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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형 인간’ 맥나마라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는 어떤 픽션보다도 재미있고, 감동을 준다. 말로만 듣던 ‘전쟁의 안개(The fog of war)’를 얼마 전에 구해 내리 두 번을 보았다. 케네디와 존슨 행정부에서 7년간 국방장관을 지냈던 로버트 맥나마라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만든 것인데, ‘맥나마라의 삶에서 얻은 11개의 교훈’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인터뷰 당시 그는 85세였다.

장관으로서 맥나마라만큼 역사적으로 논쟁거리가 된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그는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최연소 교수를 거쳐 44세에 포드자동차의 사장이 됐다. 그는 실물 통계에 기초한 계량적 분석방법의 신봉자였다. 이 방법으로 파산 직전의 포드를 구했고, 국방부에도 혁신적인 계획예산제도를 도입했다. 케네디 평전을 쓴 로버트 댈럭은 그를 인간적인 매력이 뛰어나고, 예술과 철학에 대한 조예도 깊은 완벽한 ‘르네상스 인간형’이라고 묘사했다. 천재적 능력을 가진 최고의 장관이자 워싱턴 정·관계의 총아였다.

그러나 베트남전쟁은 그에게 악몽이 됐다. 당초 예상과 달리 전쟁은 지상군 투입으로 계속 확대됐다. 그는 전쟁을 지휘하며 독려했으나, 차츰 회의가 커진다. 계량적 분석결과와 전쟁의 현실은 전혀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존슨 대통령에게 전쟁을 중지해야 한다고 비밀리에 진언했다가 거부당하자 장관직을 사임한다. 그러나 평생 베트남전쟁을 일으킨 전범이라는 오명에 시달리면서 전쟁의 도덕성 문제와 씨름했다.

그는 전쟁에서 배울 첫째 교훈으로 “적을 이해하고, 그의 입장에서 생각하라”고 말한다. 그가 종전 후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전시에 외무부 장관이었던 타크는 “당신들은 역사책도 안 읽어보았나? 우리는 1000년간 중국과 싸워왔다. 아무리 폭탄을 퍼부어도 독립을 위해서 우리는 최후의 1인까지 싸웠을 것이다”라고 일갈한다. 미국은 냉전의 틀에서 공산화를 막기 위해 전쟁을 시작했지만, 월맹은 민족의 독립을 지키기 위한 내전의 틀에서 저항한 것이었다. 그는 미국이 베트남에 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어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또한 “합리적 사고가 사람을 구하지는 않는다” “보거나 듣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사람은 믿고 싶은 것을 본다”는 교훈도 들려준다. 실물과 숫자만 믿던 자신만만한 분석가에서 보이지 않는 것, 근본적인 것을 중시하는 겸허한 사람으로 바뀐 것이다.

이런 교훈도 의미심장하지만 이 영화의 백미는 그가 전쟁의 책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에 있다. 글로써는 도저히 묘사할 수 없는 미묘한 표정과 말투가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의 책임은 두 시기에 걸쳐 있다. 국방장관으로 전쟁을 수행한 때와 사직 후 오랫동안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한 시기가 그것이다. 그는 79세인 1995년에야 베트남전쟁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는 내용의 책(회상, 베트남전의 비극과 교훈)을 냈다. 고백이 너무 늦었던 것일까. 각계각층에서 격렬한 비난이 쏟아졌다.
이 영화에서 그는 전자의 책임에 대해 “전쟁은 너무 복잡해서 인간의 능력으로는 모든 변수를 이해할 수 없고 이를 ‘전쟁의 안개’라고 부른다. 우리의 판단·이해는 옳지 않았다. 우리는 쓸데없이 사람을 죽였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한다.

그러나 “국방장관을 사임한 후에는 왜 전쟁을 반대하지 않았느냐”는 후자의 질문에 대해선 대답하지 않는다. 그가 국방부를 떠날 때 미군 사망자가 2만5000명이었는데, 6년 뒤 종전 시에는 5만8000명으로 늘어났다. 그가 침묵하지 않았다면 전쟁이 조금이라도 일찍 끝나서 희생자가 줄었을 것이다. ‘그가 30년간 침묵을 지킨 이유가 무엇일까? 그러다가 왜 새삼스럽게 책을 쓰고 이야기를 시작했을까?’ 영화를 보면서 계속 드는 의문이었다.

그는 T. S. 엘리엇의 말을 인용하며 인터뷰를 끝낸다. “우리는 탐구를 멈추면 안 된다. 탐구의 끝에서 우리는 시작했던 곳으로 돌아올 것이고, 우리는 처음으로 그곳을 알게 될 것이다.” 이어서 “어쩌면 제가 지금 그런 것 같습니다”라며 눈물을 글썽인다. 이 말은 그가 기나긴 고투 끝에 내놓은 최선의 대답일 것이다. 그것은 애당초 해답을 얻는 것이 불가능한 질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찌 이 세상에 ‘전쟁의 안개’만 있겠는가? 인간은 모두 ‘삶의 안개’ ‘의미의 안개’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까.



윤재윤 법이 치유력을 가질 수 있다는 믿음으로 소년자원보호자제도, 양형진술서제도 등을 창안하고 시행했다. 철우 언론법상을 받았으며 최근엔 수필집 『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를 펴냈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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