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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자 천궁보, 공산당 창당일 밝히게 한 일등공신

천궁보는 중공 창당 1년 후 탈당, 컬럼비아대로 유학 갔다. 국민당에 입당, 쓰촨(四川)성 주임·실업부장을 지냈다. 일본의 난징(南京) 괴뢰정부에 합류, 한간(漢奸)으로 전락했다. 1946년 4월 12일 민족반역죄로 총살형을 선고받았다. 유언은 “공산당 조심하라”였다. [김명호 제공]
제1차 중국 공산당 대표자 대회는 극비리에 이뤄졌다. 발각됐다 하는 순간 어느 귀신에게 물려갈지 모를 아주 위험한 모임이었다. 참석자들은 짜기라도 한 것처럼 이때의 일을 일기에 남기지 않았다.
국공합작으로 항일전쟁이 시작되자 중공 근거지 옌안(延安)은 생기가 넘쳤다. 하루아침에 흉악한 비적소굴에서 항일성지로 둔갑했다. 언제 어떤 사람들이 모여서 중국 공산당을 만들었는지 다들 궁금해했다. “생일을 알아야 행사를 할 거 아니냐!” 지당한 말이었다.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226>


1936년 7월, 마오쩌둥은 에드거 스노에게 창당 얘기를 꺼냈다. “1921년 5월, 공산당 성립대회에 출석하느라 상하이에 갔다. 12명이 참석했다.” 농촌 출신이었던 마오는 어릴 때부터 음력을 사용했다. 참석자 15명 중 2명의 외국인과 천두슈(陳獨秀·진독수)의 대리인 자격이었던 바오후이썽(包惠僧·포혜승)을 대표로 치지 않았다.

이듬해 봄, 둥비우(董必武·동필무)는 과거를 얘기해 달라며 졸졸 따라다니는 스노의 부인에게 “1921년 7월 상하이에서 열린 1차 대회에 참석했다”고 지나가는 듯이 말했다.

둥비우와 함께 우한(武漢) 대표로 참석했던 천탄추(陳潭秋·진담추)가 1936년 중공 창당 15주년을 맞아 글을 한 편 썼다. “7월 말, 혹은 7월 하순, 상하이에서 창당했다”고 했을 뿐 날짜는 명기하지 않았다. 7월 15일 이후인 것은 분명했지만 기념일 제정에는 도움이 안 됐다.

옌안에 있던 사람 중 1차 대회 참석자는 마오와 둥비우밖에 없었다. 16년 전 일을 기억에만 의존하자니 모든 게 가물가물했다. 인간은 숫자에 약한 동물, 대충 얼버무리는 수밖에 없었다. “7월은 분명한데 날짜는 기억이 안 나고, 아예 첫날을 창당 기념일로 해 버리자”며 말을 맞췄다.

마오와 둥비우는 창당 직후 발간된 신청년(新靑年) 9권 제3호에 광둥(廣東) 대표 천궁보(陳公博·진공박)의 글이 실렸던 사실을 몰랐다. “상하이에서 열린 학회에 다녀왔다. 신혼여행을 겸했다. 7월 14일 광저우(廣州)를 떠났다. 21일 상하이에 도착했다. 이튿날 외국인 교수 두 사람을 만났다. 처음 만난 친구의 집에 갔다가 낯선 사람의 방문을 받았다. 나는 미완의 상태에서 수속을 끝냈다….” 천궁보는 창당 대회를 학회로, 코민테른 대표 마린과 니콜스키를 두 명의 외국인 교수로 표현했다. 처음 만난 친구의 집은 회의가 열린 리한쥔(李漢俊·이한준)의 집이었다. 암호를 나열해 놓은 것 같은 글이었지만 중공 창당 날짜를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였다.

회의장에 불청객이 찾아온 것도 사실이었다. 7월 30일 밤, 40대 남자가 집안으로 들어와 이 방 저 방을 기웃거리더니 “잘못 왔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마린은 밀정이라고 단정했다. 집주인만 남고 앞문으로 튀자며 몸을 일으켰다. 평소 리한쥔의 집은 뒷문만 열려 있었다. 리한쥔과 친했던 천궁보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참석자들이 회의장을 빠져나가기가 무섭게 프랑스 경찰과 중국인 보조원들이 뒷문으로 들이닥쳤다. 수상한 흔적을 발견 못하자 한바탕 훈계를 늘어놓고 돌아갔다.

숙소로 돌아온 참석자들은 상하이 대표 리다(李達·이달)의 집에 다시 모였다. 다음 날 자싱(嘉興)으로 이동, 마지막 회의를 하기로 결정했다.

천궁보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호텔로 돌아왔다. 머리만 복잡한 게 아니라 날씨도 개떡 같았다. 온종일 시꺼먼 구름이 도시를 짓눌렀지만 끝내 비 한 방울 뿌리지 않았다. 진땀을 흘리며 나타난 천궁보에게 부인이 불만을 쏟아냈다. “매일 밤 뭘 하고 쏘다니는지 불안해 죽겠다. 이게 무슨 놈에 신혼여행이냐.”

날이 샐 무렵 옆방에서 총소리가 났다. 이어서 여자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살인사건이 분명했다. 날이 밝으면 증인이다 뭐다 하며 불려 다닐 일이 뻔했다. 정말 고약한 여름밤이었다. 할머니 유언이 생각났다. “중국은 별난 나라다. 낌새가 이상하면 우선 도망쳐라. 생각은 천천히 해도 된다. 36계가 진리라는 것을 일찍 깨우친 중국민족은 정말 위대하다.”

천궁보는 호텔 주인을 찾아갔다. 같은 광둥 사람이었다. 묵었던 흔적을 지워 달라고 부탁했다. 광둥 사람끼리는 서로 통하는 게 있었다.

8월 1일자 신문 한구석에 전날 새벽 천궁보의 옆방에서 벌어진 사건이 실렸다. 제1차 중국공산당 대표자 대회의 시작과 마지막 날(7월 23~31일)이 언제였는지 확인시켜 줄 결정적인 자료였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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