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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겸허하게 만드는 묘한 음성‘칼라스 전·후’ 달라진 오페라 역사

깊은 밤 마리아 칼라스의 아리아를 듣는다. 압도적인 드라마티코의 열창인데도 불구하고 조금 낮은 볼륨으로 켜두면 종일 들어도 질리지 않는 것이 칼라스의 음성이다. 그녀의 노래는 무어랄까, 칼라스가 여왕으로 군림하는 성곽 안에 복종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들어가는 하급 병사의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그녀의 노래를 들을 때면 아주 작아지는 기분이 들고는 한다.

詩人의 음악 읽기 옛 가수들②-마리아 칼라스

성역(聲域)을 이동할 때 갈라지는 소리가 난다고? 초고음에서 쇳소리가 난다고? 어딘지 불안하고 음산한 음성이라고? 다 부질없는 평가다. 연출가 프랑코 제페렐리가 했던 말이 정확할 것이다. ‘오페라의 역사는 칼라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라고. 클래식 음악이 대중의 관심사에서 꽤 멀어진 오늘날 그녀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설명하기란 난감한 일이다. 지금 여성 팝스타 가운데 1950년대의 칼라스와 비견할 만한 존재가 있기나 할까. 그녀는 노래와 인생사 모든 면에서 전무후무하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칼라스의 생애는 스캔들의 역사였다. 욕심 많은 어머니와 평생에 걸친 증오와 공개적인 싸움이 그러했고, 그녀의 인생을 굴곡지게 만든 두 명의 남자, 10여 년간의 남편이었던 수전노 메네기니와 추악한 연인 오나시스와의 관계가 그러했다. 동료 음악가들과의 끊이지 않은 싸움이 그러했고, 극장주들과의 분쟁이 그러했고, 언론과의 적대적 관계가 그러했다. 요즘 말로 안티팬이 숭배자와 비등비등할 정도로 비호감의 상징이기도 했다. 자포자기적 상태에서 파리에 은거할 때 다소 유순해진 것을 제외하자면 칼라스의 생애 전체가 진흙탕 싸움의 연속이었다. 그녀 음성의 비극적 정조는 그 같은 생애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와 두 남자, 인생은 굴곡의 연속
내가 읽어본 몇 권의 칼라스 전기 작가들은 변호에 바빴다. 그 끊이지 않는 불화와 분쟁의 원인을 상대편에게서 찾으려는 노력이 역력하다. 하지만 솔직해져야 한다. 정황들을 유추해 보면 우선 칼라스가 나빴다. 변덕, 시기심, 탐욕, 우월감과 열등감, 짓궂음, 자기중심성…. 성격을 규정하는 부정적 용어를 총동원해야 할 판이다. 도대체 왜 그렇게 난폭하게 자기 생을 몰아가야만 했을까. 생애 막바지인 1970년 그녀가 회고한 말에서 중요한 단서를 찾아본다.

“나는 나의 주인이 아니라 내 삶을 바깥에서 지켜보는 증인입니다.”
그녀는 열광적인 팬들이 보낸 찬사의 편지 대부분을 쓰레기통에 버렸지만 악담이 실린 글들은 간직하고 들춰보는 기벽을 보였다. 내용들은 끔찍하다. ‘기분 나쁜 여편네’ ‘불쾌감을 주는 데 일인자’ ‘타고난 변덕쟁이인 데다 추하기 짝이 없는 인간’ ‘나병이 들끓는 시궁창의 여왕’ ‘너는 악을 써대며 오페라를 수치스럽게 만드는 인간이야’ 등등.

하지만 칼라스는 세상 어떤 음악가도 누려보지 못한 최고의 영예를 누렸다. 1952년부터 10년간의 전성기 동안 칼라스가 움직이는 동선의 교통은 통제됐다. 파리 관광 중에 가방을 잃어버리자 비행기가 출발시간을 늦추고 기다렸다. 이탈리아 대통령이 참석한 공연을 중도에서 멈추고 집으로 가버리기도 했다. 그런 위세를 누린 인물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그녀를 변호하고자 애쓰는 비평가들의 태도는 무엇 때문일까. 전기 작가 다비드 르레는 그 모든 갈등이 완벽한 노래를 부르기 위한 처절한 투쟁에서 기인한다고 보았다. 지휘자 툴리오 세라핀이나 레너드 번스타인은 아름답거나 추한 것을 넘어선 어떤 다른 경지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음악으로 칼라스를 접한 사람들은 세간의 오욕으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신적 경지를 그녀에게서 읽는다. 그래서 그녀는 디바(여신)로 불린다.

자기가 누구인지 지켜보는 증인으로 살았다는 칼라스의 말을 이해할 것도 같다. 1m73㎝의 키에 95㎏의 거구. 심한 근시 탓에 동작이 굼뜨고 못생긴 뚱뚱보로 20대 중반까지 살았다. 학교와 가정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열등감 덩어리였다. 성악가로 성공하고 나서 30㎏을 감량한 이래 최고의 미인 대접이 온 세상에서 쏟아졌다. 그녀는 여신으로 변신한 자기 안에 숨어 있는 본래의 못난 자아와 일종의 마조히즘적 게임을 즐겼던 것은 아닐까.

나는 오페라 아리아보다는 독일계 리트를 더 좋아한다. 체칠리아 바르톨리보다 안네 소피 폰 오토를 더 사랑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마리아 칼라스는 도리가 없다. 음악이 특별한 것이라고 여긴다면, 거기 존재의 비의가 숨겨져 있다고 믿는다면 칼라스를 벗어날 수 없다. 그녀의 노래는 가장 비천한 것과 가장 숭고한 것이 뒤섞인 감정상태로 청자를 이끈다. 바로 이것이 우리들 내면의 진정한 리얼리티 아닐까.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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