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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같은 공감각적 매력, 패션계의 ‘에드거 앨런 포’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최고의 화제 ‘알렉산더 매퀸:새비지 뷰티’ 전















지금 뉴욕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전시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5월 4일 시작된 천재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매퀸(Alexander McQueen)의 특별 회고전 ‘알렉산더 매퀸:새비지 뷰티’(원시적 아름다움)다. 개장 27일 만에 15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았다. 이 전시를 보기 위해 줄을 두세 시간 서는 것은 기본. 인산인해를 이루는 전시실 안에서 인파에 밀려 이동하며 작품을 보아야 한다. 덕분에 미술관 측은 전시 기간을 8월 7일까지 일주일 연장했다. 또 지난달 초부터는 비용이 더 들더라도 여유롭게 전시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원래 미술관이 문을 닫는 월요일마다 기본 입장료 20달러에 추가로 50달러를 내면 매퀸 전시만 관람이 가능하도록 했다.



사실 그는 한국인에게 그리 대중적인 이름은 아니다.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최고의 사랑’에서 차승원이 극중 착용하고 등장해 진품의 100분의 1에 해당하는 몇 천원짜리 짝퉁을 유행시킨 흰색 해골 프린트 스카프가 매퀸의 디자인이다.



관람객들은 전시실에 들어서는 순간, 마법과도 같은 공감각적 매력에 빠지게 된다. 그가 디자이너로서 활동한 19년간 만들어진 100여 점의 의상과 70점의 액세서리를 포함한 발자취가 아홉 개의 다른 테마로 나뉘어 전시 중이다. 차별화된 공간 및 디스플레이 설정과 배경 음악 등은 전시장을 패션을 뛰어넘은 예술의 경지로 승화했다. 테마의 연결고리는 로맨티시즘(낭만주의). 각기 다른 전시공간은 정신, 고딕양식, 민족주의, 이국의 정취, 원시주의 등으로 이름 지어졌고 그 앞에는 ‘로맨틱’이라는 형용사가 붙어 있다.



죽음의 상징인 해골이나 특유의 광기로 널리 알려진 매퀸이지만, 생전에 그는 자신이 “과도하게 로맨틱한 면이 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전시실 내부 새까만 벽에는 금색으로 ‘나는 로맨틱한 정신분열증 환자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로맨틱한 정신’으로 명명된 첫 번째 방에서는 매퀸이 초기에 남성 양복점에서 갈고 닦은 손재주를 엿볼 수 있다. 섬세하고도 숙련된 재단 솜씨가 향후 그가 장인 정신을 자랑하는 오트 쿠튀르 하우스인 ‘지방시’에서 수석 디자이너로 활약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로맨틱한 고딕양식’ 방은 뱀파이어나 노상 강도, 반영웅과 같은 캐릭터가 입을 만한 의상에 인위적으로 바람을 뿜는 등의 시각적 효과를 더했다. 덕분에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어두운 정서가 잘 드러나 있다. 에드거 앨런 포의 공포 단편소설 ‘어셔가의 몰락’을 떠올리게도 하는데, 매퀸은 평소 자신을 ‘패션계의 에드거 앨런 포’라고 일컫기도 했다. 검정 의상과 마네킹의 얼굴 전체를 가리는 가죽 마스크는 그의 가학·피학적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호기심의 진열장’ 방은 다분히 기이하고 낯선 액세서리와 그가 생전 패션쇼에서 행위예술 형식으로 선보인 의상, 그리고 비디오 자료 화면으로 현란하게 채워져 있다. 전시의 큐레이터인 앤드루 볼튼은 “이 방은 매퀸에게 영감을 주었던 온갖 사물들을 수용함으로써 그의 상상력의 폭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회고전의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고문 도구에 가까워 보이는 인간 척추뼈 모양의 금속 코르셋부터 나사 모양의 금속 뿔, 수십 마리의 빨간 나비떼가 모여 있는 듯한 머리 장식, 영화 ‘에일리언’에 나올 법한 신발까지 볼거리투성이다. 청각 효과도 대단하다. 일본의 나막신인 게다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화려한 빨간 구두 앞에 다가서면 여성의 묘한 신음 소리가 들린다. 얇게 썬 목재를 부챗살처럼 펼쳐 만든 치마를 입고 끊임없이 회전하는 마네킹 앞에서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구슬픈 테마가 나와 심금을 울린다.



회고전에서는 매퀸이 간직했던 스코틀랜드인이라는 정신적 뿌리와 역사의식 또한 확인할 수 있다. ‘로맨틱한 민족주의’ 방에서는 매퀸의 뿌리인 스코틀랜드의 전통 격자무늬 직물인 타르탄을 활용한 의상을 볼 수 있다. 가위로 천의 일부를 찢어내거나 인위적으로 구멍을 낸 드레스를 통해 18~19세기 영국이 스코틀랜드를 탄압했던 폭력적인 역사를 간접적으로 비판한다. 세계적인 수퍼모델 케이트 모스가 2006년 겨울/가을 컬렉션에서 수백 겹의 실크 오간자로 이루어진 드레스를 입고 천상의 이미지를 구현해낸 3D 홀로그램 또한 전시의 볼거리 중 하나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이번 전시와 관련된 방대한 자료를 블로그 (http://blog.metmuseum.org/alexandermcqueen/)에 모아놨다. 전시실 내부를 속속들이 보여주는 비디오뿐 아니라 전시된 의상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매퀸 생전의 다양한 패션쇼 비디오를 볼 수 있다.





뉴욕 글 서지은 코리아 중앙데일리 기자





*** 알렉산더 매퀸



1969년 런던에서 택시기사의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대를 이어 노동직을 선택한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일찍이 패션에 흥미를 가졌다. 16세에 학교를 중퇴하고 런던의 중심가 사빌 로(Savile Row)에 위치한 고급 양복점에서 일하며 재단 등 의상 디자인의 기초를 다졌다. 무대의상 제작 일을 거쳐 이탈리아 디자이너 로메오 질리의 보조 디자이너로 밀라노에서 생활하던 그는 런던으로 돌아와 94년 런던의 명문 예술대학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서 패션 디자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향후 그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후원자이자 절친한 친구가 된 전설적인 스타일리스트 이자벨라 블로는 그의 졸업 작품을 몽땅 사들이기도 했다. 그는 불과 27세이던 96년 프랑스의 지방시 오트쿠튀르 브랜드의 수석 디자이너로 파격적으로 임명돼 2001년까지 활동했다.



같은 해 구찌 그룹이 그의 이름을 딴 알렉산더 매퀸 브랜드를 인수한 이래 하위 브랜드를 추가하고 다양한 디자인 협업 활동을 벌였다. ‘올해의 영국 디자이너 상’을 네 번이나 수상한 바 있다.



이자벨라 블로가 음독 자살한 2007년 중순 이후 우울증을 앓아왔던 것으로 알려진 그는 2010년

2월 11일, 어머니의 장례를 하루 앞두고 런던 자택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2010년 가을 컬렉션을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작업했던 유작 16점은 2010년 3월 9일 파리 비공개 패션쇼에서 선보여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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