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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점호화소비

대기업은 잘나가는데, 중소기업은 어렵다. 숫자로 나타난 경기는 괜찮은데 소득은 제자리다. 버는 사람은 왕창 벌고, 못 버는 사람은 자꾸 뒤처진다. 1억 총중류(總中流) 의식은 산산조각 났다.

남윤호의 시장 헤집기

일본 얘기지만 꼭 우리의 현실처럼 들린다. 2002년 2월~2007년 10월, 일본 경제는 모처럼 호황을 맞았다. 고도성장을 이뤄 냈던 ‘이자나기 경기(1965년 11월~70년 7월)’보다 오래갔다. 미국의 버블경제 덕이었다. 미국의 소비가 끓어오르니 일본의 수출이 잘된 것이다. 외수주도형 성장이었다. 수출 비중이 큰 대기업은 호황이었지만 그 외의 기업은 부진했다. 이게 통계로 뭉뚱그려져 전체적으로 경기가 좋아 보인 것이다. 특히 근로자들은 호황을 실감할 수 없었다. 월급이 그대로였으니 그럴 만했다. 근로자 가구의 가처분소득은 97년 월 49만7036엔이 피크였다. 그 뒤엔 계속 미끄럼질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어난 2008년의 가처분소득은 90년과 비슷했다. 그러니 일본 서민들에겐 ‘잃어버린 20년’이란 말이 더 실감나는 거다.

그동안 소비 행태엔 뚜렷한 변화가 나타났다. 싼 걸로 바꾸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소비 리스트에서 지워지는 물건이나 서비스가 나왔다. 보험 깨고, 신문 끊고, 차 팔고, 골프장 안 가고, 담배 끊는 식이다. 소득 감소로 위협받는 생활 수준을 지키기 위해 소비 라인을 대폭 후퇴시킨 것이다. 일본에선 이를 ‘생활방위형 소비’라 한다. 이 시기 헌책방 체인 북오프, 100엔숍 다이소, 저가형 커트 전문 이발소 큐비하우스 등이 떴다.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되던 일이었다. 그런데 정반대의 소비 행태가 동시에 나타났다. 대표적인 게 명품 소비다. 젊은 직장 여성들도 루이뷔통 지갑이나 가방을 척척 샀다. 생활방위형 소비에 밀려 문을 닫아야 할 것 같던 고급 레스토랑도 제법 잘됐다. 어중간한 것은 도태되고, 아주 고급이거나 아주 헐한 것은 잘나갔다.

누구나 질이 떨어지는 소비를 계속하면 스트레스가 쌓이는 법이다. 절약 생활에 대한 피로감이다. 그 피로가 일정 수준 쌓이면 호쾌한 소비를 한 번쯤 해 보고 싶어진다. 그동안 많이 아꼈으니 이 정도는 써도 되겠다, 잘 참은 나에게 작은 상을 주고 싶다 하며 자기합리화를 한다. 장기간의 검약 모드에서 돌변해 순간적으로 호사스러운 소비를 한다는 거다. 이게 주기적으로 반복되며 일어나는 고급 소비를 일본에선 ‘일점호화주의(一點豪華主義) 소비’ 또는 ‘자기포상형 소비’라 한다.

우리나라도 비슷하지 않나. 물가는 오르고, 월급은 제자리다. 점심값으로 1만원짜리 한 장이 맥없이 날아간다. 이를 줄이려 구내식당에 가거나 도시락을 싸는 직장인이 많다. 생활방위형 소비다. 동시에 명품 브랜드는 잘나간다. 부유층만이 아니라 아끼고 아꼈다 갖고 싶은 것 폼 나게 사는 사람도 많다. 일점호화주의 소비다.

그런데 하나 걱정되는 게 있다. 생활방위형 저가 소비는 중소기업에 향하고, 돈 되는 고가 소비는 외국 브랜드나 대기업에 돌아가는 건 아닌지. 그래서 양극화가 더 심해지는 건 아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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