에 대한 계획은.



"미국 LA 태매큘라 지역에 80에이커(약 12만평)의 포도밭을 최근 구입했습니다. 품종은 샤비뇽 블랑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매년 30~40만 병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SM 외식사업부에서 레스토랑 브랜드 'E-테이블'을 비롯해 여러가지 브랜드가 있습니다. 이런 사업도 어떻게 재미있게 엮을 것인지 구상하고 있습니다."



알마티(카자흐스탄)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SM엔터테인먼트 제공









**** 사진설명



1.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글로벌 오디션을 진행한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 사진 정형모 기자



2. 1990년 라디오 DJ 시절의 이수만. [중앙포토]



3. BoA의 미국 진출 당시 맨해튼을 찾은 이수만. [이하 SM엔터테인먼트 제공]



4. 지난 6월 10일과 11일 'SM타운 라이브'의 파리 공연 이후 선상파티 기념사진.



5. 2010 샤토 무통 로칠드에서 와인 기사 작위를 받은 이수만. 필리핀 드 로칠드 남작부인과 함께.



6. 하버드대 MBA 과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류와 컬쳐테크놀로지(CT)에 대해 강연하는 이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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